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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Aug 16. 2023

나의 서예 선생님

1998년 나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점점 배가 불러오자 휴직 후 집 근처에 있는 서예학원에 등록했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육조체를 배웠다.

그리고 육조체의 매력에 흠뻑 빠져 매일 집에서도 붓을 들었다.

어렸을 때 붓글씨를 쓴 적이 있어서

새로운 서체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되었다.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쓴 글씨를 보며 여러 번 칭찬하셨다.

 '원장님보다 가 더 잘 쓰는 것 같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안다.

흉내를 잘 낸 글씨와

혼연일체가 된 글씨가 어떻게 다른지를...


하여간 나는 아주 즐겁게 서예학원에 다녔고, 어느덧 산달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하루는 원장님께서 출근을 하지 않으셨다.

수제자란 분이 와서 문을 열어줬는데, 서예가답지 않게 그의 행동이 어수선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온 대답은 '원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얘기였다.


경위는 이러했다.

원장님은 전날 댁에서 쉬던 중에 협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출품한 작품이 드디어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 전시된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전국의 내노라하는 서예가들의 경쟁 속에서

 드디어 기대하고 고대하던 입선의 영광을 안으셨다!

 소식을 들으며 원장님은 크하하하 웃으셨다. 그리고 그대로 통화 중에 심장마비가 일어났다.

옆에 계시던 사모님이 곧장 119를 불러 삼성병원으로 옮겼지만

응급실 도착 전에 원장님은 이미... 


이렇게 황망하게 원장님이 떠나신 후

나는 얼마간 제자분의 지도를 받다가 결국 그만두었다.

그분도 육조체를 잘 쓰셨으나

원장님의 서체와  달리 가벼웠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직접 만드신 나의 벼루집, 동거동락 45년)


내가 붓을 처음 잡은 건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이었다.

천자문 책을 2/3 즈음 배운 후에 글씨를 배우기 시작했다.

벼루 밖으로 먹물이 튀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먹을 붙잡고

원도 그리고 8자도 그리고 11자도 무수히 그리며 지쳐갈 때 즈음

먹물의 농도는 적당히 짙어졌다.

화선지가 귀해서

언니와 나, 남동생은 할아버지가 보시던 신문지에다 주로 붓글씨 연습을 했다.

우리 할아버지의 서체는 단아했다.

석봉체에 비해서 덜 화려했지만 욕심 없고 깔끔했다.

덕분에 나는 여고 졸업할 때까지 미술시간에 좋은 점수를 받았다.


대학생 시절 어느 가을 오후에 

 나는 하숙집에서 두보의 시를 쓰고 있었다.

붓글씨에 집중하느라 창 밖에서 누군가 내 방을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몇 장을 써 내려가다 먹을 갈기 위해 잠시 쉬었다.

바로 그때 창밖의 사람이 인기척을 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훗날 내 남편이 되었다.

남편은 내가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그 단아한 서체를 좋아한다.

하지만 정작 내가 좋아하는 육조체엔 눈을 흘기면서까지 싫은 티를 팍팍 낸다.

  

나는 해마다 예술의 전당 서예관을 방문했다.

새로운 서체의 등장이 반가우면서도

여전히 육조체에 매료된다.

그리고 그분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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