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고사 문제를 출제 중이다. 어법 문제 중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은 동사의 성질 파악하기이다. 혼자 있어도 괜찮은 자동사와, 반드시 목적어가 함께 있어야 하는 타동사를 구분하는 것. 오늘 출제한 단어는 자동사인 exist, 즉 ‘존재하다’였다. 문제를 내며 생각했다. 나는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혼자여도 괜찮은가. 나는 자동사적 인간인가 타동사적 인간인가. 이렇게 심오한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은 지난주에 혼자 야구 경기를 관람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혼밥, 혼술, 혼영’이라고 했던가. 밥도, 술도, 영화도 혼자 즐기는 일이 흔해진 세상이다. 그러니 혼자 야구를 못 볼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심지어 요즘 ‘혼야’라는 전문 용어까지 생겼다지만, 나는 혼자 야구를 보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묵묵히 침잠한 채 홀로 영화를 감상하는 일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인파 가득한 응원의 도가니 속에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함성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상상만 해도 쑥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 가을야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작년 가을 한국시리즈에서 한 장의 표도 건지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아서였다. 올해는 잠실야구장에서 나만의 씻김굿을 해야 했다. 게다가 나는 엘지, 남편은 두산 팬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내가 홀로 거실에서 엘지의 우승을 기뻐하고 있을 때, 조용히 방에서 나와서는 ‘아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TV를 톡 꺼버린 남편의 만행이 이번에도 반복되어서는 곤란했다.
올해 역시 티켓팅은 쉽지 않았다. 계속된 예매 실패로 시들시들해지던 나를 보다 못한 남편이 당근마켓을 들락거렸다. ‘삽니다’ 글만 수두룩하던 어느 날, ‘한 좌석 판매’ 글이 올라왔다. 경기 시작 세 시간 전이었다. 표 값은 정가보다 5,000원이 비쌌으니 감지덕지한 가격이었다. 중앙에서 3루 쪽이라는 애매한 설명이 마음에 걸렸지만 고민은 사치였다. 혼자라도 가겠냐고 묻는 남편에게 어서 구입하겠다는 문자를 보내라고 채근한 후 서둘러 야구장으로 향했다.
경기장 입구에서 만난 판매자는 대여섯 살 정도의 딸아이 둘을 데리고 온 남자였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아빠 옆에 서 있는 순수한 눈망울의 아이들을 보자, 비록 5,000원이지만 웃돈을 얹어 표를 사고 있는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웠다. 이 땅의 미래 세대를 책임지는 교사로서 할 일인가! 하지만 가을 야구를 보고자 하는 나의 열망은 나의 도덕성을 가뿐히 이겼다. 이들을 다시 만날 일은 없다. 오늘 이 순간은 내 삶의 역사에서 즉각 폐기될 것이었다!
서둘러 표를 받고 입장한 후 자리 주변을 살폈다. 중앙이지만 3루 쪽, 역시 상대 팀 팬이 더 많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옆 구르기 두 번이면 우리 팀 좌석인데 타 팀 응원석이라니! 애통했다. 하지만 엘지 팬으로서의 정체성을 눈치껏 드러내기로 마음먹고 슬슬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때였다. 조금 전 내게 표를 판 남자가 두 아이와 들어와서는 주춤주춤 내 옆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내가 산 표는 아마도 그의 아내가 따라나서지 않아 급히 판 표인 듯했다. 심지어 그는 상대 팀 팬이었다. 표를 사는 순간만 쭈글거릴 줄 알았던 내 인생의 찰나가 흑역사로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자 양 팀의 응원이 거세졌다. 내가 앉은 구역에도 엘지 팬이 간간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상대팀 팬이었다. 그러니 더욱 상도를 지켜야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때 응원가는 열심히 불렀지만, 상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때 삼진을 외치진 못했다. 특히 나는 옆자리 남자가 마음에 걸렸다. 그가 두 딸아이를 챙기느라 경기를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 간식을 먹이랴 화장실에 다녀오랴 정신이 없는데, 옆자리 표를 덥석 산 사람이 엘지 응원가를 부르며 점프를 하니 얼마나 짜증이 밀려왔겠는가. 내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그가 상대 팀일 줄 알았겠느냐 말이다. 빼곡히 앉은 상대 팀 팬들 사이에서 섬처럼 앉아 노래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기분 좋은 승리로 경기가 끝나자 응원단장이 말했다. 어차피 지금 나가도 차가 막히니 응원을 더 할 사람들은 남아서 이어가자고. 그것은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는 작년부터, 아니 태초 이전부터 나를 불렀을지도 몰랐다. 이제 내가 응답할 차례였다. 응어리를 풀 기회를 얻은 나는 슬금슬금 1루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 틈에 선 채로 노래를 불렀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모아 포효하며 마침내 비상하려는데, ‘아파트’ 응원곡이 흘러나왔다. 노래할 때 옆 사람과의 어깨동무가 필수인 아파트! 그 순간, 내 안에서 사회적 자아가 올라왔다. ‘지난주 수업한 반의 민준이네 부모님도 경기에 왔다던데...’ 갑자기 머쓱해졌다. 그렇다. 1분 전에 슬쩍 자리 잡은 곳에서 만난 옆자리 사람 어깨에 호기롭게 팔을 걸칠 용기는 내게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생각보다 나는 마음껏 혼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바야흐로 인생 100세 시대였다. 앞으로도 두산 팬인 남편과 진심으로 기뻐하며 엘지 경기를 함께 볼 수는 없을 것이었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친구와 가을야구를 볼 시간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표가 없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전략을 찾아야 했다. 아직 엘지에겐 플레이오프가 남아 있었다. 남은 경기를 더 재밌게 보기 위해 나는 다음 단계를 밟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