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입의 디자인 담론은 다시금 근원적 질문으로 회귀하고 있다.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가’라는 실천적 고민을 넘어서 ‘왜 디자인하는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은 단순한 산업의 부속품이 아닌 문화적·사회적 실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바우하우스를 호출하게 된다. 단지 20세기 모더니즘 디자인의 기원으로서가 아니라, 오늘날 디자인이 당면한 문제군에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하는 역사적 모델로서 말이다.
바우하우스(Bauhaus, 1919–1933)는 근대 디자인 교육과 실천에 있어 결정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한 사조이자 제도였다.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격동기의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출현한 바우하우스는 단순한 예술학교 이상의 성격을 지녔다. 그것은 예술, 공예, 기술의 통합을 통해 삶의 총체적 개선을 추구한 하나의 문화운동이었으며, 그 지향은 산업화 이후 인간 소외의 문제를 예술적 실천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
바우하우스가 남긴 유산은 실로 광범위하다. 조형 이론과 교육 방법론, 기능주의적 형태관, 기계미학에 기반한 재료 중심주의(material-based approach), 그리고 시각언어로서의 타이포그래피 재정의 등, 현대 디자인의 거의 모든 근간에 바우하우스적 사유가 편재해 있다. 특히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원리는, 루이스 설리번의 건축 담론에서 기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우하우스를 통해 보편화된 현대 디자인의 기본 명제로 확립되었다.
그렇다면 왜, 21세기를 사는 지금 우리가 바우하우스를 다시 참조해야 하는가?
첫째, 디지털 전환기에서의 인간 중심 디자인에 대한 재성찰 때문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알고리즘 기반의 자동화 등 기술 주도의 환경 속에서 디자인은 ‘기술에 인간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인간의 삶에 적합하게 조율하는 것’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바우하우스가 제시한 ‘삶의 형식(Lebensform)으로서의 디자인’이라는 개념과 본질적으로 상통한다.
둘째, 바우하우스는 ‘다학제적 통합’을 지향한 최초의 디자인 교육 모델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복합적 문제 해결에 대한 실천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발터 그로피우스는 바우하우스를 ‘건축’을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도모하는 총체적 예술학교로 구상했다. 이는 현대 UX디자인, 서비스디자인, 사회적 디자인 등의 영역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협업적 문제해결 능력’과 직결된다.
셋째, 바우하우스의 윤리적 지향은 오늘날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디자인 담론과 깊이 맞닿아 있다. 바우하우스는 상류층을 위한 장식적 예술이 아니라, 보편 대중을 위한 합리적·기능적 디자인을 지향했다. 이는 현재의 ‘포용적 디자인’, ‘공공을 위한 디자인’과 같은 개념들과 직접적으로 호응한다.
흥미로운 것은, 유럽연합이 최근 ‘New European Bauhaus’라는 이름으로 지속가능성과 미학, 공동체 회복을 아우르는 디자인 정책 프레임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바우하우스를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닌, 재맥락화된 현재적 실천으로 인식하려는 시도이며, 바우하우스의 유산이 여전히 살아 있는 문화적 코드로 작동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바우하우스의 역사적·철학적 기반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그것이 현대 디자인 실천 및 담론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를 다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바우하우스는 이제 단순한 양식이나 기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자, 디자인이 시대와 사회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지를 묻는 사유체계로 작동해야 한다. 본 서적이 그 사유를 확장하는 작은 촉매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