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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수지 Nov 02. 2022

파이, 비비 그리고 16살 앙꼬와 함께하는 삶

근황토크


<개를 안다고 생각했는데>라는 책을 쓴 지 3년이 지났다. 책을 읽은 분들은 우리 집 가족 구성을 알겠지만(감사합니다), 안 읽어보신 분들이 더 많을 것이므로 가족 소개를 먼저 하려고 한다.


우리 집에는 개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 사람 한 명이 산다. 개는 <개를 안다고 생각했는데>의 주인공 ‘파이’와 ‘비비’다. 둘 다 흰색 푸들이고 어느새 여섯 살이 되었다. 비비는 여전히 공놀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파이는 여전히 나를 정성껏 핥아준다. 아픈 곳 없이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고양이는 책에 잠깐 소개되었던 ‘앙꼬’이고, 올해 16살이 되었다. 신림동 골목 출신으로, 흔히 보이는 노색 줄무늬 고양이다. 털이 풍성한 가로 줄무늬 꼬리가 매력적이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무섭게 울지만 온순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생후 3개월 무렵 데려왔으니 꽤 오랜 시간 함께 지냈다. 그리고 인간 하나는 나. 여전히 혼자 살고, 사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지만 꾸준히 개들과 산책을 가고, 앙꼬 털을 빗겨주고 쓰다듬으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운영하던 병원을 동업하던 선배에게 넘기고, 지금은 페이닥터로 일하며 내과 중환자들을 주로 만나고 있다.


앙꼬는 원래 병원에서 생활하다 작년 5월 은퇴하고 집에서 같이 지내고 있다. 꿈꾸던 일이었으나 고양이 털 알레르기와 천식이 있는 나는 고민이 많았다. 고민 끝에 침대가 있는 방은 앙꼬 출입금지 구역으로 정했다. 하지만 나만 결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앙꼬가 이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미지수였다. 저항이 있을 것을 예상했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으나 며칠동안 잠을 설쳤다. 앙꼬가 닫힌 문 앞에서 몇 시간을 울었기 때문이다. 덩달아 안방에서 쫒겨난 비비, 파이는 내색도 못하고 하염없이 우는 앙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응원?) 심할 땐 앙꼬를 앉혀두고 상황 설명을 했지만, 알아들었 리 만무하다(개, 고양이랑 같이 지내면 혼잣말이 늘어난다). 차라리 함께 자고 약을 먹을까 생각했지만 시간을 더 주기로 했다. 밤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서 적응하길 기도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방문을 닫고 들어와도 울지 않았다. 생각한 것보다 빠른 적응이었다. 가끔 이런 상황들이 있다. 반려동물이 어떤 변화에 빠르게 적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말이다. 기본적으로 동물들은 사람보다 주어진 상황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 갸우뚱하는 분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은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앙꼬가 대견하고 고마웠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안방 문을 열어놓고 자도 침대에 올라오지 않는다. 설마 내 얘기를 알아들었던 걸까?


아침에 눈을 떠 인기척을 내면 비비 파이가 인사하러 온다. 침대에 앞발을 올리고 애절하게 나를 쳐다본다. 목욕한 지 얼마 안 된 날은 특별 이벤트로 침대에 올려주곤 한다. 그럴 때면 앙꼬가 고양이과 동물의 특유의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망설임 없이 침대에 올라온다. 가끔은 개처럼 앞발을 침대에 올리고 나의 허락을 구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는데, 귀엽고 고마운데 안쓰럽다. 고양이는 자고로 침대에서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침대 가운데에 내가 눕고 비비는 침대 한쪽 모서리를 차지하고, 파이는 여기저기 토끼처럼 뛰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나를 핥기 시작한다. 앙꼬는 나에게 몸을 붙이고 암모나이트처럼 몸을 말고 눕는다. 그냥 그것뿐이다. 그게 좋기도 하면서 안쓰럽기도 했다. 단지 가까이 몸을 붙이고 눕는 게 앙꼬가 원한 것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비비 파이와는 어릴 때부터 자주 만났으나 같이 살면 어떨지 몰라 걱정스러웠다. 다행히도 큰 싸움은 없었다. 비비의 공놀이가 격해져 앙꼬의 평온을 방해할 정도가 되면 조용히 일어나 회심의 펀치를 날린다. 어쩌다 공이 앙꼬 앞에 떨어지면 비비는 공 한 번 보고, 나 한 번 보고 끙끙거릴 뿐 감히 앙꼬 눈 앞의 공을 가져가지 못한다. 무섭긴 한 모양이다. 그 모습이 재밌어 속 타는 비비의 심정을 외면한 채 한참을 구경하기도 한다. 파이는 앙꼬가 스크래처를 벅벅 긁거나 화장실 모래를 덮을 때 나는 소리에 목청 높여 짖고, 앙꼬가 밥을 먹고 식탁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릴 때 내는 ‘쿵’ 소리에도 크게 짖는다. 자다가 한두 번은 꼭 파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잠결에 거의 자동으로 “파이, 그만”을 외친다. 거실에는 넓은 쿠션이 두 개 있는데 셋이 한 쿠션에 잘 수 있을 정도의 크기다. 하지만 자기들이 정한 규칙이라도 있는지 개와 고양이는 철저히 따로 잔다. 1년쯤 지켜보니 시간이 더 지나도 서로 다정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래 이 정도만 해도 어디인가, 서로에게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만 해도 가끔은 위로가 되지 않던가 하고 나를 위로해 본다.


퇴근을 하고 집 비밀번호를 누르기도 전에 앙꼬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를 듣고 나오는 것 같다. 현관에는 강아지들이 못 나오게 낮은 울타리를 쳐놓았는데 앙꼬가 그걸 넘어 마중을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앙꼬의 허스키 보이스가 들리면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치고 집에 왔다는 안도감이 든다. 중문을 열고 들어가 다녀왔다는 인사를 건네며 앙꼬를 잠시 쓰다듬어 준다. 타리를 넘어 거실로 들어서면 비비 파이가 달려와 두 번째 환대를 해준다. 둘 다 펄쩍펄쩍 뛰고, 제자리 돌기를 하며 나를 반겨준다. 인사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간식을 챙겨준다. 가끔은 퇴근 후에 주는 간식 때문에 나를 반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지만 설마…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거실 바닥에 앉으면 비비는 공을 물고 달려오고, 파이는 달려와 안겨 얼굴을 핥고, 앙꼬는 점잖게 일어나 내 옆으로 온다. 비비에게 공을 던져주고, 파이가 연신 여기저기를 핥아대면, 나는 틈틈이 앙꼬를 쓰다듬어준다. 거실 한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런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극히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언제까지나 유지될 것이라 생각했다. 인생은 보통 이런 순간에 균열이 생기곤 한다. 어느 날부터 앙꼬가 밥을 조금씩 남겼고, 식탁에서 바닥으로 떨어질 때 ‘쿵’ 소리가 안 들렸다. 그 소리에 짖던 파이의 짖음이 사라져 새벽은 조용해졌고 나는 아침이 올 때까지 깨지 않았다. 그렇게 작은 조짐들이 불안을 끌고 왔다. 늘 알던 사실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맞아. 앙꼬는 16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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