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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쁜 토끼 Apr 03. 2023

스즈메의 문단속

4/1

스포일러 있습니다


1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책부터 사놨지만 바빠서 읽지 못하고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았다. 개인적으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보다 더 재밌게 봤다.


4살 때 엄마가 죽고 이모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여고생 스즈메는 남주인공 소타를 만나면서 '문'의 존재를 알게 된다. 스즈메는 소타가 '토지시'로 집안 대대로 그 문이 열리지 않게 관리하는 일을 하며 만약 문이 열리면 그 안에 있는 '미미즈'가 튀어나와 근방에 지진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스즈메는 소타와 얽히며 일본 만화 주인공 특유의 책임감으로 함께 문단속을 하러 여행을 떠난다.


1. 문의 단절성


영화에서 등장하는 문은 저세상으로 통하는 문이다. 이 문 안은 죽음, 고통, 슬픈 기억의 공간으로 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가 현세로 나가기 위해 꿈틀대고 있다. 작품에서 저 세상으로 통하는 문은 주로 폐허가 된 마을이나 망한 놀이공원, 시내 최심부 같은 잊힌 공간에 놓여있다. 이 문을 통해 저세상으로 직접 들어갈 순 없지만, 여기서 나오는 미미즈는 세상 사람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준다.


문의 역할은 공간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문이 열리는 순간 공간의 분리가 모호해지며 문을 통해 두 공간에 분리되어 있던 것들이 드나들게 된다. 스즈메가 하는 일은 문단속을 잘해 그 안에 있는 것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즉, 지난날의 상처로부터 뜬금없이 유발되는 아픔을 꾹꾹 눌러 잠재우는 일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문단속의 진정한 의미는 이따금 떠오르는 아픈 기억을 잘 어르고 달래 좋은 기억으로 묻어 나가는 것으로, 내가 속한 행복하고 소소한 현실의 공간을 쓰라린 상처가 침범하지 않도록 '내가 속한 곳은 여기, 네가 속한 곳은 여기'하며 분리해 주는 것에 있다.


2. 상처 치유하기


스즈메의 여행은 치유의 연속이다. 단순히 착한 주인공이 남을 도와주며 고통에 처한 사람을 치유해 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는 '주고받음'을 통해 서로를 치유한다. 숙식을 제공해 주면 청소를 시킨다. 목적지까지 태워 주었으니 아이를 돌보게 하고 알바를 시킨다. 단순히 '내가 이걸 해줬으니 너는 이걸 해주어야 한다'라는 경제적인 이유에서일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주고받음을 통해 관계가 형성된다. 이 관계로 인해 도움 받는 쪽도, 도움 주는 쪽도 아픔을 잊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게 된다. 내가 겪은 슬픈 일을 구구절절 말하고 공감을 받는 게 아니다. 그저 일상생활 속에서 맺게 되는 관계를 통해 아픔이 서서히 페이드 아웃 될 뿐이다.


3. 덮어놓는 것은 치유가 아니다


다른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상처를 잊고 살아가지만, 때때로 어떤 상처는 너무 아려 그것만으론 부족할 때가 있다. 엄마를 잃은 일이 스즈메에게 바로 그러한 상처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즈메는 그 상처를 똑바로 직시한다. 스즈메는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게 겁나 의식적으로 피하며 살다 일련의 사건을 겪고 결국 직접 문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 그 기억을 마주한다. 그 기억 속에서 스즈메는 울고 있는 어린 자신에게 용기를 갖고 살아가라고 일러준다. 아픔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자기 주문이다. 아픔을 겪었을 때 피하기만 한다면 그 아픔은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고통스럽더라도 아픔을 직시하며 어떻게든 결론을 지어야만 하는 것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아픔을 마주하고 마음을 정리한 뒤에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나온다. 문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 작품에서 으레 등장하는 '타다이마', '오카에리'와 같은 인사말은 일본인이 장소에 갖고 있는 소속감을 잘 보여준다. 한 자리에서 수백 년간 가업을 잇는 장인 정신 또한 그러한 소속감 중 하나일 것이다. 그만큼 일본인은 '정'이 장소에 묶여있다. 이때, 제대로 닫히지 않은 문은 나의 소중한 장소에 위험을 가져다준다. 문단속을 한다는 것은 나의 소중한 장소에 무엇을 담을지 결정하는 것과 같다. 아픔은 문 너머에, 행복은 문 안에. '다녀왔습니다.' 할 수 있는 장소가 있고 '어서 와' 해주는 인물이 있다는 것. 그것만큼 마음의 평화를 주는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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