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예지신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오상 五常)인 '인의예지신'이 조선 수도 한양의 보신각과 사대문, 곧 동·서·남·북대문의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동대문은 인(仁)을 일으키는 문이라 하여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은 의(義)를 돈독히 하는 문이라 하여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은 예(禮)를 숭상하는 문이라 하여 숭례문(崇禮門), 북대문은 지(智)를 넓히는 문이라 하여 홍지문(弘智門)입니다. 믿음을 널리 전파한다는 보신각(普信閣)은 동서남북 중앙에 있는 서울의 중심입니다.
1. 흥인지문(興仁之門)은 동대문입니다. 서·남·북대문의 현판은 3자인데 '흥인지문'은 4자입니다. 서울 동쪽은 지형이 낮아 ‘~의 지(之)’자를 넣어 약한 기운을 보완하고, 반달모양의 옹성(甕城)을 둘러 적의 공격에 대비하였습니다. 보물 제1호입니다.
흥인지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2. 돈의문(敦義門)은 서대문으로 조선시대 주로 외교사절이 통하는 관문이었는데 현재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정의(正義)를 없애고 일제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도시계획이라는 명분으로 헐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서울특별시가 복원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3. 숭례문(崇禮門)은 남대문으로 동·서·북대문의 현판은 가로로 쓰여 있으나, 숭례문은 세로로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마주 보이는 관악산이 불꽃모양을 한 화산(火山)의 형태이므로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국보 제1호입니다.
서울관광지 숭례문 주차 수문장 파수의식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4. 홍지문(弘智門)은 북대문으로 사용하였으나, 북대문은 원래 숙청문(肅淸門)이라 하고 나중에 숙정문(肅靖門)으로 개명하였습니다. 숙정문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1413년(태종 13)에 폐문이 되었습니다. 숙종 41년(1715)에 한양 성곽과 북한산성의 방위시설을 보완하기 위하여, 숙정문에서 약간 옮겨 상명대학교 앞쪽에 홍지문(弘智門)을 세워 북대문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원래 북대문을 숙지문이라 하지 않고 청(淸)자를 넣어서 숙청문(肅淸門)으 로 명명한 것은 북쪽은 지형이 험하고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항상 닫혀 있어 ‘엄숙(肅)하게 다스린다.’라는 의미로, 굳이 지(智)자를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초기 우민(愚民: 백성을 어리석게 만듦)정책의 일환으로 백성들이 슬기롭게 되어 조선왕조가 역성혁명한 내용을 알게 될까 봐, 지(智)자를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5. 보신각(普信閣)은 서울 종로에 보신각종이 있는 누각입니다.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만들어진 보신각 건물은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으로 사라진 후 현대에 새롭게 개축되어 옛 모습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보신각종은 파루(罷漏, 오전 4시, 통행금지 해제)에 33번, 인정(人 定, 오후 10시, 통행금지)에 28번 쳐서 한양 4대문의 여닫는 시각을 알렸습니다. 오늘날 매년 제야(除夜, 12월 31일 밤)의 보신각 종소리 33번(파루에서 유래)을 들으며 새해를 맞이합니다.
조선왕조는 인의예지신의 오상을 국가의 기본이념과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고, 그중 믿음 곧 신(信)을 중심으로 하였습니다. 도성 4대문의 사덕(四德: 인의예지)과 서울 중심의 보신각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로 나라를 운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