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달루시아의 관문, 스페인 코르도바 여행기
공존과 융합의 고장, 안달루시아. 스페인의 안달루시아는 이슬람과 가톨릭 문화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이베리아 반도 내 타 지역과는 사뭇 다른 멋을 지닌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이미 세비야, 그라나다, 론다 등의 도시는 우리 사이에서도 굉장히 잘 알려졌지만, 코르도바(Córdoba)는 그 유명세가 덜한 듯합니다. 저 역시 안달루시아 내 대부분의 유명 도시들을 여행했지만, 코르도바 방문만은 차일피일 미뤄 왔는데요. 그 이유는 여름철 유럽 내에서 가장 더운 도시 중 하나라는 악명을 지닌 곳이기 때문입니다.
코르도바는 하절기 기온이 40℃를 웃돌기로 유명합니다. 때문에 시내 대부분의 집이 태양열을 반사시키기 위해 외벽을 하얗게 칠하고, 햇빛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페르시아나(persiana)를 모든 창문에 설치합니다.
코르도바가 스페인 남부 지역 중에서도 특히 더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리적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코르도바는 안달루시아의 극 내륙 도시에 속하는 동시에 여름철 아조레스 고기압(anticiclón de Azores)의 영향권에 들어 폭염과 극심한 가뭄을 겪습니다.
이러한 기후를 고려해, 6월 말-8월에는 코르도바 여행을 피하는 게 좋습니다. 다만 기억해야 할 사항은 매년 5월경 코르도바 파티오 축제(Festival de los Patios cordobeses)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골목골목의 집들이 창문을 제라늄 등의 아름다운 꽃으로 꾸미는 대회인데요, 하얀 벽과 붉은 꽃들의 조화가 아름다워 정말 오래 남을 추억이 될 것 같네요.
저는 말라가를 여행한 후, 마드리드로 향하는 길에 당일치기로 코르도바를 둘러볼 수 있었는데요. 연초 방문하니 기온이 15℃를 웃돌아 포근한 날씨와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코르도바에 들르고자 하는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할 관광 포인트와 여행 팁을 몇 가지 전해 드릴게요.
코르도바 로마 다리
Puente Romano
코르도바의 첫인상은 ‘투박하다’, ‘소박하다’ 였습니다. 주차 후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로마교(Puente Romano de Córdoba)였기 때문인데요, 세고비아의 로마 수도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려 기원전 1세기 초에 지어진 코르도바의 로마교는 수차례 복원과 재건을 반복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 중 하나인 동시에, 주민의 생활공간으로써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로마 다리의 바로 맞은편에는 신전을 닮은 거대한 건축물이 보입니다. 이는 푸에르타 델 푸엔테(Puerta del Puente), 즉 ‘다리의 입구’인데요, 옛 코르도바를 보호하는 성곽의 출입문 구실을 했다고 합니다.
저녁에는 이 문을 은은하게 비추는 조명이 켜져 더욱 아름답다고 하니, 1박 2일 일정으로 코르도바를 방문하게 되면 로마교와 푸에르타 델 푸엔테의 야경을 꼭 구경하시기를 바랍니다.
푸에르타 델 푸엔테를 끼고 우회전하면 토리호스 길(Calle Torrijos)에 접어듭니다. 이 길에는 수많은 로마식, 아랍식 예배당과 조각상 등 유적이 즐비합니다. 골목골목 옛 스페인의 정취를 느끼며 다음 행선지로 향해 봅니다.
이슬람 사원과 가톨릭 성당의 조화, 메스키타
Mezquita de Córdoba
다음으로 소개해 드릴 장소는, ‘이것’을 보지 않으면 코르도바를 여행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들 하는 명소인데요. 바로 메스키타(Mezquita)입니다. 한 공간 내 이슬람과 가톨릭의 흔적이 공존한다니, 그 모습이 쉬이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사전 티켓팅을 하지 않아도, 현장 예매가 가능했답니다. 성인 기준 입장료는 13유로로, 스페인 내 타 관광 명소들과 비교하면 다소 비싼 편입니다. 그 값어치를 할지 궁금해하며 입장해 보았습니다.
입구부터 압도감이 느껴졌던 메스키타는 상상 그 이상으로 독특하고 묘한 멋을 풍기는 곳이었습니다. 스페인에서 지금껏 방문했던 대도시들의 성당과는 달리, 뚜렷한 흰색과 붉은색으로 칠한 이중 아치와 기둥들이 빼곡한 공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흔히들 떠올리는 스페인 및 유럽 대성당들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부드러운 빛이 인상적이죠. 하지만 메스키타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절제해 중압감과 엄숙함을 자아내는 듯했습니다.
아치들의 향연에 넋을 놓고 돌아다니다 보면, 또 어느 순간 여느 유럽 성당과 비슷한 양식의 예배 공간이 등장했습니다. 사진상으로는 도무지 같은 건물에 존재할 수 없을 듯한 풍경이 아닌가요?
메스키타의 중앙에는 거대한 가톨릭 예배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슬람교가 스페인에서 척결되던 15세기, 이슬람의 산물인 예배당 역시 철거되어야 한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카를로스 5세 왕은 메스키타를 보호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의 고집 덕분에 두 종교가 한데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동거’가 완성될 수 있었죠.
건물 내부에는 예배 공간뿐만 아니라 시대를 풍미하는 유물들과 조각품, 귀금속의 전시 공간 역시 잘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비교적 방문자가 적은 아침 일찍 방문해, 자연광의 변화를 느끼며 메스키타 이곳저곳을 자세히 둘러보면 좋을 듯하네요.
황금빛 오렌지가 거리를 메우는 올드타운
Centro Histórico de Córdoba
다소 추운 느낌의 메스키타를 나서면, 1월임에도 찬란히 빛나는 코르도바의 햇살이 온몸을 감쌉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매력 중 하나는 거리 곳곳의 가로수들이 오렌지 나무(naranjo)라는 것인데요, 먹음직스럽고 싱싱한 이 오렌지는 사실 먹을 수 없게끔 아주 시큼하고 쓴맛이 나게 개량되어 있답니다. 맛이 궁금하더라도 눈으로만 즐겨 주세요!
코르도바의 올드타운은 건강하고 흥겨운 기운이 가득합니다. 여느 스페인 도시들처럼 버스킹 공연이 골목 곳곳에서 열리고 있었는데요, 특히 메스키타 바로 옆에서는 십 대로 보이는 학생들이 스페인 전통 음악을 기타로 연주하며 합창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작은 순간순간이 여행의 기억을 한층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듯했습니다.
구시가지에서는 안달루시아 전통 식당들과 각종 기념품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레스토랑들의 평점도 대체로 높은 편이지만, 항시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기에 조용히 식사하고자 신시가지로 이동해 보았습니다.
코르도바에서는 ㅇㅇㅇㅇ를 맛볼 것!
스페인 대부분의 도시가 그러하듯, 코르도바 주민들 역시 지역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몹시 강합니다. 저 역시 코르도바의 타파스들이 정말 궁금했기에, 다양한 메뉴를 주문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나온 요리는 Berenjenas Fritas con Miel, 즉 꿀을 곁들인 가지 튀김입니다. 한국에서는 고기를 곁들이거나 짭짤한 양념을 바른 가지 튀김을 즐기곤 하죠. 하지만 코르도바를 비롯한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는 가지를 채 썰거나 동그랗고 얇게 썰어 아주 바삭하게 튀긴 후, 까만 빛을 띠는 꿀인 미엘 데 까냐(miel de caña)를 뿌려 먹습니다.
그리고 이 수프가 바로, 코르도바에 온 이들이 꼭 맛보아야 하는 살모레호(Salmorejo)입니다. 언뜻 보면 스페인식 토마토 냉수프인 가스파초(Gazpacho)와 비슷하죠? 살모레호는 가스파초보다 되직한 질감의, 칼로리가 약간 더 높은 토마토 수프입니다.
스페인 전역에서는 가스파초 또는 살모레호가 ‘여름 애피타이저’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코르도바에서는 계절을 불문하고 살모레호를 식사에 곁들입니다. 빵을 갈아 넣어 걸쭉하면서도, 채소의 상큼함이 두드러져 더운 날씨에 사라진 입맛을 되찾고 기운을 돋우는 맛입니다.
가지 튀김과 살모레호 외에도 다양한 음식을 주문했는데요, 대체로 마늘을 많이 사용해 맛이 진하고 강렬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처럼 남부의 음식이 간과 향신료가 센 느낌이네요.
더불어 식당의 종업원인 까마레로(camareros)들이 쾌활하고 호탕하면서도 정감 가득해 안달루시아 지방의 푸근함을 한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주 든든하게, 그리고 기분 좋게 코르도바 여행을 마무리했답니다.
연말연시 스페인을 여행하는 분들이 ‘스페인은 춥지 않을 줄 알았다’며 당황하는 경우를 자주 보았습니다. 코르도바는 한겨울에도 따뜻한 감성과 투박한 매력이 있는 도시이기에,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을 제외한다면 언제든 방문해도 기분 좋은 도시랍니다. 더군다나 파티오 축제가 열리는 5월이라면, 제라늄 향기와 눈부신 햇살에 취해 안달루시아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겠죠.
스페인 중북부에서 다음 행선지를 찾는다면 찬란한 하늘과 황금빛 오렌지, 그리고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의 공존을 만날 수 있는 코르도바를 꼭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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