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너
싫어하는 장소가 몇 군데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지난 주말에 다녀왔다. 갈 때마다 늘 스트레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갈 수가 없는 곳. 결혼식장.
축하와 웃음,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찬 곳이지만 나에게는 걱정과 고민, 고난이 응축되어 있는 곳이다. 이런 고민을 갖고 고통스러워할 바에 차라리 안 가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냐고 생각할 순 있지만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곳에 내가 빠지면 서운한 감정이 들어 쉽사리 참석이 어렵단 이야기도 하지 못한다. 들뜬 마음으로 가서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혹자는 나에게 결혼도 해놓고선 도대체 왜 그런 마음이 드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나의 혼인 유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문제는 사진 촬영이 끝난 후 식사를 하러 가면서부터 생긴다. 보통 지방의 결혼식장의 식사는 아주 고가의 호텔 예식이 아닌 이상 대부분 뷔페로 되어있다. 나의 오른팔은 고작 30도 정도 들 수 있는 상황이며 이두근 또한 제기능을 하지 못해 음식을 두어번 푸다 보면 어느덧 힘이 빠져 쓸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남들은 산처럼 음식을 쌓아올 때 난 겨우 다섯입이면 끝날만큼의 음식만 들고 온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건 나의 작디작은 체격이다. 160이 채 안 되는 키에 40초반의 몸무게, 거기다가 뼈대도 얇아 거의 손가락만하다. 누가 봐도 많이 못 먹는 사람의 체격.
“누나는 뷔페 오면 손해다, 손해.”
“야, 나도 그래서 내 돈 주고 뷔페는 절대 안 가.”
문득 ‘뷔페에서 얼마만큼 먹어야 나에게 남는 장사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으로 승부를 볼 수 없으면 질로 승부를 보자!라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두번째 접시를 뜨려고 일어났다. 잔뜩 긴장을 한 채 가서 그런 것인지(그게 뭐라고 긴장하는 나도 참 웃긴다.) 이미 첫번째 접시를 뜰 때 작디작은 근육들을 써버려서 그런 것인지 나의 예상보다 빠르게 근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연기를 해야만 했다. 아무렇지 않은 연기. 종류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먹을지 아직도 못 정했다는 듯, 배는 부르지만 이대로 가기엔 아쉬워서 뭐라도 더 먹고 갈 것이라는 그런 연기들.
장애인이 되고 나서 레벨 업한 능력치는 연기력이다. 중고등학교 때 만우절만 되면 선생님들을 속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있는 아이들을 따라 나 또한 그들을 속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경험치 만렙인 선생님들을 속이기 위해서는 기발한 아이디어나 고도의 연기력이 필요한데, 반장이었던 나는 언제나 한결같이 발연기를 선보여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긴 했었다. 지금의 연기력으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선생님은 물론 교장선생님까지 속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누나, 그거 먹고 충분해?”
“야, 나 너무 배불러. 배 터질 것 같아.(아냐, 구라야. 한 그릇 먹고 배부른 사람이 어디 있어.)”
“진짜 위 작아. 식혜 뜨러 갈 건데 누나 것도 떠다 줘?”
“어어, 고마워.”
이번 결혼식에서도 잘 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