지나고 나니 천국이었구나
조리원에 들어가니 병원 입원실보다 조용하고 몸에 주사 바늘도 없어서 푹 잤다. 옷을 갈아입을 때 보니 여전히 임신 7개월 정도인 나의 배. 아기는 이미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배는 왜 안 들어가지?
조리원에서는 7시만 되면 무조건 수유콜로 깨운다더니 진짜 그랬다. 수유와 유축을 반복하는 게 하루의 일상이었다. 제왕절개 후 몸이 계속 아프고 수유로 인한 상처까지 더해져서 자연스럽게 긍정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안 그래도 모유량이 적어서 고민이었는데 집착해 봤자 서로에게 좋을 것 없으니 모유와 분유를 혼합해서 잘 먹이는 방향으로 잡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모유량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으나, 아기가 만족할 만큼의 양은 아니었기에 모유수유를 끊은 시점까지 쭉 분유와 혼합해서 먹였다.
수유를 시작하니 친정 엄마가 우족을 푹 끓인 국물을 먹으라는 등 나와 아기를 위한 조언을 하기 시작하셨는데, 아무리 조리원에 있더라도 수유와 마사지,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 참여로 바쁘다 보니 몸이 힘들어서 잔소리로 들렸다. 분명 조리원은 천국이라고 했는데 왜 나에게는 사회생활을 하는 것 같지?
자면서 모유가 흐르고, 새벽에 화장실 가고 싶어서 몇 번이나 깨고, 제왕절개 후 배가 찌릿찌릿한 통증이 계속 느껴지고... 출산이 이렇게 고된 것일 줄이야. 역시 인간은 말로는 아무리 들어봤자 소용없고 겪어봐야 깨닫는 것 같다.
조리원에 들어온 지 1주일이 지난날, 조리원 안이 페인트 냄새로 진동했다. 주차장 공사로 인해 각종 냄새가 조리원 안으로 들어와서 산모를 비롯하여 아기들도 숨을 쉬기 괴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빨리 조리원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퇴소하고 전화를 돌렸는데, 다행히 근처 조리원에 자리가 있어서 아침 일찍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사이 아기를 집에 데리고 온 나와 남편은 기저귀 가는 것조차 서툴러서 어쩔 줄을 몰랐고, 긍정이는 뭔가 불편한지 계속 울었다. 수유를 하면 좀 괜찮아져서 잠들었다가 금방 깨서 또 울고, 안아주면 또 괜찮았다가 또 울고... 결국 밤을 꼴딱 새우고 새로운 조리원에 들어갔다.
첫 번째 조리원에서는 못 느꼈던 '조리원 천국'을 새로 옮긴 조리원에서 제대로 느끼기 시작했다. 밥도 더 맛있고, 소수 인원에 프라이빗하니 나한테 더 맞았던 조리원이었다. 이전 조리원은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산모들과 밥을 함께 먹어서 더 친해질 수 있으니 조리원 동기를 만들기 쉽다는 후기를 보고 선택했는데, 겪어보니 조리원 동기는 프라이빗한 조리원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고, 아픈 몸으로 억지로 사회생활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고 온전히 쉬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이때의 경험으로 둘째 출산 후에는 더 프라이빗한 호텔식 조리원에 들어가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왔다!
새로운 조리원에 잘 적응해서 신생아실 선생님들과도 친해졌는데, 친정 엄마와 연배가 비슷한 분들이 많으셔서 긍정이를 많이 예뻐해 주시고 나한테 긍정이에 대한 칭찬과 더불어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아낌없는 조언도 해 주셨다. 내가 출산휴가 중이라는 것을 아는 선생님께서 바로 복직할 거냐고 물어보셨는데, 앞으로 최소 3년 이상 휴직하면서 긍정이를 직접 키울 생각이라고 말씀드리니, 잘 생각했다면서 본인의 워킹맘으로서의 경험담과 아이를 한 명만 낳은 것에 대해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 주셨다. 나에게 꼭 둘째를 낳으라고 하시면서.
조리원에서 3주를 보내니 긍정이는 어느새 부쩍 자란 형님이 되어 있었다. 6월생 아기들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긍정이는 5월 22일생이라 신생아실에서 딱 봐도 형님 느낌이 들었다. 아기 때는 단 몇 주 차이로도 발달 상태가 다르다 보니 엄마들이 성장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조리원 동기도 만들고, 목욕 교육 등 아기를 키우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고 실전 감각도 기르고, 마사지도 열심히 받아서 부기도 다 빠졌다.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조리원 선생님들하고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이제 긍정이를 함께 돌보며 교감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한 분도 빠짐없이 긍정이를 어찌나 예뻐해 주셨는지, 매일같이 칭찬해 주시고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감사했다.
이제 남편과 둘이 살던 집에 셋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주민등록등본에 ‘자’가 등재된 것만큼 신기한 기분이다. 나 혼자 잘 키울 수 있을까? 솔직히 무서운 마음이 컸지만 출산 후 3주 동안 엄마로서 나도 많이 성장했으니 열심히 키워야지.
그러나 역시 신생아 육아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작가의 한 마디]
출산하면 아이를 위해서 반드시 '조리원 동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괜찮답니다. 진짜 마음 맞는 육아 동지는 가까운 곳에 있거든요.
첫째 때 5명의 조리원 동기들과 함께 단톡방에서 소통하며 종종 만나기도 했는데요, 일시적으로 조리원 동기가 생겼다는 마음의 안정(?)을 얻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나이도, 직업도, 사는 동네도, 육아 가치관도, 개인적인 성향도 다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오래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걸 느낀 만남이었습니다. 특히 누군가가 총대를 메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지 않는 이상 꾸준히 이어지기 힘들지요.
그래서 둘째 때는 프라이빗한 조리원에 들어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며 굳이 조리원 동기를 만들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신뢰할 수 있는 육아 동지를 문화센터 및 커뮤니티를 통해 자연스럽게 만났는데요,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처럼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자주 왕래하다 보니 서로의 거리 역시 가까워지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