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룻밤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사다리
삐래)
우리의 캠핑카는 작은 개수대, 간이 가스레인지가 있어 간단한 조리는 가능하지만 샤워나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미니멀한 캠핑카였다. 뒷좌석을 눕히면 2명이 잘 수 있고 차 지붕엔 2인용 붙박이 접이식 텐트가 있어 이 차에 잠잘 수 있는 최대 인원은 4명이다. 텐트에 오르기 위해서는 간이 사다리를 이용하면 된다. 그런데 이 사다리가 평화롭던 캠핑카 여행을 깨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날은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캠핑장에서 숙박을 하는 날이었다. 현지 유심칩을 구매하지 않은 우리는 그랜드 캐니언에서 이틀 동안 디지털 디톡스 생활을 했고 와이파이 금단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네 사람의 수다로 가득 찼던 공간에 침묵이 찾아왔다. 각자의 손 안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고 그 속에서 서로 다른 즐거움을 만끽했다. 와이파이 덕분에 행복 지수가 상승하니 어제와 비슷한 저녁 메뉴도 더 맛있게 느껴졌다.
캠핑장에 밤이 찾아오고 사다리를 내려 잠자리를 준비하였다. 그런데 묘하게 좋지 않은 촉이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하며 사다리를 접어보았다.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사다리가 꿈쩍하지 않는다. 사다리를 천천히 살펴보니 접히는 이음새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낑낑거리며 고쳐보려 노력했지만 허사였고, 어쩔 줄 모르는 우리를 보고 옆 캠핑카 아저씨가 망치로 두들겨보고 흔들어도 보고 온갖 방법을 써도 소용없었다. 해가 저물어 점점 어두워지고 내일 아침이면 출발해야 하는데 나는 조급해져 갔다. 결국 사다리는 끝내 접히지 않았고 당장 할 수 있는 건 캠핑장 안내 데스크에 가서 AS 센터 번호를 알아내는 것뿐이었다. 각자 잠자리에 들었고, 걱정 인형을 달고 사는 나는 사다리를 저대로 둔 채 운전했다가 사고 나면 어쩌지, 수리비는 비싸겠지’ 하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AS 센터 방문을 위해 이른 아침을 맞이했다. 퀭한 얼굴로. 세수하려고 화장실로 향했을 때였다. 내 뒤로 들려오는 환호성. 기적의 금손 이뽈님께서 사다리를 어르고 달래 접어 넣었던 것이다. ‘아 살았다’라는 안도감과 함께 어젠 그렇게 안됐는데 하룻밤 사이에 된 것이 너무 어이없어서 화가 났다. 밤새 고민하면서 생긴 명치끝에 몰린 체증들이 쭉 내려갔다. 비로소 나는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와이파이로 인해 행복했던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