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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시 Feb 06. 2023

스페인 세고비아에서 중세풍 하루 보내기

로마 수도교부터 백설공주 성까지, 세고비아의 매력

 스페인을 여행하는 이들이 '찍먹'하듯 잠시 머물다 떠나는 도시가 있다. 마드리드에서 한 시간이면 버스 당일치기가 가능한 세고비아(Segovia). 마드리드의 근교 중 가장 유명한, 그리고 놀라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세고비아는 중세 유럽사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그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듯하다.


 2017년과 2022년 두 번에 걸쳐 세고비아에 방문했다. 첫 여행 때는 다른 여행자와 다름없이 발가락 담그듯 수도교 등 주요 관광지를 당일치기로 둘러보고, 꼬치니요(새끼돼지 통구이)를 맛보는데 집중했다.


 때문에 두 번째 여행의 모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찬' 중세풍 하루를 여유롭게 보내는 것으로 정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역시 띵시가 추천하는 세고비아 하루 루트를 따라 중세 유럽의 향기를 느껴 보길 바란다.



아침, Aurea Convento 호텔과 대성당

 대부분의 관광객은 마드리드에서 당일치기로 세고비아와 톨레도를 여행한다. 사실 하루 만에 두 도시를 들러도 주요 관광지는 훑고 지나갈 수 있지만, 나는 이러한 도장깨기식 여행을 추천하지 않는다. 특히 세고비아의 경우 랜드마크뿐만 아니라 멋들어진 식문화 체험도 놓칠 수 없기 때문에, 시내에서 1박을 하며 아침과 저녁의 도시 분위기를 모두 만끽하는 것을 권한다.


 나 역시 이전의 당일치기 방문에서 큰 아쉬움을 느껴, 이번에는 숙소를 예약해 하룻밤을 보냈다. 세고비아 최초의 5성급 호텔인 아우레아 콘벤토 카푸치노스(Aurea Convento Capuchinos)는 무려 4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수도원(Convento)을 개조해 만들었다.

 이 호텔의 정수는 객실에서 시원하게 보이는 엽서 같은 뷰. 객실의 창문을 열자마자 시간 여행이라도 하는 듯 중후한 멋을 풍기는 가옥들과 산타 마리아 수도원(Monasterio Santa Maria de Parral)이 시원하게 보여 절로 카메라를 들게 되더라.


 호텔에서 짐을 풀고 나와 첫 번째로 향한 곳은 세고비아 대성당(Catedral de Segovia)이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높고 좁은 구조의 성당들과 달리, 이곳은 튀르키예의 모스크를 연상시키는 널찍한 형태를 취하고 둥그런 돔을 올려 두었다.


 완공되기까지 약 250년이 소요되었다고 하며, 타오르는 촛불을 모티프로 했다는 독특하고 세련된 외관으로 인해 '대성당 중의 귀부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예배당과 탑 투어 시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나는 크리스마스 당일 점심경 방문한 덕에 무료로 성당에 입장할 수 있었다. 스페인의 성당과 교회의 경우, 크리스마스 등 종교적 기념일의 미사 시간에는 무료로 개방되는 곳이 많으니 이 점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다만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니 꼭 기억할 것!


 세고비아 대성당 내부의 첫인상은 '어딘가 휑하다'였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과 높디높은 천장을 보고 있노라니, 1768년에 대체 어떻게 이러한 규모의 건축물을 만들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다만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의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들을 찬찬히 바라보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듯했다.



점심, Plaza Mayor와 수도교

 스페인 내 모든 도시의 중심부에는 플라사 마요르(Plaza Mayor), 즉 대광장이 있다. 때문에 어느 지역을 여행하더라도 지도에서 플라사 마요르를 검색하면 도시의 센터 또는 주요 관광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는가?


 세고비아의 대광장은 대성당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필자가 방문한 12월 말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이라, 추운 손과 속을 녹이기 위해 한 부스에 들러 따끈한 음료를 마셨다.

 프랑스에 뱅쇼가 있다면 스페인에는 '뜨거운 와인'이라는 뜻을 지닌 비노 깔리엔떼(Vino Caliente)가 있다. 뱅쇼와 비교해 팔각과 시나몬 등 향신료는 적게 들어가, 와인 고유의 맛이 진한 음료이다.


 알코올은 거의 휘발되어, 부담 없이 깔끔하고 기분 좋게 맛볼 수 있다. 더불어 '세고비아'가 손글씨로 적힌 도자기 컵을 덤으로 주니 이만한 기념품이 없다 :)


이제, 세고비아의 터줏대감 수도교(Acueducto de Segovia)로 이동해 보자. 2층 아치로 이루어진 화강암 수로는 시내로부터 17km 떨어진 산에서부터 흐르는 물을 시내까지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사진상으로는 그 규모가 잘 느껴지지 않는 듯해 아쉬운 마음뿐이다. 로마시대에 지어진 이 교량은 높이가 약 30m로, 무려 천 년 전에 어떻게 아파트 10층 규모의 수로 시스템을 구축했을지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나의 편협한 관점으로는, 한 지역을 대표하는 유적지는 한 발짝 뒤에서 감상하며 철저히 보호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고비아의 지역민들은 수도교 바로 밑에서 공연을 열고, 또 다리를 관통하는 자전거 경주를 여는 등 '생활 및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면모를 보였다.


 이와 같이 지역 문화유산을 단지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주민들과 공생하는 공간으로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이 참 따뜻하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저녁, 알카사르와 노체부에나 디너

 디즈니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성이 세고비아의 알카사르(Alcazar de Segovia)를 모티프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알카사르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푸른 지붕과 상앗빛 외관이 아기자기한 멋을 자아낸다. 하지만 동화 같은 겉모습을 한 겹 걷어내 보니, 이 성은 수세기에 걸쳐 주요 전쟁 요새 및 감옥으로서 기능했다는 다소 섬뜩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세고비아 대성당을 지나 시내를 도보로 가로지르면 알카사르에 쉽게 도착할 수 있다. 성의 맞은편에 위치한 레이나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광장(Plaza de la Reina Victoria Eugenia)에서 즐기는 뷰 역시 고즈넉하고 멋스럽지만, 나는 웅장한 알카사르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포인트를 소개하고 싶다.


 오후 햇살이 어스름해질 무렵, 지도에서 '알카사르 전망대와 두 계곡(Mirador del Alcazar y los dos Valles)'을 검색해 보기를 바란다. 언덕길을 따라 형성된 둘레길을 걷다 보면 상상도 못 한 경이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무들 사이에 숨겨진 전망대에서 알카사르를 시원하게 바라보노라면, 중세시대로 돌아가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며 언덕 위에서 땀을 식히는 듯한 환상이 들곤 한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성곽 밑에서 조명이 켜지며 로맨틱하고 몽환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아마 오래전에는 한창 좋은 시절(?)의 중세 MZ세대 커플이 노을 내리는 알카사르를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지 않았을까?


 나는 세고비아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다. 스페인에서 12월 24일 저녁은 노체부에나(Nochebuena)라고 부르는 '특별한 밤'이다. 대부분의 일가친척들이 한데 모여 몇 시간에 걸쳐 저녁식사를 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풀어보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하지만 그 말인즉슨, 관광지의 식당 주인들 역시 가족과의 시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영업을 일찍이 종료하고 집으로 향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극소수의 식당들만이 24일 저녁 쎄나 노체부에나(Cena Nochebuena)라고 부르는 코스 요리를 판매한다. 약 3~4코스로 진행되는 값비싼 식사이기 때문에 사전 예약은 필수 또 필수. 나 역시 노체부에나를 굶주린 채 보내지 않기 위해 세고비아 여행 몇 주 전부터 식당들을 탐색했고, El Redebal이라는 식당의 저녁 코스요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세고비아 대표 전통 디쉬 꼬치니요(Cochinillo)를 맛보러 세고비아에 오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꼬치니요를 즐기지 않는다. 연하디 연한 돼지고기를 육수에 담가서 먹는, 어딘가 익숙한 맛을 느끼고 있노라면 겉절이와 쌈장이 당기더라.


 때문에 노체부에나에 방문할 식당을 고를 때는 '메뉴의 다양성'을 중요시했고, El Redebal은 다양성 면에서 백 점 만점을 주고픈 레스토랑이었다. 스페인 내 식당들이 으레 그러하듯 따뜻한 접객이 인상적이었으며, 해산물과 육류를 적절히 활용해 완벽한 '중세식 홀리데이 디너'를 연출했다. 맛있고 온기 어린 저녁식사로 세고비아에서의 꽉 찬 하루를 마무리했다.




 세고비아를 하루 또는 이틀간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을 추천하는 이유는, '온기'를 지닌 소도시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소개하였든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할 뿐만 아니라, 식당과 관광지 등 이곳저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따뜻하고 친절해 스페인 특유의 푸근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근교 '도장 찍기'를 목표로 세고비아에 들른다면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순간순간이지만, 이를 오감으로 느끼며 중세 유럽의 미를 흠뻑 들이마시고 온다면 여러분의 인생 여행지 중 하나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식 여행 크리에이터 @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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