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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쁜 토끼 Oct 21. 2023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시마무라의 허무주의와 고마코의 정열이 잘 대비된다.


시마무라는 부모님의 재산을 물려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보낸다. 그의 모든 행동에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없다. 강렬한 욕망도 보이지 않는다. 지지미 짜는 옆마을에 놀러 갔다가 수시간이 지나고도 소득 없이 돌아와도 별생각 없다. 무용연구가로서 서양무용을 연구하지만, 그 이유는 바로 '서양무용은 어차피 보지 못하니 마음대로 지껄여도 되기 때문'이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하며 갈팡질팡 하는 것 같지만 사실 마음은 정해져 있다. 언뜻 무던한 성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니다. 긍정적인 해석의 여지가 전혀 없이 그는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은 되지 못한다. 고마코라는 상황에 연루되어 본의 아니게 직접 그라운드를 뛰게 된 관객의 입장이다. 


시마무라를 잠식한 허무주의는 마치 투명한 막 너머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허무주의자들은 번번이 '그래, 열심히 살아야지'하며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현실에 개입하려 노력하지만 투명한 막의 반발력만 느낄 뿐이다. 허무주의를 벗어나는 길은 막을 파괴할 정도의 거대한 사건의 발생뿐인데, 애석하게도 그런 사건은 막과 함께 허무주의자도 파괴한다. 산뜻한 첫 만남에도 친구 사이가 편하니 다른 게이샤를 불러달라는 시마무라의 말은, 사실은 막 건너편에서 허무주의 늪에 빠진 자신을 끄집어내려는 거대한 사건을 향한 허무주의자의 겁에 불과하다. 


왜일까? 시마무라의 의문처럼 고마코는 뚜렷한 이유 없이 시마무라에게 빠진다. 하지만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고마코의 사랑을 간지럽게 잘 표현한다. 그녀의 행동이 미소 지어 질정도로 귀엽지만, 그녀가 수많은 사람들을 접대하는 게이샤라는 것에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때문에 초반에는 그녀의 마음에 의도가 있을까 의심을 품었다가 계속되는 그녀의 열정적인 애정표현에 어느 순간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고마코의 열정은 마음을 간질이지만 동시에 시마무라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런 시마무라가 하는 '당신은 좋은 여자야'와 같은 말은, 고마코에게는 칭찬이 아니라 모욕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것은 고백보다는 평론가의 평점 매기기에 가까웠다. 고마코에게 시마무라는 'you'였지만 시마무라에게 고마코는 'she'에 불과하다고 선을 긋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시마무라를 포기하지 않는 고마코의 모습에는 그녀가 그녀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얼핏 비친다.


이 작품에서 요코는 가장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시마무라는 기차에서 만난 그녀에게 강하게 이끌리지만, 단 한 번도 적극적으로 그녀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제삼자에게 전해 듣거나 고마코에게 물었다가 질투를 사게 되는 정도이다.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면 고미코와 환자, 요코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 깊게 파고들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 그것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말미에 요코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또한 알 수 없는데, 이러한 요코에 대한 모호함은 시마무라의 허무주의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허무주의는 상대와 나 사이에 뿌연 막으로 남아 상대를 온전히 알지 못하게 한다. 시마무라의 허무주의는 책이 끝날 때까지 요코는 물론 고마코 마저 흐릿하게 만든다. 요코와 고마코를 알다가도 모르겠는 것은, 이 책이 시마무라 시점으로 쓰인 이상 당연한 것이다. 궁금한 사람이 있으면 직접 다가가 궁금증을 해소한다는 것. 허무주의에 빠진 시마무라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은, 내가 문장의 아름다움 보다는 잘 짜인 스토리가 고조될 때 주는 쾌감을 더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고마코의 섬세한 동작 묘사는 분명 즐거웠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라는 이름의 무게만큼은 아니었다. 특히 소설의 막바지에는 '도대체 요코와 시마무라의 관계가 어떻게 마무리될까'하고 남은 페이지를 확인하며 조마조마 읽다가 끝을 보고 맥이 탁 풀려버렸다. 소설 전반적으로도 이야기가 진척되는 느낌보다는 에피소드라 할 수도 없는 단편적인 고마코의 행동들이 짧게 짧게 나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단편들을 모아 출간한 소설이다 보니 그러지 않을까.


내가 일본어를 잘 모른다는 것 또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원어로 읽었다면 아름다운 문장이 주는 울림이 더 잘 전해지지 않았을까? 읽는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라는 문장이 주는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물론 모든 번역소설이 그러하지만,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어를 배우기는 어려우니 시간을 두고 다시 한번 읽으면 그때는 또 다른 느낌이 들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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