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에 서다

생애 최고의 등산

by 민휴

2014년 추석 연휴. 큰아들의 군 입대가 결정되었다. 그대로 입대하면 과체중상태라 훈련받을 때 엄청 힘들 것이 뻔했다. 큰아들의 체력단련을 위해 이번 휴가를 지리산으로 가기로 했다.

첫날은 청학동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명지라는 삼성궁에 다녀왔다.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는 사당과 풍경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펴 걸으며 넉넉하게 머물렀다. 가을 햇살이 깨끗한 날씨다. 50여 년 넘게 쌓아가고 있다는 돌탑과 울타리들이 신비로운 분위기와 함께 좋은 기운을 뿜어 내는 것 같았다.


둘째 날이 밝았다. 지리산 최고봉을 향해 출발했다.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돌아 야생화 군락지와 장터목을 지나 다시 중산리로 내려오는 16.2km 총 소요시간 10시간이 걸렸다.


남편은 등산 초입부터 지리산을 홀로 2박 3일 종주했던 이야기와 친구랑 장마철에 지리산에 갔다가 탈진돼서 죽을 뻔했다는 둥, 천왕봉을 여덟 번째 간다는 이야기로 등산 초보자들의 기를 죽였다. 평소에 손이 많이 가는 작은 아들이 산에만 가면 다람쥐처럼 산을 잘 타서 남편은 그 모습이 좋아 자꾸만 우리 가족을 산으로 이끌었다.


큰아들은 산이 높아질수록 점점 숨이 거칠어졌다. 천천히 걷는 나와 큰아들이 자연스럽게 짝꿍이 되었고, 남편은 작은 아들과 짝이 되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앞서갔다. 급한 오르막이 계속되어 호흡이 거칠어졌지만 함께 가는 큰아들이 걱정되어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못했다. 야생화가 보이면 예뻐서 카메라를 켜고 사진도 찍고, 물도 마시고 천천히 올라가며 숨 고르기를 했다.


지리산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이다. 성삼재에 주차하고 오르는 노고단은 몇 차례 올랐는데 그때마다 지리산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가을 야생화가 필 때면 등산객이 너무 많아 예약하고 인원수에 맞춰 기다렸다가 오르곤 했다. 노고단에서 보는 풍경과 시원한 바람에 근심 걱정을 날려 보내고 몇 가지 기도도 주섬주섬 삼키고 내려오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노고단에서는 간절한 기도가 통할 것 같았다.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가족여행이 아니라 큰아들과 둘이 간 여행 같았다. 벌써 청년이 돼서 군입대를 앞두고 있다는 것이 대견했다.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서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갔으면 싶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들한테 도움이 되는 곳이라면 데려가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겠거니 그런 생각도 스쳤다. 앞서 올라 간 남편과 작은 아들은 거리가 멀어져 아무도 우리를 가족으로 보지 않을 것이었다. 행여나 싶어 두 개의 가방에 물과 간식을 따로 나눠서 담았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천왕봉 정상을 100m 정도 남긴 곳부터는 온통 크고 작은 바위로 덮 있다. 경사 심해 올라가면서 뒤로 넘어지는 느낌과 발을 디딜 때마다 돌이 미끄러지기도 해서 위험했다. 아픈 다리를 끌고 기어서 오르는 듯한 자세가 되었다. 고지가 눈앞인데 그제야 참았던 두려움이 왈칵 코끝까지 밀려왔다. 나와 큰 아들은 온 힘 다해 올라가는데 저 멀리 정상에 여유롭게 앉아 우리를 지켜보는 남편과 작은 아들이 보였다. 성공한 자들의 여유는 늘 부럽다. 힘든 우리를 남겨 놓고 앞서간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겹쳤다.


1915m의 지리산 천왕봉은 가 올라 본 최고로 높고 멋진 봉우리다. 1967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전남 구례, 전북 남원, 경남 하동, 함양, 산청 등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 중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고 하여 지리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천왕봉에서는 지리산의 주능선인 반야봉, 노고단 등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구름도 발아래에 있었다.


야생화 군락지에서 만난 구절초는 선명한 보랏빛으로 내 발길을 붙잡았다. 그 아름다운 한편에 오두막을 짓고 세속에서 벗어나 살고 싶었다. 장터목에도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가을은 등산하기 좋은 계절이다. 리산은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 가을산의 멋을 더하고 있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일이나 첫발을 내디디면 끝이 보인다는 것을 배운 날이었다. 그날의 산행 이후, 산에 갈 때마다 속도가 느린 나를 재촉하는 남편에게 "이 속도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갔다 온 사람이야. 늦어도 끝까지 갈 수 있다고요."라고 말한다. 남편은 또 조용히 말한다.


"그런 말 하지 마! 산 좋아하는 사람들이 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