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가능하다고?

매일 다른 산에 오르기

by 민휴

“휴가 동안 매일 산에 가는 거 어때?”

“그게 가능하다고? 어떻게?”

“해 보면 알지!”

이 정도면 휴가라도 반갑지 않다. 휴가 때마다 산에 가는 것은 그렇다 치자. 매일 다른 산에 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산마다 정상까지 가야 할 텐데... 아예, 스케줄을 짜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도 머리가 아팠다. 한 번 말을 꺼내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 도전의식이 또 발동한 것이다.


9일 연휴 중 마지막 날은 쉬고, 8일 동안 매일 다른 산에 가자고 한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처음부터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산에 한 번만 다녀와도 며칠씩 아프다, 일 년에 한 번 받는 휴가에 심하게 몸을 쓰면 근무할 때 힘들어서 어쩌냐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루 이틀 힘듦을 이겨내면 사흘부터는 쉽다고 우긴다.

연휴 첫날은 집뒤의 분적산에 올랐다. 남편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산책하듯 가볍게 다녀오는 산이다. 나와 둘째는 평소엔 집 근처 물빛호수공원을 걷고, 주말엔 분적산에 가끔 가는 정도였다. 분적산은 빛고을에서 무등산 다음으로 높은 415m의 산이다. 내 속도로는 왕복 두 시간이 걸린다. 휴가 동안 이어질 산행을 위한 애피타이저였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영암 월출산 주차장에서 종주를 위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등산할 때 물을 자주 먹는 편이라 가방 두 개에 작은 생수 네 병씩 넣었는데 남편은 무겁다며, 산에 올라가면 약수터가 늘 있다고, 생수병을 두 개씩 빼내버렸다. 점심은 정상에서 먹기로 했다. 개의 가방에는 김밥과 음료수, 생수 두 병씩과 사탕 몇 개, 오이 두 개가 전부였다. 천황사에서 출발해 반대편 도갑사로 내려오는 종주코스다. 천황탐방지원센터, 구름다리, 천황봉, 억새밭, 도갑사까지 9.8km 코스는 경사가 심하여 등산화와 식수를 챙기는 것은 필수라고 한다. 암석으로 된 부분이 많아 철계단과 밧줄을 이용해 암벽 등반을 방불케 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군대의 유격훈련이 이 정도일까 짐작해 보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월출산 암릉지대는 설악산 공룡능선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구름다리와 암석지대를 우여곡절 끝에 지났다. 809m 높이의 천황봉은 그야말로 옥훈련 끝에 만나는 피안의 세계였다. 무심한양 최고의 자태를 펼쳐 놓고 "나 어때?"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암읍과 나주평야가 펼쳐 보이고 영산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겹게 오른 고달픔도 잊고 정상에 오른 기쁨으로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맘 편히 하산하면서 험한 바위길보다 더 어려운 코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억새밭을 지나는 코스였다. 체력은 바닥났고, 물까지 떨어져 갈증과도 싸워야 했다. 멀게만 느껴지던 그 길에서 날씨가 더워 물을 많이 먹게 되었는데, 월출산에는 물 마실 약수터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둘째는 헉헉거렸고, 끝이 보일 기미는 없었다. 몸에서 힘이 모두 빠져나갔고 터덜거리며 걸을 뿐이었다. 약수터 찾는 것을 포기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찾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산을 내려오는지 다시 오르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남편이 손으로 빼낸 생수 네 병이 어찌나 그립던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둘째가 힘들어해서 물을 어떻게 구하나 걱정하고 있을 때, 우리를 앞서려는 남자분께 아이를 핑계로 물을 얻을 수 있었다. 생수 한 병을 주셨는데 생수 한 모금이 그렇게 달고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 월출산도 경치는 최고였고, 험한 산행이었던 만큼 보람도 컸다. 총 7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하산했다.

셋째 날, 지리산 노고단으로 향했다. 노고단은 역시, 내게는 최고 중의 최고였다.


넷째 날, 고소산성에서 보였던 악양들녘과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은 그림처럼 유려했고, 산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듯 피부를 감싸던 바람결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성벽 위에 솟아난 커다란 소나무 아래서 둘러보는 풍경은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자연스럽게 연상케 했다. 그 연장선상으로 산성을 내려와 최참판댁 둘러보았다. 책 속에서 만났던 배치대로 서희의 뜰에 핀 배롱나무와 연못을 헤엄치던 잉어들도 예뻤다. 마당에 피어있던 하얀 설악초도 운치를 더해 주었다.


다섯째 날, 출근해야 해서 나는 산행에 참석하지 못했다. 가방엔 물과 간식이 넉넉하게 챙겨져 있었다. 내장산을 종주할 계획이라 입구에 내려 주고 출근했고, 돌아올 때는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산에 가면 오로지 정상만 보고 올라가는 아빠를 따라가며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여섯째 날, 장흥 천관산으로 출발했다. 이틀 동안 아이들은 정상까지 잘 다녀왔다고 한다.

일곱째 날, 토요일이라 나도 함께 무등산 입석대를 지나 서석대까지 다녀왔다.

마지막날엔 다시 분적산에 오르며 8일 동안의 산행을 마무리했다. 나는 이틀을 쉬었지만, 몸이 회복되지 않아서 마지막날의 짧은 산행이 가장 힘들었다. 아이들은 6일 연속 산행으로 몸살이 나 마지막날 산행은 함께하지 못했다. 이로써 우리 집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은 남편으로 판명이 났다.

8일 동안 매일 다른 산을 가겠다는 남편의 목표는 성공했다. 해보지도 않고 이런저런 핑계를 댔던 나는 무리한 산행으로 여기저기 아프다고 심하게 엄살을 부리며 변명의 위기를 모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