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해맞이는 못 할 것이 유력했다. 해마다 캠핑을 5년 정도 다녔다. 겨울 캠핑은 추워서 포기하고 자연휴양림을 검색하다 가까이에 있는 화순 백아산에 가기로 했다. 휴양림은 기본 주방 기구들이 모두 비치되어 있어서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챙기면 되었다. 다소 북적이는 캠핑장과 다르게 우리 가족만의 오붓한 맛이 있어서 또 좋았다. 휴양림은 신년을 맞아 집마다 이용객들이 모두 들어차 있었다. 춥기는 했지만, 바깥에 준비된 화덕에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웠다. 숯불을 바라보는 마음과 온기로 추위도 이길 수 있었다. 오후부터 내리고 있는 눈송이가 가로등 불빛에서 운치를 더해 주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신년 해맞이 행사에 꼭 갔다.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나는 모임에 나가지 못했다. 유일하게 나가는 모임이 해맞이 모임이었다. 남편의 중학교 동창 여덟 가족이 해마다 새해 첫날 해맞이 행사를 했다. 외출을 못 하는 나를 위해 시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신혼 초부터 정답게 관계를 이어오던 터라 스스럼없이 동참했다. 모두 착한 사람들이라 서로 어머니를 챙기며 즐겁게 지내곤 했다. 지금까지도 남편 친구 와이프들이 내 친구가 되어 정든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모임으로 이어오던 해맞이 행사를 우리가 이사 온 후로는 거리가 멀어서 함께하기 어려웠고, 시어머니도 돌아가셔서 우리만의 행사가 되었다. 백아산에 갔을 때는 해맞이 행사를 못 할 이유가 많았다. 남편이 발목을 크게 다쳐 수술 한 후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겨우 목발에서 벗어나 있었다. 게다가 전날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제법 쌓였고, 바람까지 불며 여전히 약하게나마 눈도 내리는 상황이었다.
안심하고 있던 나와 아이들은 설날 아침, 산에 올라 가자는 남편의 말에 깜짝 놀랐다.
“발도 아직 덜 나았는데 어떻게 산을, 눈까지 쌓여 엄청 미끄러울 텐데, 아이젠이나 스틱도 준비를 안 했는데, 위험해서 안 된다”는 나의 구구절절한 말들은 모두 묵살되었다. 아이들도 망설이는 눈빛으로 아빠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지만, 묵묵히 준비하는 아빠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날의 사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양손에 나무 지팡이를 만들어 쥔 대장과 마지못해 전쟁에 참여한 졸개들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지도도 없었다. 산길이 눈에 덮여 등산로 입구를 찾지 못하고 논밭을 헤매다가 겨우 출입구를 찾아 산행을 시작했다.
남편을 설득하다 출발이 늦어 벌써 해는 솟았고, 산에 오르는 도중에 다행히 눈은 그쳤다. 나는 남편이 미끄러지면 어쩌나 계속 걱정되었다. 바로 뒤에서 가끔 부축도 하며 산에 올랐다. 산행마다 밀고 당기는 역할을 하던 남편이었는데 그날은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불안한 마음 때문에 왜 이렇게까지 무리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누가 저 높은 곳에서 그를 부르기에 휴가 때마다 우리를 산으로 끌고 올라 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백아산 정상에 올랐다. 하얀 눈이 내려 앉은 산자락들이 사방으로 엮이고 엮여 너울너울 춤추고 있었다. 숨이 멈춰지도록 멋진 풍경이었다. 나뭇가지에는 목화솜을 올려놓은 듯 다소곳한 눈덩이들이 사랑스러웠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겨울산을 간다는데 그날 그 시간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발자국이 없었으니 눈이 내린 탓에 모두들 산에 올 엄두를 못 냈을 터였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다녀갔고, 눈이 내려 발자국을 없앴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뭏튼, 현명하지 못한 산행이었으나 그 아름다운 풍경이 온통 우리 가족의 차지여서 힘겹게 올라온 우리의 얼굴에도 뿌듯함이 서렸다.
백아산은 해발 810m로 석회석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흰 거위 떼를 보는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무등산과 지리산을 잇는 요충지라 한국전쟁 중 조선인민유격대가 진지를 세우고 병기공장을 지어 은거했다고 한다. 백아산 일대는 마당 바위 등 조정래 님의 태백산맥에도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정상에서는 무등산과 모후산, 조계산, 지리산 천왕봉까지 조망될 만큼 시야가 트여 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어렵다는 말은 진리다. 눈길을 내려오다 너나없이 몇 번의 엉덩방아를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온 가족이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해 달라는 너무도 간절한 기도로 그해의 새해 기도를 모두 써 버렸다. 산행을 마치고 남편은 아픈 다리를 만지며 나의 원망을 한참이나 들었다. “휴가 때는 험하게 보내야 일상생활을 편하게 하는 법”이라는 남편의 개똥철학이 매번 우리를 극한으로 몰고 간다. 그 말이 맞는 말인지는 몰라도 휴가를 마치고 생각해 보면 힘겹게 다녀온 풍경이 좋은 기억으로 떠오른다.
미국의 시인 앤 섹스턴(Ann Sexton)은 ‘고통은 더 깊은 기억을 새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의 의도가 그런 것이라면 그의 작전은 대성공이다. 매일 새로운 해가 떠오른다. 오늘도 해를 향해 기도를 얹어 본다.
* 우리가 올랐던 반대편 백아산 하늘다리 설경은 검색하여 가져온 사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