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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수진 Aug 20. 2022

비주류여서 할 수 있는 이야기

2022 카셀 도큐멘타 리뷰 1

카셀 Kassel이라고 불리는 독일 중부의 작은 소도시에서는 5년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술 행사가 열린다.

카셀 도큐멘타

2022년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2년마다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의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와 매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이 동시에 개최되는 해로 미술계 관계자들과 애호가들에게는 놓쳐서는 안 될, 시간을 내서라도 유럽에 발을 딛게끔 하는 중요한 한 해가 되었다.

또한 이 주요한 미술계 행사가 독일에서는 카셀뿐 아니라 뮌스터라는 도시에서도 열리는데,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0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아트 바젤과 베니스 비엔날레는 비교적 짧은 시간을 두고 열리지만 다른 행사들이 긴 텀을 두고 열리다 보니 행사들이 동시에 열리는 해는 유럽 대륙이 그야말로 핫해진다.

제15회 2022 카셀 도큐멘타는 여느 다른 회차 때보다 더 주목을 받았다.

독일의 통일에 대한 염원과 전범국가라는 이미지를 벗고 문화국가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고자 만들어진 서구 미술 중심의 도큐멘타전에서 이번에 최초로 아시아 예술가 집단을 총괄 큐레이터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미술사 안에서 주목받지 못했고 제3 세계 미술이라 불리었던 아프리카, 동유럽, 아시아(태국, 한국, 방글라데시 등), 남미, 오세아니아 등의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창작 집단 루앙루파 Ruangrupa는 전체 행사의 콘셉트로 룸붕 Lumbung 내세웠는데 룸붕은 인도네시아어로 시골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공평하게 정해진 기준에 따라 분배되고 집단적으로 관리되는 쌀 헛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참여로 관리되는 공동 자원 룸붕처럼 이번 도큐멘타의 참가 예술가들은 카셀에 모여 인류의 공통 자원인 에너지, 자연, 지식, 교육 등에 관한 공동 창작 활동을 통해 다양한 예술을 전개하였다.

어떠한 작품으로 도달하기까지의 설명이 작품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이해를 돕는데 수월했고 수많은 작가들이 하나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전시가 아닌 그들만의 이유와 그 과정들이 중시되고 동시에 관객과의 소통 그리고 피드백을 함께할 수 있는 그야말로 예술의 룸붕을 만들어 냈다.


주요 전시관에서의 예술가들은 직설적으로 "우리는 서양 예술 이론을 따를 필요가 있나요?", "난 이국적이지 않아. 난 지쳤어.", "예술 학교에 들어갈 권리가 있는 사람은 누구죠? 당신은 그것이 정녕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등의 목소리를 내며 인종차별 혹은 식민주의 등의 이야기뿐 아니라 서구 중심적이고 아카데미적이며 스타 작가 중심적인 지금의 예술 생태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예술은 삶을 들여다본다.


rasad, 2022 사진 하단

메인 전시장 중 하나인 도큐멘타 할레 Documenta Halle에는 어느 도시의 시장을 연상케 하는 큰 규모의 설치작품이 자리하고 있다.

Rasad, 2022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예술 집단 Britto Arts Trust는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로서 수도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활동하는 팀이다. 그들은 실종된 역사, 문화, 공동체를 탐구하고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방글라데시의 사회-정치적인 격변을 이해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단체로 이번 도큐멘타를 위해 그들은 식재료 마트 한 부분을 뜨개질, 세라믹, 메탈, 자수, 천연 향신료, 씨앗, 채소 등을 이용해 재현하였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이 세라믹으로 재현된 식재료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흑과 백으로만 구성된 식재료들은 차갑다 못해 죽어있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인상을 주었고 곧바로 표면에 새겨져 있는 글자로 눈을 이끌었다. "0% 망고", "0% 구아바",  "거짓말 100% 파인애플 주스" 등..

작품 이름인 rasad는 벵골어로 일반 식품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글로벌 기업 시장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내놓는 더 아름답고 더 눈길을 끄는 제품들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지갑을 열게 하고 그렇게 인생에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음식 문화는 우리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더 나아가 우리는 무엇을 먹고 있을까.

더불어 우리네 식탁을 차지한 이 작거나 큰 식품들은 단순히 어느 한 농부에게서 일어난 현상이 아닌 힘을 가진 나라들의 식재료에 관한 정치로부터 출발했으며 이것은 우리 건강뿐만 아니라 환경과 농업 산업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술 집단 Britto는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식재료들로 눈길을 돌려 그것의 뿌리를 찾아 전시장에 데려왔다.

천연 재료들과 유기농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우리들의 식탁 위 사정은 대부분이 혼합되거나 조작된 잡종이거나 합성 비료로부터 만들어진, 살충제와 농약으로 범벅된 과일 그리고 농작물로 가득 차 있다.

진실되지 못한 망고와 구아바 그리고 거짓말로 가득 찬 파인애플 주스에서 볼 수 있다시피 입으로 들어가는 대다수의 것들이 유전자 조작 식품(GMO)으로 만들어졌고 살충제의 과도한 사용은 인간에게뿐 아니라 생태계의 다른 종족들에게 까지 위협을 가하고 있는 현실을 세라믹과 메탈로 재현된 농작물들로 암시하고 있다.

계속해서 범람하는 GMO 씨앗들로 인해 유기 씨앗은 자리를 잃어가고 급기야 우리가 믿고 먹는 "유기농" 식품들 조차도 이제는 거짓말이 되어버린 현실 또한 언급하였다.

작품을 더 깊게 알고 GMO 식품에 대한 자세한 이해를 위해 찾아본 2017년도 자료에 의하면 EU 의회에서 유럽연합 과반수의 국가는 GMO 식품에 대해 강경한 반대의 입장을 펼쳤지만 재밌게도 현재 GMO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도큐멘타 전시가 열리고 있는 독일은 (자국 내 GMO 재배 금지이지만) 그 당시 기권표를 던져 다소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현재도 많은 유럽 국가들은 유기농 식품에 대해 보수적이고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제품 성분의 95% 이상을 유기농 원료로 사용해야만 붙일 수 있는 인증마크인 유로-리프(Euro-Leaf)는 GMO 성분이 0.9% 를 넘지 않는 선에서 부착이 가능하게 되어있다.

소비자가 일일이 알아보는 것이 아닌 유통사와 제조사를 믿을 수 있도록 법적 제도가 갖추어져 있어 마음 놓고 유기농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다는 것인데 평소 식재료의 원산지를 따지고 먹지 않던 나에게 유로-리프는 소비자로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소비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외에도 시중에 나와있는 식품들 중에 팜유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들은 광고를 하듯 포장지에 팜유 프리를 내세우고 있고 글루텐 프리 제품 또한 마찬가지이며 비교적 어렵지 않게 글루텐 프리 제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팜유와 글루텐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민감할 수 있는 성분들로부터 예민한 누군가들을 지킬 수 있도록 결정을 내린 제조사 그리고 그 용기를 실행케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자리가 되었다.

더불어 도큐멘타에서 만난 이 작품으로 인해 GMO 식품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살아가던 한 사람으로서 예전보다는 조금은 더 주체적인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었음에 고마움을 느꼈다.




행사 기간 내내 카셀이라는 작은 소도시는 전체가 전시장으로 변하는데 전시관들이 도시 전체에 도심과 자연 상관없이 흩어져있어 적어도 이틀의 관람일을 필요로 했다.

오픈 시간인 오전 10시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녀 마감 시간인 8시까지 꽉 채우고 나서도 전시장의 반은 봤을까 싶을 정도로 규모가 크기 때문에 쉬지 않고 전시관들을 보러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전시실에 방문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도큐멘타이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액기스만을 모아 리뷰를 더 진행할 예정이니 관심이 있으시다면 다음에 올라올 리뷰들도 들여다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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