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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와소나무 Dec 22. 2024

나의 첫 번째 시합

-교감신경 몹시 흥분-


한 달 쉬다가 배드민턴 훈련에 다시 참가했을 때

우리 학교 대표선수 중 한 명이 발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래서 5학년 후보 선수 명단 마지막 칸에 내 이름이 올라갔다.     


다른 학교와 시합이 있던 결전의 그날 아침,

우리들은 교장실로 안내되어 학교에서 주는 운동복을 받았다.

등판에는 선수넘버와 학교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반바지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선수복장을 하니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묘한 승부욕이 발동했다.

나는 후보 선수일 뿐 대진명단에 등록된 선수가 아니어서 경기장에 나갈 일은 없겠지만

복장이 주는 파워를 온전히 느끼며 기분이 들떴다.    


 

드디어 여기저기서 종목별로 시합이 진행됐고,

나는 상대팀선수와 우리 팀을 번갈아 보며 경기진행을 관찰했다.

우리 팀 선수의 실수는 너무 안타까웠고,

상대편 선수의 얍삽한 공격에는 분노가 치밀었다.

이렇게 넋을 빼고 경기를 보고 있는데, 저쪽 철제의자에 앉아있던 코치가 나를 불렀다.      


코치는 '다음 경기엔 네가 나가라!'며 준비하라고 하셨다.

그 말에 나는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진 것 같이 어안이 벙벙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경기를 보느라

저쪽에서 진행 중인 경기에서 우리 팀 선수가 다친 걸 못 본 것이었다.

갑자기 내 등의 번호판이 무쇠솥뚜껑이라도 되는 것 같이 무거웠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얼굴은 핼쑥해지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뭔가 체한 듯 구역감도 느껴지고 발이 저려서 쥐가 날 것만 같았다.  

   

도망갈 곳이 없는 나는 허둥지둥 라켓을 쥐고 공 두 개를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모서리 쪽에 서서 서브를 넣었다.

덜덜 떨며 뻣뻣하게 굳은 채로 서브를 넣으니

공은 라켓의 테두리에 맞고 네트에 툭 걸렸다.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코치가 인상을 쓰며 고함을 쳤다. "연습하던 대로 해!"

    

신경질적인 그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건 나뿐이 아니었다.

나와 경기하던 다른 학교 학생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뒤의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이겼다.     



맹세코 잘해서 이긴 게 아니었다.

상대방 선수가 나보다 더 꽝꽝 얼어있었고,

양쪽에서 실수 연발하는 통에 엉망진창 경기를 했으며

정신 차려보니 내가 이겼을 뿐이라고 나는 기억한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렇게 해서 얻은 나(우리 학교)의 우승이

무려 16년 만에 되찾아온 엄청난 우승이었다는 사실이었다.

80세가 되어가는 막내이모는 지금도 '우리 조카가 16년 만에 우승을 되찾아왔어!'라며

마치 내가 운동을 엄청나게 잘해서 이긴 것처럼 오해를 하고 사신다.

‘우승한 것은 맞지만 잘한 경기는 아니었다.’고 여러 번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다.  

   

그 후 나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2년간 학교대표선수로 모든 시합에 나갔다.

단식 선수로도 나가고 복식 선수로도 뛰었다.

경기의 경험이 쌓여가면서 긴장을 덜어내는 방법도 차츰 터득했다.

연습과 시합이 반복되면서

나중에는 상대방의 행동만 봐도 내가 이길지 어떨지 감이 왔다.

늘 이기기만 한 게 아니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첫 시합 외에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시기에 깨우친 것들이

그 후 4-50년간 나를 지켜준 버팀목이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매 경기마다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했다.

그래서 지든 이기든 최종결과를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기고 싶은 열망은 있지만 진들 뭐 어떻다는 건가! 져도 배우는 게 있다.  

     

또 약간의 긴장과 높은 집중력은

나의 평소실력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동력임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를 긴장시키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 오더라도 회피하지 않았다.

그런 일들을 통해 내가 한층 더 발전할 것임을 기대하면서 감내했다.

고등학교시절 부진한 성적표 앞에 좌절하지 않았던 것도 이 덕분인 듯하다.


정작 나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지나친 부정적인 감정들이었다.

이럴 땐 우선 깊게 호흡하면서 한 발 떨어져 분석해 보는 태도가 도움이 됐다.

일의 해결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감정처리임을 운동하면서 몸에 익혔다.  


        

그랬더라도 나의 첫 번째 시합이 패배로 끝났으면 어땠을까?

아마 다른 기억이 강렬히 남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좀 좋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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