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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Mar 18. 2024

짐작하기 어려운 고통속에서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 2023) 중 「입동」를 읽고

김애란 작가는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산문집 『잊지 좋은 이름』이 있다.     


책의 제목이 『바깥은 여름』이라는 것이 생경하다. 책 속은 슬프고 차가운 정서이지만, 등장인물들이 갈구하는 여름은 바깥에 있다는 의미로 책의 제목이 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입동」은 일인칭 주인공 시점과 관찰자 시점이 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며. 시점이 정해져 있는 서술이 아닌 섞여 있는 시점이 현대소설의 양상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화자가 아빠인 것도 인상적이다. 보통의 글에서는 엄마가 화자로서 가슴 절절하게 서사가 펼쳐지는데 아빠가 화자로 등장해 아내에 대해 관찰자적 입장에서 이야기해 나가며 자신의 이야기도 말해주는데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p9)

첫 문장부터 의구심이 든다. 자정이 넘었는데 야식을 먹기도 늦은 밤인데 도배라니?

아내가 먼저 무얼 하자고 한 게 오랜만의 일이었다고 한다. 벽에 복분자 액이 튀어서 붉은 물이 들어 있었다. 두 달 전,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복분자 액을 돌려보내려는 걸 깜박했다.      


우리는 작년에 경매로 나온 집을 반 이상 대출을 끼고 샀다. 영우는 부릉부릉 자동차가 많은 이 집이 좋다고 말했다. 팔 차선 도로에 많은 자동차를 보고 한 말이다. 부모로서 영우가 어린이집을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고 한다.     


“이십여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이제 막 어딘가 가늘고 연한 뿌리를 내린 기분. 씨앗에서 갓 돋은 뿌리 한 올이 땅속 어둠을 뚫고 나갈 대 주위에 퍼지는 미열과 탄식이 내 몸 안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p13)


어렵게 마련한 내 집, 20년 동안 갚아야 할 빚 등이 ‘이상한 자부와 불안’으로 다가온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신문지 게임의 참가자가 된 기분이라는 묘사에도 공감이 갔다. 가장의 무게가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반의반 또 반의반 크기로 접힌 종이 위에 외발로 선 채 가족을 안고 부들부들 떠는.” (p14)   



가장의 중압감을 절묘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이 땅의 가장들이 크게 공감할 문장 같았다. 점차 정착해 나가는 문장들이 이어진다. 아내는 거실과 부엌의 인테리어에 가장 많은 정성을 쏟았다. 아내가 꾸며 놓은 공간에 영우가 낙서하면 평소답지 않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내가 가족들을 위해서 집을 얼마나 살뜰하고 지혜롭게 꾸며 나갔는지 보여주는 묘사들이 많다. 식탁과 부엌, 거실과 벽 등 필요한 물건을 놓고 부부를 위한 등받이가 없는 벤치형 의자에, 유아용 접이식 의자 등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일상의 편안함이 엄청난 행복이라는 사실을,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점점 그 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 우리 가족을 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p21)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p21)     

큰 사건이 밝혀진다. 아!     



아이를 안고, 만지고, 야단치고, 먹이고, 재우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기적인지 소설에서는 차근차근 설명하듯 묘사해 나간다. 작가가 이 부분부터는 곳곳에 눈물이 흐를 구덩이들을 파 놓은 것 같이 참을 수 없었다.  


아이가 죽은 참담한 상황에서 주변인들은 피하거나, 노골적으로 쳐다보면서 2차 가해를 한다. 본인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상황 자체가 먹먹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보험회사 직원이란 근거로 동네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문이 돈다. 사람들이 무얼 하든 차갑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에 바깥출입을 삼가고 집에서 보낸다.   


어린이집에서는 추석 선물로 복분자 액을 보냈다. 평소의 명절에는 없던 선물이었는데 영우 사건, 이후로 학부모들의 분위기를 전환해 보려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행정상의 실수이거나 일부러 보냈거나 어찌 되었든 달갑지 않고 노여운 선물일 게 분명했다.      


부엌 벽면에 벤 물이 지워지지 않아 도배하기도 했다. 우리는 위와 아래서 협동작전으로 도배를 한다. 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헐어 빚을 갚자는 아내의 말에 눈물을 쏟을 뻔했다고 한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잠을 설치다. 혹 그 돈을 쓰자면 아내가 나를 괴물로 보지 않을까 뒤척인 날들이 떠올랐다.” (p32)    


도배를 하는 동안 이사 와서 좋았던 이야기를 한다. 도배하다 영우가 자기 이름을 연습한 자국을 발견한 아내는 끝내 오열한다. 우리는 영우가 너무도 대견해서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여우를 다시 안아보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p35)    


아내가 영우를 잃고 어쩌다 바깥에라도 나갈라치면, 불행이 전염되기라도 하듯 피하던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문장이 너무 아팠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아이 잃은 부모의 마음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부부는 공통의 아픔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그렇게 소통한다. 그 큰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부부 말고 누가 있겠는가. 슬픈 두 사람이 서로 소통하면서 힘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문단에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벽지를 위와 아래서 붙잡고 선 부부가 붙이지도 못하고 떨며 온몸으로 흐느끼는 장면이 훤하게, 그 처참한 마음이 그려져서 그 장면 속으로 뛰어 들어가 꼭 안아서 영우처럼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위 서평은 YES24  2023년 11월 2째주 '주간우수리뷰'에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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