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인생은 애석하게도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그 상황에 눌려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혼자 곰곰이 생각할 때가 되어야만 상황 속에 담긴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만 우리는 골치 아픈 고민은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또 그것이 내일을 살아가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세히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덕분에 모순적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나를 괴롭히는 상황을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될 대로 돼라'라는 식으로 생각 없이 부딪쳐버리는 게 나에게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모순적이다'라고 판단을 할 땐 한 가지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측할 뿐 결코 온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행동들은 행위자의 성격과 경험, 버릇, 당시의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그걸 보고 모순적이라 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논리,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고 있는 세상의 이치와 배치된다는 것을 말할 뿐이지 그 행동 자체가 절대적으로 논리에 어긋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저마다 다 이유가 있다'가 되겠다.
이 책은 각자의 배우자를 만나면서 완전히 삶이 어긋나 버린 두 쌍둥이 자매를 통해 인생의 모순을 보여준다. 안진진의 엄마, 이모로 나오는 두 자매는 쌍둥이 그 이상으로 똑같은 인생을 살다가 결혼까지 한날한시에 같이 하게 된다. 그 결혼이 완벽히 닮아있는 둘의 인생을 갈라지게 만들고, 안진진의 엄마는 주정뱅이 남편 때문에 가난에 허덕이며 잡초 같은 삶을, 이모는 부자 남편과 온실 속 화초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생이 언니에게 시집을 먼저 가라며 주선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면, 둘의 인생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만약은 없었고, 두 자매는 쌍둥이의 숙명대로 '나'와 '또 다른 나'로서 서로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야 할 운명이다.
1. 첫 번째 모순
상반된 길을 걷는 두 인생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 건 안진진의 이모였다.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감성적인 그녀가 안진진 엄마의 잡초 같은 삶을 동경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건 꽤나 이해하기 어렵다. 이 이야기는 여주인공 안진진의 시점에서 진행되어 안진진의 가족의 다사다난한, 밑으로 곤두박질치기만 하는 가정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사회적 안정을 이룬 이모의 자살은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책에서 나오는 다양한 모순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이 바로 이 대목일 것이다. 왜 이모는 자살했을까.
책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인생이 나온다. 하나는 험난한 오프로드를 뚫고 덜덜 달리는 트럭이고 다른 하나는 정해진 시간 정해진 길로만 다니는 기차이다. 안진진이 결혼 상대로 저울질하는 김장우와 나영규가 딱 두 인생을 대변하고 있으며 안진진의 가족과 이모의 가족 역시 위의 전자와 후자로 나뉜다. 기찻길이 주는 안정 속에서 권태를 느낀 이모는 오프로드의 생동성이 부러워진다. 자신의 삶에선 결코 느껴볼 수 없는 '극복'과 '살아남기'의 감정을 보면서 어쩌면 투정을 부리는 것 같다. 이모도 안진진의 엄마와 같은 치열함을 스스로의 삶에서 찾아볼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린 건 결국 안정적인 삶의 권태라기보다는 만약 이모와 엄마의 인생이 바뀌었더라도 거기서 결코 만족을 찾을 수 없었을 거라는 암담함을 느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모의 자살은 결국 주어진 삶에서 의미 찾기를 포기하고 재미없는 인생에서 도망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감성적인 만큼, 싫증도 빠르다.
2. 두 번째 모순
이모의 자살과 함께 소설 막바지에 나오는 두 번째 모순은 바로 안진진이 배우자로 나영규를 선택한 것이다. 소설은 '이렇게 살다간 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는 안진진의 절규로 시작한다. 동시에 안진진은 적극적인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데 소설이 끝날 때까지 안진진의 적극적인 삶의 개척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단지 두 남자를 저울질하며 더 나은 배우자를 고르는데 열을 올릴 뿐이다. 1998년의 소설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이러한 모습이 삶을 개척한다고는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오프로드 트럭과 같은 김장우와 기차 같은 나영규는 각자의 장단을 보여준다. 이상적이고 감성적인 사랑의 김장우냐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랑의 나영규냐의 갈림길에서 안진진은 나영규를 택한다. 이모의 죽음을 보고 난 이후에 말이다. 아무래도 그녀가 잡초 같은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모는 애초에 온실 속 화초로 태어나 잡초를 동경하다 죽었지만, 안진진은 잡초로 태어나 나영규를 만나 온실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이모와 다르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마음이 통했던 이모의 고민을 그대로 답습해보고 싶은 딸 같았던 조카의 마음일 수도 있다.
이 두 가지 큰 모순 외에도 책에는 사랑할수록 숨이 막혀온다는 것이나, 역경이 닥칠수록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엄마와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이 보인다. 사실 책을 되짚어가며 모순을 찾아보니, 인생은 모순의 연속이고 그러한 모순은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비롯되며 바로 이 불가해성이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우리는 칼라와 USB로 연결될 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알기 위해 더욱 붙게 된다.
책의 제목에 걸맞게, 전체적인 책의 구조 또한 모순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모순은 막바지에 가서야 나오고 그러다 보니 이 책의 내용은 그 모순적인 상황을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모양새가 주를 이룬다. 그래서 이모의 자살이나 안진진의 선택 자체는 모순성을 띄지만, 책을 착실히 따라간다면 그들의 선택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모순보다는 역설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베스트셀러 매대에 있는 것을 보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굉장히 술술 읽히고 몰입감이 있었다. 1998년 작품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읽다가 안진진과 데이트하는 방식을 보고 나서야 생각보다 오래된 작품이란 것을 알았다. 작중 인물들의 대사가 너무 서정적이고 엄마가 지나치게 편협하게 나와서 별로인 소설이 아닌가 생각하다가, 이내 엄마의 편협한 대사 속의 생존력과 이장우의 서정적인 대사 속의 감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엄마가 책을 통해 역경을 헤쳐 나가려 하는 별거 아닌 장면에서 괜한 눈물이 고였다. 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을 때, 엄마의 억척스러움은 어느샌가 싱그러움으로 변해있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인생을 살아간다. 모두가 제자리에서 단순히 살아 있을 때, 안진진의 엄마는 살아 나아간다. 역경이 오면 그것에 맞서는 것 또한 인생이라고 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