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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OSONO Jan 15. 2024

세그라떼 사람들

에셀룽가 바르에서 일하는 파올로

"Un cappucio e poi un brioche alla marmellata, per favore"

.

"Mi dica!!!"

"Allora~~"

아이들이 등교를 마친 9시 언저리 시간의 에셀룽가 슈퍼 안의 바르는 아침 카페를 마시려는 사람으로 북새통이다. 출근하는 길에 아침을 먹으려는 사람들, 슈퍼 근처의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등교시킨 부모들이 한데 뒤엉켜있다. 그리고 아침일찍 장보러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들까지.

주문을 받는 cameriere-까메리에레의 자동응답처럼 반복되는 Mi dica!(주문하세요, 말씀하세요) 라는 대꾸가 지금이 얼마나 바쁜 시간대인지 알 수 있게 한다.

부리나케 주문을 하고 바로 옆 Banco-서서 마시는 장소-에 서 있는다.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바리스타의 커피 내리는 모습을 지켜본다. 카푸치노 세 잔! 카페 2잔, 카페 마키아토 디카페인 2잔! 블라블라~이런 식으로 외쳐대는 주문을 바리스타는 찰떡같이 다 알아듣고 착!착!착! 마치 컨베이어 벨트의 로봇이 조립을 하는 광경처럼 커피가 착!착!착! banco위에 리드미컬하게 놓여진다. 이들의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리고 고객에게 주문한 커피를 내 주는 그 전 과정은 하나의 쇼를 보는 기분마저 든다.

그러다 보니 나는 가끔 이 쇼를 보기 위해 일부러 이 시간에 에셀룽가 슈퍼의 bar를 가기도 한다.




오늘은 이미 진작에 집에서 배부르게 아침을 먹었다.

그런데 마늘이랑  가지 야채가 필요해서 얼른 이것만 사오자 싶었다. 하지만 슈퍼 문을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카페의 향기에 나도 모르게  bar 앞에 서서 카푸치노와 브리오슈를 주문하고 만다. 한창 바쁜 시간대가 지났기 때문에 군데군데  테이블이 보인다. 이왕 이렇게   앉아서 느지막히 커피 맛이나 음미하자 싶다. 여느 때처럼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매일 마시고 매일 먹는 1.2 유로의 카푸치노와 1.1유로의 브리오슈가 항상 맛있다니...참 신기하지 않은가?

맛있게 먹으며 고개를 돌려보니 bar 설거지 개수대 앞에서 일하고 있는 왜소한 남자애가 눈에 들어온다.  키며 체구가  나만하다. 160 정도의 키에 18 정도로 보이는데 사실 나이는 틀렸을 확률이 높겠다. 이탈리안답지 않게 찰랑거리는 갈생 생머리가 단정하게 빗겨져 있다. 조명에 비춰져서 그런가 유난히 머릿결이 반짝거린다.  시선은 천천히  아이의 얼굴로 옮겨진다. 사과같이 동그란 얼굴에 동글동글한 안경을 썼다. 오밀조밀  깊게 들어간 눈과 오똑 솟은 ,  다문 입까지 작은 얼굴 안에  차있다. 말끄름한 피부까지...자연스럽게 옷차림에 눈이 옮겨진다. 하얀 피켓 티셔츠와  앞을 입은 파란 앞치마까지 구김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일하려면 최소 고등학생 나이는 났을테지? 하지만 전혀 나이는 가늠이 안된다. 나는 티나지않게 계속 그 아이를 관찰한다. 말한마디 하지 않고 조용히개수대에서 설거지를  끝내자 이번에는 banco위에 높인 쟁반들을 일렬로 정리한다. 그리고는 앞으로 돌아나와 쟁반 위에 커피 잔을 다시 식기 세척기 속에 넣어둔다. 이제 홀의 테이블을 살피더니 정리가 안된 쟁반들을  수거해간다. 내 앞을 지나가는 찰나  아이의 앞치마 위에 붙여진 이름표에 저절로 눈이 간다. PAOLO.

 아이의 이름은 파올로인가 보다. 가까이  있으니  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표정을 보고 알아차렸다. PAOLO 다운증후군이 있다는걸. 그래서였을까. bar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 중에  애가  눈에  이유가. PAOLO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BAR  바닥을 쓸고, 테이블을 정리했다. 그의 몸놀림은 자연스러웠고 거슬림이 없었다. PAOLO는 어느 누구와 잡담 한 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조용하지만 부지런히 Bar 안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쓸고 치웠다. 이 곳에서 일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PAOLO는 Bar에서 일하는 게 즐거울까?

한마디 말도 없고 표정변화도 없어 그 아이의 속내는 짐작조차 어렵지만, 그 곳에서 그 아이를 궁금해하는 건 나 밖에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PAOLO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기특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bar에서 일하는 직원 그 뿐이었다. 갑자기 이곳에 애정이 생긴다. 힐끔거리는 사람 하나 없고 과하게 배려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그냥 이 곳이 더 좋아져버린다.


아마 PAOLO는 몇 달 후면 주문을 받는 계산대에서 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일을 잘 해내고 익숙해지면 커피머신에서 커피 내리는 일을 할 수도 있겠지?

다른 사람보다 시간은 조금 걸릴지 몰라도 Bar에서 일하는 이상 꼭 커피내리는 바리스타 일까지 해내기를 기대해본다. 그 친구가 내리는 카푸치노를 마시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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