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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쁜 토끼 Jan 30. 2023

채식주의자 - 한강

(230112~230114)

나를 실현하는 길이 나를 해칠 수밖에 없다면.



매대에 있던걸 보고 몇 년 전 맨부커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언론이 잠깐 떠들썩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사 읽기 시작한 책이다. 일단 흡입력이 굉장하다. 막힘없이 술술 읽히며 다음 내용이 궁금해 빨리 페이지를 넘기고 싶어 진다. 하지만 그게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와 반대로 내용은 굉장히 충격적이다. 무언가 내용이 충격적이라는 건, 반사회적이라는 뜻과도 같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2부는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 시점, 3부 '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 시점으로 진행된다. 1부만 봐서는 갑작스럽게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영혜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뚜렷한 신념에서 기인한 행동도 아니고 꿈 때문에 자신의 건강을 해쳐가며 채식을 한다는 걸 이해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3부까지 다 보고 나서야 영혜의 행동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는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혜의 자학의 원인이 이해된다기보다는 그 행동이 가지는 의미가 이해된다는 것에 가깝다. 존재감 적은 그녀의 미미한 삶의 의미와 주변인과의 관계가 자학의 원인이 될 수야 있겠지만 2부, 3부를 읽어보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채식주의는 그럴듯한 포장지일 뿐이다. 영혜는 식물이 되고 싶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식물이 될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영혜의 답이 채식일 뿐이었다. 하지만 종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식물로 살아가는 방법을 인간이 실행하는 순간 우리 사회는 그 사람을 보고 '미쳤다'라고 진단 내린다. 영혜가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은 반사회적이고 반인간적이다. '이상을 추구하는데 그 이상이 종을 초월했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종의 한계 내에서 이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보면 분명 정신이상이다. 우리 사회는 안정을 위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을 바운더리 밖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다.


2부 영혜의 형부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는 처제인 영혜와 불륜을 저지르지만 행동 동기는 단순한 쾌락이 아닌 자아실현이었다. 예술가로서의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는데 애석하게도 그 방식이 우리 사회가 불륜이라 부르는 것일 뿐이었다. 영혜가 추구한 이상이 반인간적인 것이라면, 형부는 그나마 종의 바운더리 내에서 반사회적인 이상을 추구했다. 태양에 다가가는 이카루스처럼 형부 역시 이상에 매료되어 일을 저질러 버렸고 그 결과로 사회로부터 낙인을 찍히게 되었다. 그 역시 미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3부는 영혜의 언니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녀는 무너져버린 주변을 바로잡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런 그녀 역시 삶을 끝내려 한 적이 있다. 남편과 영혜를 보면서 자신이 쌓아온 관념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녀를 끌어온 그녀만의 이상이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에 빛이 바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결국 그녀는 영혜를 지키지 못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된다. 인용부호도 없다 보니 그녀의 암담한 심정이 고스란히 책을 타고 전해지는 것 같다. 3부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영혜가 직면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된다. 그녀의 영혼이 단지 육체를 벗어나고 싶어 했을 뿐이다.


세상에는 자신만의 이상에 빠진 사람이 많다. 로켓맨 일론 머스크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그 역시 화성을 테라포밍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남들이 비웃을 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었다. 또 누군가는 자신만의 분야에서 박사가 되기도 하며 오타쿠, 수집광이 되기도 한다. 남들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심지어는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인생을 사는 그들은 무엇에 열중하고 있건 아름다워 보인다. 그들이야말로 자신만의 길을 정하고 그 길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아름다움에 질문을 던진다. 그 열망의 기원은 어디인가. 이상의 추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악마가 되고 싶어 악마처럼 성형한 남자가 있다. 머리에 뿔을 세우고 피부를 까맣게 염색한 그의 모습은 정말이지 무섭다. 사람들도 혐오스럽다거나 너무 과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악마와 점점 더 닮아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행복해한다. 결국 그는 스스로 손가락까지 자르고 만다. 안타깝게도 그의 열망은 육체를 초월한 것이었고, 그는 철저하게 그의 열망을 따라간다. 우리는 그에게 어떤 진단을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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