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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수진 Jul 26. 2022

다시 대학에 들어가려고요

미술사를 공부해야겠다

엄마 내가 공부를 해볼까 해..


어학연수가 끝난 후 이탈리아에  있고 싶었다.

합법적으로 제일 빠르게 받을 수 있는 비자는 결혼 비자와 학생 비자. 이곳에 더 머물자고 결혼을 할 수 없으니 대학에 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오로지 이곳에 더 머물자고 대학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길을 걷다 보면 발에 차이도록 많은 수백 년의 역사와 예술 작품을 담고 있는 성당들과 전공이 아니어도 수없이 들어온 예술가들의 작품들, 고대 미술부터 현대 미술까지 넓은 예술 문화유산의 스펙트럼을 가진 이탈리아에서 미술에 반하지 않는다는 건 유죄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엄마와 베네치아를 여행했을 때 혼자 갔던 페기 구겐하임 뮤지엄을 보고 돌아오는 바포레토 (베네치아 수상 버스) 안에서 생각을 굳혔다.

미술사를 공부해야겠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익숙한 피렌체나 로마가 아닌 토리노에서 1학년을 시작했다. 원서 접수를 도와주던 유학원에서도 밀라노 영사관에서도 토리노 대학의 문화재학과를 입학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말에게 주변은 보이지 않듯 그 당시의 나에겐 다른 사람의 말은 들리지가 않았다. 여행으로도 방문하지 않았던 토리노라니. 심지어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도시인지도, 이탈리아의 수도였는지도, 날이 좋으면 저 멀리 알프스가 보이는 도시인지도 몰랐던 생소한 곳.


오전 9시, 근대 미술사 수업.

150명은 거뜬히 들어갈 중대형 강의실에 입장을 하는 순간 기대감에 시끄럽던 강의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단지 우연이길 바랬다. 침묵을 무시하고 별 일 아니라는 듯 약 일곱 번째 줄에 착석해 필기구를 꺼내는 순간 뒤통수에서 들려온 그 소리는 마치 토리노를 선택한 나의 선택이 실로 뜬금없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쟤 여기서 뭐해? 설마 교환학생 온 건가? 왜?"

용기 내 아래위, 주변을 둘러보아도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살결로 느껴지는 분위기는 오면 안 될 곳을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정신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 수업이 시작하는걸! 드디어 내가 공부하고 싶던 미켈란젤로를 만나는 순간인가! 는 첫 수업에 처참히 깨져버렸다.

중학교에서 단체로 신체검사를 하듯 빠르고 단호하게 지나가는 교수님의 슬라이드와 설명,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 영어 듣기 평가를 하듯 토시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불타는 나의 의지가 뒤섞이며 수업은 끝이 났다. 수업을 들은 건지 받아쓰기를 한 건지 알 수 없었고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바로 다음 수업 강의실로 이동했다.


중세 미술사.

이 수업의 강의실은 더 컸다. 족히 3-400명은 들어갈 프로시니엄 형 강의실로 이번엔 더 멀리 앉고자 강의실 스크린이 편하게 보이는 중간쯤 착석을 했다. 강의실이 3배는 더 커서 그런지 내가 들어가도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아 안심했다. 그런데 마침 교수님은 처음 듣는 이탈리아어 억양을 가지고 계셨고 내 귀는 다시 이탈리아 도착 첫날로 돌아갔다. 1년 가까이 어학연수를 했다는 것이 무색하게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와르르 덮쳐 왔고 이해를 위해 사전을 찾다 보면 수업은 이미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치 이 강의실 안에서 나만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스크린에는 저것이 예술인지 유물인지 알 수 없는 돌덩이와 금덩이로 보이는 것들이 줄지어 나왔고 주변을 돌아보니 열심히 필기를 하는 이탈리아 아이들이 보였다.  


반면에 내 노트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하얗게 텅텅 비어있었다. 이것이 앞으로의 대학생활이 될까 두려워 눈물이 났다. 수업을 들을 거라는 기대감에 가득차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는데 등교 몇 시간 만에 막막함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남은 수업 내용은 들리지가 않고 계속해서 마음의 소리만 들렸다.



어쩌지? 나 괜히 입학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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