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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Dec 21. 2024

나의 십 대 시절 기억 1.       

                               - 롤러스케이트-

    

그 시절 양쪽 발바닥에 10개씩 구슬 같은 물집이 잡힌 사람이 나뿐이겠는가!

오늘 아침 10cm 넘게 쌓인 눈을 치우다가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내가 중3 때인가 우리 동네에 롤러스케이트장이 생겼다.

그곳은 5일장이 열렸던 읍내동 시장 근처였다.

친구들이 이 신나는 장소에 대해 얘기했을 때, 마침 내 용돈주머니가 두둑했다.

우리들은 하교 후 찰떡궁합으로 뭉쳐 그곳으로 향했다.

첫날은 똑바로 서있기조차 어려워 다들 그렇듯이 우리들도

앞으로 무릎을 찍었다가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가를 무한 반복했다.

쿵쾅거리는 디스코음악과 우리들 꼬락서니에 배 아프게 웃다 보니

30분은 3초처럼 지나갔다.

이 즐거움에 맛 들린 나는 그 뒤로 여러 번 롤러스케이트장에 갔다.

     

그런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학교에서 롤러스케이트장을 불온 장소로 지정해 버렸다.

부모님과 동반하지 않을 때는 탁구장조차 청소년에게 금지했던 시절이었으니,

남녀 청소년들이 웃으며 빙빙 돌아다니는 롤러스케이트장이야말로

위험천만한 장소로 간주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늦었다.

저축해 둔 용돈을 다 꺼내 쓸 정도로 나는 롤러스케이트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다.     

선생님들의 눈을 요리조리 피하며 나는 계속 롤러스케이트를 탔다.

그새 전진과 코너회전의 속도조절은 물론이고 뒤로 달리기나 파도타기도 능숙해졌다.

(파도타기란 바닥을 둥글게 울퉁불퉁하게 만든 장소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말함)     

어느 날 롤러스케이트장에 이런 벽보가 붙었다.

‘모월 모일 모시에 이런저런 코스로 1,2,3등을 뽑아 상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즉시 나의 뇌에서 도파민이 철철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금지하는 장소였지만 대회를 앞두고 연습을 게을리할 수는 없는 일!

누가 나가보라고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 대회에 나가 우승을 꿈꾸었다.


대회 전전날 발바닥이 아파서 양말을 벗어 보니

엄지발가락 아래서부터 아치를 지나 발뒤꿈치까지

양쪽에 줄줄이 물집이 잡혀있었다.

가속도가 붙은 상태로 코너를 돌려면

양쪽 내측 발바닥만 교대로 바닥에 대고 회전할 수밖에 없었다.

징그럽기도 하고 쓰라리기도 하고...

물집을 터뜨릴까 말까 하다가 대회가 끝날 때까지 내버려 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회에서 나는 망했다.

여태껏 망한 대회가 한두 번이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세 번째 회전에서 1위를 탈환하기 위해 가속도를 높이다가

코너에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속도조절을 0.0001% 아슬아슬하게 놓쳤다.

      

그리고 교감선생님께도 딱 걸렸다!

대회가 끝난 후 신발을 갈아 신고 롤러스케이트장을 빠져나오다가

그곳을 감시하러 들어오는 교감선생님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이제 학교에서 내 앞날은 뻔했다.

교무실에 불려 가서 정신봉(대나무 회초리)으로

손바닥에 불이 날 정도로 맞을 일만 남았다.   

  

다음날 천근만근의 상태로 등교를 했다.

아침에 교감선생님께서 바로 호출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했다.

하루 종일 가슴을 졸였지만 하교 시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주 월요일이 되자 나는 전교생 앞에서 성적우수상을 받았다.

14과목 중 11과목은 100점, 3과목에선 한 문제씩 틀렸고

2등과는 평균 4점 차이로 매우 우수한 성적이라고 칭찬을 받았다.

단상에 올라가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상과 상금봉투를 받았다.

상금봉투는 하얀 편지봉투인데 매번 빈 봉투다.

빈 봉투를 들고 하교 전에 행정실에 가면 행정실 직원이 상금(현금)을 준다.

1년에 네 번 기회가 있었고, 1등은 5만 원, 2등은 3만 원, 3등은 2만 원이다.

그때 5만 원이면 진주시에 있는 나이키 매장에 가서 옷을 한 벌 살 수 있었다.  


   

그 후 내가 담임선생님 심부름으로 교무실에 갔을 때

교감선생님께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당부하셨다.

‘알제! 거기 그만 가래이.’...

나는 그분의 관대함에 대해 마땅한 답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롤러스케이트장으로 향하는 발길을 뚝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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