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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Oct 10. 2022

닿지 않을 너에게 쓰는 편지

 한 번쯤은 내 꿈에 네가 나올 법도 한데, 4년이 넘도록 얼굴 한 번 안 비춰주는 네가 참 미우면서도 한편으론 그곳이 얼마나 즐겁길래 나한테 한 번을 안 들러주나 싶으면서 다행이다 싶어.

 사이가 좋지 않은 어른들을 피해 동네에 있는 작은 공터에 쪼그려 앉아 흙으로 장난치며 놀던 우리였는데 말이야. 너보다 세살이나 많은 내가 먼저 성인이 되었고 그런 나에게 너는 스무살이 되면 같이 술 마시러 나가면 되겠다고 3년만 눈칫밥 먹자며,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바람이었지.

 머리가 좋지 않아 좋은 대학에 못 갔다며 불평불만을 늘여놨던 네가 어느 날 직업군인으로 가서 안정적으로 살 거라며 호기롭게 입대를 했지. 그러고 3개월 만에 돌아왔어 뇌종양으로. 입대 전부터 잦은 두통으로 괴로워했었는데 다들 안일하게 생각했었나봐.

 나 보고 아프지 말라고 했었는데 네가 뇌종양 진단을 받은 지 4년째 되던 해에 나는 척수염이라는 병에 걸렸어. 할머니집이 아닌 재활병원에서 마주한 우리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오더라. 엄마랑 숙모의 눈을 피해서 단둘이 있을 때는 종종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어. 삶의 의지가 없었던 나와 살고싶어 발버둥치던 너였는데, 어느덧 나는 살아남았고 너는 사라졌지. 이렇게 살 거면 죽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나의 물음에 너는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삶을 사는 것도 꽤나 나쁘지 않다고 말했었지. 엄마랑 숙모가 우리의 대화 내용을 들으면 슬퍼할 것이 분명했어서 숨어서 나눈 대화도 난 나쁘지 않았어. 지금 생각해보면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안부 나누듯 하는 우리가 참 이상하긴 했었지.

 나는 재활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운이 좋게도 취업에 성공했어. 수많은 수술과 항암치료로 걷기는커녕 앉아있는 것조차 힘든 너와는 더욱이 연락하기가 힘들었지. 세상과 이별할 준비를 천천히 하는 너였기에 섣불리 전화를 하기도 겁이 났어. SNS를 탈퇴하고 휴대폰을 없애고 집 밖을 안 나오는 너라는 걸 알았기에 나 또한 그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겠더라. 간간히 숙모를 통해 전해 들은 너의 이야기의 대부분은 나의 건강과 안부에 대한 이야기였어. 누나라도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겨우 되살아난 삶의 불씨를 자기를 마주하면서 다시 꺼뜨릴 순 없으니 안 보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들.

 네가 떠나기 며칠 전에 꿈을 꾸었어. 우리 오빠랑 나랑 너랑 네 형이랑 할머니집 근처 슈퍼에서 한 손에는 하드를 또 다른 손에는 딱지를 들고 즐거워하는 꿈. 분명 행복한 꿈이었는데 꿈에서 깼을 때의 내 얼굴은 눈물범벅이었어.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울었나 보더라구, 눈을 떴는데 엄마가 놀라서 날 지켜보고 있었으니 말이야. 문득 네가 이제 정말로 떠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행복한 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희미해져가는 너의 영혼이 내 꿈에 아주 잠깐 들러준 건 아닌가 싶어. 그때 잠깐 들러준 너 덕분에 네가 떠난 날 나는 조금 덜 울 수 있었어. 그래도 영정사진 속의 너는 너무 건강해 보여서 한차례 또 울긴 했지만 말이야.

 거긴 어때? 좋아? 그냥 안 좋아도 좋다고 잘 지내고 있다고 이야기하러 와 줄 수 있어? 꼭 나의 꿈속이 아니어도 괜찮아. 숙모 꿈에 한번만 나와주라. 네가 너무 매정하다고 때때로 우시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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