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사랑 Mar 01. 2024

아이의 방학엔 일 할 팔자가 세진다.

   이제 슬슬 봄이 오려나 싶게 따뜻해지던 2월의 어느 날.

뜬금없이 눈이 펑펑 내렸다.

눈 오는 날 강아지 마냥 깡충거리는 아들내미와 치열한 하루를 보낸 저녁.

마침내 지친 몸을 침대 위에 눕혀본다. 뭉쳤던 어깨가 바닥에 닿으며 "아후~~~~"하는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이의 즐거운 방학은 엄마의 치열한 나날들이 되곤 한다. "아, 오늘 하루도 불태웠다." 하는 혼잣말에 남편이 피식 웃는다.


   아침 7시. 눈뜨자마자 귀여운 외침이 들린다.

"엄마! 나 오늘 무슨 요일인지 알 것 같아."

뜬금없이 요일 타령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들이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든 상관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잤으면 싶은 엄마는 고된 목소리로 대답을 토해냈다.

"무슨 요일인데?"

"오늘은~ 음~ 목요일? 그런데.. 오늘 방학이야?"

조심스럽고 불안함이 묻어나는 물음이다. 혹시나 아니라고 할까 봐 불안해하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엄마는 방학이라는 말에 숨이 턱 막혀온다. '아, 방학이 시작되었구나.'

"응, 방학이야."

엄마 마음은 어찌 되었든 콩콩 뛰며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에 엄마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일찌감치 출근해 침대 한쪽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전쟁통에 피난을 간 것처럼 텅 비어 있는 자리를 보며

'나도 출근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피난은 무슨, 다시 다른 전쟁터로 끌려간 것뿐이다.


 아침밥 차릴 시간도 없이 아이의 블록놀이에 동참한다. 작품을 만드는데 엄마만 한 조수가 없다.

 밥 먹이고 설거지하고 돌아서면, 다음 밥시간이 되어있는 마법이 펼쳐진다.

 점심을 먹고 나면 놀이터에도 가야 한다. 만 다섯 살인 아이의 체력은 한계를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눈이 오는데, 나는 입에서 하얀 김이 나는데, 아이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오늘은 마법 같은 일 투성이인 날이다.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준다고 꼬신 후에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집에 들어오면 이제 엄마가 땀날 시간이다. 안 씻겠다고 발악하는 아들 달래 가며 부지런히 씻기고, 따끈하게 찐빵 하나를 데워 간식으로 내어주고, 아이가 간식과 TV에 정신 팔린 사이 저녁준비를 시작한다. 저녁준비를 마칠 때쯤, 남편이 돌아온다.

"아빠 오셨어요!?!?"

 하며 품속으로 뛰어든 볼이 발그스레 한 아들을 안고 남편이 '다녀왔어요'보다 먼저 건네는 한 마디

"괜찮아?"

 내 얼굴에 쓰여있나 보다. 안 괜찮다고.

 몸에 남은 힘이라곤 숨 쉴 여력밖에 안 남았는데 나도 씻어야 자겠지? 누가 좀 씻겨주면 좋겠다. 그런 기계는 누가 안 만들어주나?


   드디어 아이를 재울 시간.

좀 있으면 육아 퇴근, 엄마 해방이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몸은 1년이나 늙어버린 기분이다.

그래도 낮에 실컷 놀린 덕에 아이는 첫 번째 책을 읽는 사이 벌써 눈을 껌벅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책을 읽기 시작하자 무릎에 눕는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살에 닿아 간지럽고 사랑스럽다.

그러더니 두 번째 책 읽기가 끝날 때쯤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쉴 시간이다.

잠시 아이 옆에 누워 느긋함을 즐겨본다.

하.. '오늘도 하루가 다 갔구나.'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긴다.

순간 정신줄을 잡고 눈을 부릅뜬다. 잠들면 큰일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 기다려온 순간인데!

야속하게 감기는 눈꺼풀을 강제로 치떠 올리고 슬그머니 핸드폰을 들어 올린다.

무심하게 검색창에 글자를 집어넣는다.


연. 금. 복. 권


   오늘은 목요일. 연금복권 발표일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