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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Aug 14. 2023

'탈모 말고 뭐지?'

-초등학교 한자수업 시간-

지난주에 나는 방과후학교 한자수업을 하느라 며칠간 출근했다.

백수가 모처럼 출근하자니

태풍 카눈이 두렵지 않고, 사뿐사뿐 걸음이 가벼웠다.


 1학년 학생 세 명은 꼬꼬마들로 유치원생 꼬리표를 뗀 지 불과 6개월 남짓했다.

반면 6학년들은 중학생이나 다름없이 성숙했다. 키도 나와 비슷했다.

3, 4학년 학생들만이 진짜 초등학생 같았다.


한자교육의 우선순위에 대한 나의 결론은 이렇다.

'제일 먼저 부수한자에 대해 배우고,

여기에 각 학년별 한자를 뽑아 보강하고

마지막으로 한자급수 시험을 대비한다.'


부수한자는 한글의 ㄱㄴㄷㄹ ㅏㅑㅓㅕ 같은 류다.

대체로 그림이 글자로 변형된 것이라 직관적이다.

예를 들어 山이나 火 이런 글자를 보라.

이해하기 쉽고 기억하기도 수월하다.


이런 부수들이 모여 새로운 뜻과 음을 가지거나

(예를 들어 門, 問, 聞, 悶, 閔)

글자모양에 약간의 변형이 일어날 때

(예를 들어 刀, 刃)

이 낯선 글자를 구성하는 부수글자들을 알고 있으면

 꾸역꾸역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쉽게 이해하고 습득하게 된다.

그래서 부수한자에 대한 교육을 기본으로 여긴다.


한자는 어려운 글자가 아니지만

기초가 되는 부수를 공부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천지사방을 헤매다가

학습의욕이 우주미아가 되어  사라진다.     


  나는 어려서부터 천자문을 시작으로 명심보감과 소학, 사서삼경을 순서대로 다 배웠다.

그래서 더욱 '어린 학생들의 한자교육은 내가 거쳐온 과정처럼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심지어 그런 책들을 배웠다 하여

내 인성에 크나큰 개선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더 황당한 진실은

8급부터 시작하는 한자급수가

초등학교 1~6학년 교과서에 나오는 한자순서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학년별 국어나 사회, 과학, 실과 국정교과서를 다 읽으며

한자를 뽑아보니 그랬다.

때문에 문해력 향상이 목적이라면

모르는 어휘의 낱말풀이 네이버 등에서 검색하는 편이 낫다는 걸

부모님들이 아셨으면 좋겠다.

 

이런 이유로 나는 학년별 교과서의 한자어 중에

학생들이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는 한자를 따로 뽑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방학 때나

혹은 학교 진도에 맞춰 가르치려고 준비한 자료들이다. 


마지막으로 한자급수 시험대비 한자교육을 한다. 비중이 제일 작다.

부수글자를 며칠 배우다 보면

8급 한자 중 70%와

7급 한자 일부를 덤으로 배우는 셈이나 마찬가지여서

급수 시험준비가 수월타.

 한편 한자급수시험에는 두 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 부모, 교사 모두 급수시험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또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다양한 교재가 개발되어 있어 학생 취향대로 텍스트를 고를 수 있다.



나의 한자수업은 그림 옆에 한자를 써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학생들은 그림을 보고 한자의 뜻을 추리해 낸다.

이해가 되니 이 한자가 들어간 어휘를 이것저것 스스로 떠올린다.

복습은 한자카드로 퀴즈를 하는 것이다.

힌트가 허용된다.  

학생들의 기발한 힌트로  교실에선 날마다 폭소가 터졌다.

 毛(털 모)가 써진 한자카드를 꺼내 들고

'탈모 아니고 뭐지?'라고 친구들을 닦달했던 학생도 있었고,

臼(절구 구)라는 글자를

'그 왜 있잖아. 달나라에서 토끼가 떡 찧는 거. 그거 뭐야?'라고 힌트를 주기도 했다.

馬(말 마) 한자카드를 들고 히히힝 말소리를 내는 저학년도 있었고,

영어로 힌트를 주는 고학년도 있었다.

하여간에 카드를 들고 있는 학생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친구들에게 힌트를 줬다.

평소에는 칠판이나 A4용지에 한자를 쓰다

 마지막날은 화선지에 붓으로 한자를 쓰도록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학생들 중 70% 정도는 자신의 이름을 쓰고 싶어 했다.

여분의 종이에 학생들은 숫자도 쓰고 이목구비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했다.

1학년 대부분은 개발새발 썼지만

6학년 학생 중 한 명은 처음 써본다고 하는데도 글씨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서예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4일간 1학년들은 80여 개를, 고학년들은 110여 개의 부수한자를 배웠다.

학생들의 뿌듯해하는 표정에 나도 보람을 느끼며 수업을 마쳤다.


이제 나는 백수로 다시 돌아와 텃밭과 꽃밭의 잡초를 뽑고, 드럼레슨을 받으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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