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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수지 May 20. 2024

잠시만 멈춰줄래?

수의사도 있고  청진기도 있지만 고양이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유


얼마  호흡 곤란 증상을 보이는 노령의 고양이가 병원에 응급 내원했다. 검사를 해보니 심장에 문제가 있었다. 문득 앙꼬 심장 소리를 들어본 지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어 퇴근길에 청진기를 챙겼다. 노령묘의 각종 질환들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 앙꼬는 괜찮은가’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꼬리를 곤 한다. 놓치고 있다가 큰 병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집에 들어와 야옹거리는 앙꼬와 인사를 나누고, 득의양양하게 청진기를 꺼내어 앙꼬 가슴에 댔다. 그런데 계속 운다. 원래도 잘 울지만, 갓 퇴근한 탓인지 더 크게 우는 것 같았다. 조금 있다가 진정이 되면 다시 들어봐야겠다. - 1차 실패.


다른 일을 하다가 보니 앙꼬가 쿠션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이때다 싶어 다시 청진기를 가지고 다가갔다.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는지 근처에 가니 고로롱 고로롱 고로롱 고로롱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청진기를 대니 고로롱 소리가 확대되어 들렸다. 거기에 진동까지 더해서 심장 소리는 저 멀리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가, 아니기도 하다가 긴가민가하는 도중에 오케스트라의 심벌즈처럼 한 번씩 크게 울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야 들을 수 있는 거지? - 2차 실패.


들고 근처에만 가면 고로롱거린다. - 3차 실패.

가만있다가 청진기를 가슴에만 대면 고로롱거린다. - 4차 실패.

아니면 운다. - 5차 실패

이쯤 되니 알고 일부러 이러나 싶다.


결국 청진은 포기. 청진기가 이렇게 무용하게 느껴지다니. 아무래도 병원에 데려가서 다른 선생님께 들어봐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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