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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렌지 Apr 21. 2024

빨리 좀 하라고!!

등원전쟁 1

“빨리 신어! 지금 안 나가면 버스 놓칠지도 몰라.”      


현관문 앞에서 꾸물대는 아이에게 나는 계속 소리쳤다. 나의 다급한 목소리에 같이 덩달아 맘이 급해진 아이는 나에게 짜증 섞인 말로 대답했다.      


“엄마! 나 지금 하고 있다고!” 

아이의 속도가 성에 차지 않는 나는 계속 다그치고, 다그치고 또 다그친다.      


“빨리하라고. 빨리. 늦는다니깐”     


현관문 앞에서의 재촉하는 실랑이. 이건 아이가 언제쯤 커야 안 할 수 있는 걸까?     


아이를 등원시키면서 ‘빨리빨리’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아이 입장에서는 빨리하고 있는 상황일 텐데 내가 정한 시간에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금세 마음이 조급해져서 자꾸 아이들을 재촉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나의 재촉에 못 이겨 어느 날은 신발 한쪽을 마저 다 신지 못한 아이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끌다시피 하고 나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겉옷 입고 있는 아이들을 제치고 먼저 나가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어서 나오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렇게 재촉하고 소리쳐서 아이들을 등원 버스 타는 장소로 데리고 나오면 막상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한 날이 많았는데 그때 서야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아이들에게 재촉하고 다그치기만 해서 미안했고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까 생각했다.     


시간의 압박이 유독 심한 것은 나의 불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시간강박이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난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한 날이면 늘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였다. 약속시간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기보다는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시간 안에 꼭 도착해있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다. 늦으면 마치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함.

늦을 것 같은 마음을 부여잡고 어떻게 해서든지 약속된 시간보다 5분~10분은 먼저 도착해 있어야 안심이 되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교까지 왕복 3시간 이상 소요되는 통학 거리에도 지각 한번 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어린 나는 그랬는데 육아를 하면서 매 순간 기다림이 필요한, 어떻게 보면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게 당연한 아이들을 보며 시간강박이 있는 나는,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보면 답답했고 속에서 불이 일었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강박적인 시간관념이 육아를 하면서 나의 마음을 광풍으로 몰아치게 할 줄은 몰랐다.                

Unsplsh의 Arwan sutanto

불안함.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그날은 평상시와 같이 등원준비로 바쁜 아침이었다. 나는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였고 나갈 시간이 다되어가자 마음이 다급했다. 아이들은 평상시처럼 분주한 나를 보고 눈치를 보며 준비에 한창이었다. 모든 게 평소 같았지만, 나의 재촉에 첫째의 반응만큼은 평소와 달랐다.


큰 아이는 그날 처음으로, 나에게 이렇게 울면서 말했다.  


“엄마는 왜 맨날 소리를 지르는 거야. 나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단 말이야!!!!”


그 순간 얌전하게 나에게 맞춰 순응했던 아이의 180도 달라진 모습에 내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찬찬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평상시라면 그저 나의 속도에 맞게 재빠르게 준비하려고 노력하던 아이가 악을 쓰며 토해내듯 울고 있었다. 발버둥을 치며 바닥에 주저앉아 걸쳐 입은 겉옷도 집어던지고 울어댔다. 차가운 현관 바닥인 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아이는 그렇게 바닥에 드러누워 대성통곡을 했다. 뭐라고 말을 하는지도 잘 모를 만큼 말소리가 울음소리와 섞여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아이가 억울함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걸.      


그런 아이의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머리 뒤통수를 무언가로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왜 시간에 맞추어 빨리빨리 해내지 못하냐는 나의 고함이 귓가에 울렸다. 과거의 숱하게 재촉했던 내 모습이 떠오르고 내 말들이 내 귓가에서 다시 울리는 것 같이 귀가 웅웅거렸다.  


아. 나란 엄마는 왜 이럴까. 왜 고작 만으로 4살밖에 안된 아이에게 내가 초등학교가 되어서야 가능했던걸 강요하고 있는 걸까.


큰 아이의 모습으로 보고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기에 숨을 한껏 들이마시고 시계를 봤다. 세상에. 아직 10분이나 남아있었다. 바닥에 앉아 어린이집에 안 갈 거라고 엉엉 울어대는 아이 앞에 마주 앉아 손을 잡았다. 나의 재촉에 다급한 엄마의 성미에 못 이겨 챙기면서 긴장을 해서였을까. 대성통곡을 하면서도 무서웠을까. 온몸으로 울어대는 거 같았던 아이의 손은 땀이 나서 축축했다.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소리를 크게 안내면 엄마 말을 잘 못 듣는 거 같아서 자꾸 목소리가 커졌나 봐.”


이기적이면서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으로 아이를 겨우 달래서 문을 나섰다.

그렇게 등원시키고 집에 돌아오면 한번 더 웃어주지 못하고 편안하게 등원시키지 못했던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쌓여갔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알고 있었다.     


느릿느릿 속 터지는 아이의 행동이 못마땅했다는 것을.


그런 아이들에게 왜 이렇게 늦게 하냐고, 타박하듯 화를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 어릴 때처럼 척척척 준비하지 못하는 나와 다른 아이의 모습을 답답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알게 된 사실은


어릴 적 내가 싫어했던 부모님의 화내는 모습과 지금 나의 모습이 너무도 닮아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울부짖으며 했던 모든 말이 너무나도 맞는 말이었다는 것이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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