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린 나에게 뉴욕을 선물했다.

0. 인생은 늘 최악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을 함께 가져다 준다.

by 이애플

#0. 짤린다는 것.

그러니까, 3월이었다.

아니, 늦은 2월말이었을까.

무언가 대단한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2022년,

보란듯이 올해의 위기가 닥쳤다. 바로 '봄개편'


나의 직업은 방송작가, 정확히는 라디오작가다.

얼핏 보면 굉장히 워라밸이 좋은 직업이지만, 1년에 두번

결코 유쾌하지 않은 개편이라는 시기를 겪는다.


이 일을 시작한지 10년,

막내작가 시절에는 막연히 메인작가가 되면 개편이라는 시기를 조금 더 마음 편히 보낼 수 있을까 생각했었지만, 모든 일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조바심은 늘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새벽방송의 메인작가로 일한지 1년 반 남짓,

사실 힘들긴 했다.

중고등학생때부터 지금까지 늘 밤도깨비처럼 살던 내가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까지 출근을 한다는건, 그야말로 계획에 없던 일이었고

과거의 내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코웃음을 칠만큼 터무니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뭐든 닥치면 하게 되는 법.

나는 이 대단하고 거창한 일을 1년 반 넘게 해내고 있었고

(의외로 잘맞았다. 비록 낮잠을 자게 되긴 했지만)

크게 내 일상 루틴에 불만이 없는 상황이었다.


한학기 정도는 이 새벽프로그램을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봄개편 시기가 돌아왔고,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우리 프로그램의 새로 발령 난 PD는 나와 함께 할수 없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정확히 말하면 통보받았다)


언제나 그렸던 그림이었다. 일년에 두번씩 늘 내가 백수가 되었을때의 그림을 그려왔으니까.

코로나 이전의 시기에는,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 무조건 쉬게 되면 해외여행을 길게 가겠다,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2년이 넘는 시간동안 해외로 가는 길이 막혀있었고, 그 시간만큼은 부디 백수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 늘 최악을 먼저 상상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막상 그 일을 겪고 보면 내가 생각한 최악보다는 괜찮아서 그럭저럭 안좋은 일을 잘 넘기는 편이다.

물론, 너무나 최악을 상상하다보니 마음이 괴롭긴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나를 지키는 방어기제 인것 같다.


1년에 두번씩 늘 백수가 되는 상상을 했던 나는

해외여행의 문이 조금씩 열렸던 2022년 봄, 나는 백수가 되었다.

정확히는 짤.렸.다.

- 쉽지 않았던 오전 7시 퇴근길 풍경


#1.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프로그램에서 나가게 된것은 기분이 나빴지만, 막상 백수가 된 첫주는 나쁘지 않았다. 통장이 가벼워진 대신, 나의 머릿속도 가벼워졌으니까.


일단 글쓰는 공장처럼 써내려가야했던 원고를 더이상 쓸 필요가 없어졌고,

새벽 4시에 일어나야한다는 극악의 기상시간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가장 처음에 이런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 짤리는 거 나쁘지 않은데?'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적지 않은 월급이 아쉽긴 했지만,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하고 싶었던 운동을 마음껏 하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보고싶은 것도 마음껏 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마음껏 볼 수 있다니.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이 끝날것 같았는데 사실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세상이 더 아름답고 여유롭게 보였다니까. 한번쯤은 이렇게 살아보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렇게 백수 생활을 만끽하고 있던 4월 둘째주, 이렇게 소중한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2년이 넘게 해외여행은 꿈도꾸지 않고 있었는데, 문득 2년전 무산됐던 뉴욕여행이 생각났다.

매년 여름에 나의 여행메이트와 열흘씩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었는데, 인도네시아 발리, 스페인, 파리와 런던, 그리고 그 다음 여행지가 바로 뉴욕이었다.

2020년엔 꼭 가리라 약속했는데, 코로나가 터졌고 우리는 티켓팅을 하기도 전에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 꿈이 문득 다시 생각나, 한동안 열지 않았던 대한항공 어플을 몇번을 껐다 켰다 반복했다.

한번에 결정하지 못하고 계속 보기만 했던 이유는, 혼자 해외를 간다는게 조금은 무서웠기 때문이다.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기분을 사랑하지만, 늘 옆에는 친구가 함께 했었기 때문에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미국에 있는 이모가 생각이 났고, 미국 동부에 있는 이모집에 먼저 갔다가 뉴욕으로 향하게 된다면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나는 짤린지 2주만에, 나에게 미국행 비행기표를 선물했다. 겁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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