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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Mar 04. 2024

누가 내 복권을 가져갔을까

 사실 복권을 사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아빠가 쓰러지시고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돈에 대한 갈증이 심했던 그때부터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까?

그럼 아빠와 이별 후엔? 간절함이 사라졌으니 복권도 끊었을까? 아니다. 가끔 7등짜리 복권에 당첨되어 5000원씩 받아먹는 기쁨에 아직도 끊지를 못하고 있다. (7등 당첨금은 천 원이고 나는 한 번에 다섯 장씩 산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모순적인 행동인지 모른다.

 돈이 필요해서 사지만 본전 치기도 못할 때가 훨씬 많다. 아주 가끔씩 본전 치기가 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매주 밑 빠진 독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언젠가. 혹시나. 한 방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는 낮다는 당첨 확률을 믿으며, 계속 돈을 쏟아붓는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인지.


 그런데 살다 보니 그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정말 일어나기도 하는구나!


긴장으로 축축해진 손끝으로 마우스를 화면 오른쪽 위에 있는 마이페이지로 끌고 간다.

그리고 드디어!!!

응? 근데 이건 뭐지?


'예치금 0원'


0원? 5,000,000원이 아니고?

불길한 느낌이 스쳤지만 아주 합리적인 생각으로 몰아내버렸다.

‘당첨금이 크면 은행에 가서 받아와야 한다고 했지? 그래서 그런가 보다.’

 TV에서 본 적이 있다. 아하! 그래서 예치금으로 안 보이는가 보다.

 뭐, 당첨이 돼 봤어야 알지, 나도 참.

 잠시 멈칫했던 마우스가 다시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먼저 구매목록에 들어가 본다. 그런데..


분명 구매목록에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일주일 전 구입한 내 연금복권 목록이 사라져 있었다.

이게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인가.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지난주 산 복권이 없다.

어디 갔냐고!!!


그 순간 지난주의 한 때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난주 목요일은 유치원 소집일이었다.

 우리 집 아이는 올해 유치원에 입학을 한다. 아침에 부지런히 어린이집 등원을 시켜 놓고 서투른 운전으로 유치원까지 가야 했기에 마음이 바쁜 날이었다.

 아이가 다니게 될 유치원은 숲 속에 둘러 싸인 곳이다. 숲이 많은 대신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다. 유치원 버스가 등하원을 시켜주기에 별생각 없이 좋다고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망했다. 학부모가 가야 할 일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숲으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좁은 길을 지나가야 하고 가끔 일 차선에서 맞은편 차를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은 새벽에 대설주의보 경보문자가 울린 날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마도 하늘이 나를 운전의 신으로 만들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참고로 나는 장롱면허 15년 차 무사고 운전자다. (=운전을 안. 해. 서 무사고 운전자.)

 

 하지만 초보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고 했던가.

 두 달 전부터 남편과 마트 갈 때 운전연습한 게 내 운전경력의 전부였지만 내 아이의 원복과 입학 설명을 위해 용감하게 출동했다. 초보운전 딱지를 후면 유리에 큼지막하게 붙이고 낯선 눈길을 바들바들 운전해 갔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축축해지고 하얗게 질려가더니 세 번째 손가락이 저릿저릿해지기 시작할 때쯤 나는 죽지 않고 유치원에 도착했다. 설명을 듣고 원복이며 필요한 서류를 받고 사인까지 하고 온 것 같기는 하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집에 원복이 있는 걸 보니 다녀오긴 했나 보다.

 기억나는 거라곤 그날 운전대 앞에 앉아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며

 '눈 참 예쁘게도 오네. 죽기 참 아까운 날이다.‘

하는 생각을 참 여러 번 했었다는 것뿐이다.

 다행히 죽지 않고 집에 도착한 나는 좀비처럼 침대 속에 들어가 한동안을 진짜 죽은 듯이 잠들어버렸다.

 그래. 그리고 깨끗이 잊어버렸던 거다. 그날은 목요일. 복권 사는 날이었다.

 

주마등이 멈추자 머리꼭지로 피가 몰리는 느낌이 시작되었다.

망할! 그날 복권을 안 샀구나!! 까먹었구나!

내 5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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