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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OSONO Jan 11. 2024

사소함의 소중함

숙면과 보일러

잠을 잘 자는 것도 복이라고 하니, 나는 복 하나는 타고난 셈이다. 항상 10시 전에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6시 전에는 눈을 뜬다. 가끔 화장실 때문에 잠을 깨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간에 일어나는 경우도 드물고, 선잠을 자는 경우도 거의 없다. 즉 숙면을 취한다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어제는 12시가 넘어서까지 도통 잠이 들지 못했다. 잠이 오지 않으니 머리 맡에 둔 핸드폰을 자꾸 들춰보게 되질 않나, 이런저런 공상을 하질 않나, 이러다 정말 뜬 눈으로 밤을 새울까 걱정이 되니 결국 거실로 나와 약통을 뒤져 수면유도제를 찾아내 입에 한 알을 털어넣었다. 약 덕분인지 금세 잠 들었는데 대신 아침에 눈 뜨는게 여간 고역이었다. 잠을 충분히 자니 일어나는 것 또한 나는 어렵지 않은데, 어제는 약을 먹고 늦게 잠들었으니 일어나고도 정신을 차리는 데에는 한참이 걸렸다.

평소보다 두시간 정도 덜 잤을 뿐인데도 이렇게 애를 먹는데 매일을 수면부족으로 지내면 삶의 질이 얼마나 떨어질까 감히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12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편이 온수가 안나온다며 보일러실을 들여다 보러 갔다. 설마  시기에 고장난건 아니겠지?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정말 보일러가 고장났다. 불과 3년전에 바꾼 새보일러인데 하필 연말에 고장이란 말인가. 부랴부랴 주인에게 전화했더니 보일러공을 보내도록 한단다. 두어시간 뒤에 보일러공은 도착했고, 한참 들여다보더니 새로 바꿔야 하는데 지금 주문하면 1 3일에나 교체가 가능하다고

얼마 후면 이사나가는데 이 와중에 보일러 바꿔줘야 하는 주인 아저씨도 억울할테고, 아이들 방학이라 보일러를 계속 켜둬야 하는 우리도 심란하기 이를 때 없다. 그나마 평년보다 따뜻한 12월이라 다행이라 해야하나. 근 일주일 동안 물을 데워가며 온 식구들이 샤워를 했고, 빨래가 잘 마르지 않으니 세탁기도 돌리지 않았다. 보일러가 고장났을 뿐인데 일상에서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아무리 바깥 날씨가 평년보다 따뜻하다고 해도 겨울이라 난방이 계속 되지 않으니 집안에 냉기가 가시질 않는다. 얇은 패딩에 수면양말을 신어도 으슬으슬 춥다.

 다행히 오늘 아침 보일러공이  시간에 와서  보일러로 교체했다. 다섯 식구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니 비로소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예상치 못한 데에서 문제가 생기니 그 불편함은 말해 무엇하리. 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대충 씻는 샤워는 일상의 질을 한순간에 떨어뜨렸다.



사람은 순간순간 이런 사소함의 소중함을 경험한다. 이런 불편함을 겪어야만 비로소 평온함에서 행복을 느끼게 된다. 부재를 통해서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으니 사람은 태생적으로 모순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인 듯하다.


불면의 경험과 보일러 고장이

나를 철학적 사고를 하게 만들다니.

역시 이 세상의 모든 사건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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