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수호성인, 산 이시드로 축제
현재 저는 브런치를 비롯한 세 개의 채널에 스페인과 중남미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같은 주제를 다루어도 좋아요(or 라이킷)가 가장 많이 달리는 글은 브런치 포스트였습니다. 그럼에도, 제 브런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너무 재미가 없더라고요. 제가 쓴 글들을 끝까지 읽지 않고 좋아요를 누른 분이 있더라도, 재미가 없음에도 의리로 라이킷을 해주셨으리라고 생각되어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웃겨서 좋다는 동거인님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니, 그냥 뇌에 힘을 빼고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보라고 하더군요. 사실 제 네이버 블로그를 본 분들이라면 띵시라는 블로거가 얼마나 경박하고 촐싹 맞았는지 알고 계실 거예요. 이와 달리 약간의 '후로훼셔널함'을 담아보기 위해 시작한 채널 역시 브런치였고요.
그런데 아무리 프로페셔널하고 유익해도, 글이 재미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 아니겠어요? 약간은 경박하고 불친절하더라도, 노는 거 좋아하고 술과 음식 좋아하는 스페인 거주자의 눈에서 바라본 가이드북을 제공하고 싶어 졌어요. 오늘부터 다소 불친절한 스페인 가이드북을 만들어갈 띵시, 다시 인사드립니다.
첫 번째로 다룰 주제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 이시드로의 날(Día de San Isidro)입니다. 마드리드 주민이 아니라면 99%의 독자들이 처음 들어보실 만한 축제예요. 개성이 없거든요(스페인 사람들에게는 비밀입니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세비야는 스페인 광장과 플라멩코, 발렌시아는 토마토 축제와 빠에야... 대부분의 스페인 대도시들은 아이코닉한 '썸띵'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드리드는 그런 점에서 다소 맹숭맹숭하고, 색깔 없는 도시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어요. 그리고 그러한 마드리드의 약점이 완벽하게 반영되어 있는 행사가 바로 이 산 이시드로의 날입니다.
하지만 '노잼 축제'라는 인식 덕분에 관광객이 찾지 않아, 저 같은 외부인도 지역 주민과 완벽하게 섞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1그램 정도의 뻔뻔함만 발휘한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가 선물처럼 찾아오기도 하죠.
산 이시드로 축제 경력자들은 전통 복장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나옵니다. 여성 분들은 땡땡이 치마에 자수가 들어간 숄을 걸치고, 머리두건과 주먹만 한 꽃까지 준비해 옵니다. 남자분들은 집에 있는 정장 중 가장 귀여운 것을 골라 입고 나오는 것 같아요.
너무나 포토제닉 하고 귀여운 복장, 사진꾼으로서 놓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스페인어 실력을 발휘해 약간의 뻥을 쳐 보았어요.
Hola, soy una fotógrafa coreana(안녕, 나는 한국인 포토그래퍼예요)... 나는 산 이시드로 축제에 처음 와보고... 모든 이들이 멋진 방식으로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너무 멋있고...(약 1분간 축제 이야기)... 그래서 그런데 당신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170cm 거구의 귀여운 동양인 여성이 카메라를 들고 다가와 외국인은 아무도 없는 지역축제에 대해 배우려고 하는데, 마드리드 토박이로서 이 애가 어찌 기특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사실 저 역시 이렇게 뻔뻔하게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일은 처음이라, 사진에 담긴 분들의 태반은 눈을 감고 계시거나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마음껏 사용하라며 너무 기뻐하시는 모습에 저까지 행복해졌어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축제에 대해 간략히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산 이시드로는 마드리드 근교의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깊은 신앙심으로 갖은 기적을 펼쳤음에도 한평생 농사를 지으며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삶을 실천해 '노동자의 성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화(Cultura)'라는 단어 역시 '가꾸고 경작한다'라는 어원을 지닌 바, 마드리드 곳곳에서 갖가지 문화 축제를 개최하며 산 이시드로의 뜻을 기리는 것이죠.
마드리드 시내와 외곽 곳곳에서 소규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중,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자기 마켓에 가 보았습니다. 평소 스페인 곳곳에서도 볼 수 있는 삼삼하고 소담한 마켓이었지만, 유달리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도자기를 사고파는데 그치지 않고, 지역 도예가들의 작품 제작 라이브 시연과 어린이를 위한 그릇 만들기 입문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들이 함께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마켓의 테마는 ‘현대의 도자기, 새로운 세대(La alfarería actual, nuevas generaciones)’인 만큼, 마드리드 토박이 주민들과 아이들까지 지역 문화 예술에 대해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장이었던 듯합니다.
해가 어스름해질 무렵, 마드리드 센트로를 걷던 도중 우연히 마요르 광장(Plaza Mayor)에 홀린 듯 들렀습니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이곳에도 거대한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요. 80년대 가요 페스티벌(La Fiesta Ochentera)이 개최되기 직전 꽤나 앞자리를 운 좋게 사수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 8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던 그룹 라 우니온(La Unión)의 라파 산체스(Rafa Sánchez)의 공연을 바로 무대 앞에서 즐기는 호사라니, 그것도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인 마요르 광장을 등지고 라이브 음악을 듣고 있으니 비로소 저 자신이 스페인에 200% 녹아든 듯해 기분이 묘하고도 가슴 벅찼습니다.
비록 80년대 스페인 가요를 주로 하는 행사이지만, 십 대와 이십 대 관객들 역시 하나 되어 공연을 즐기는 이 풍경이 가장 ‘스페인답다’고 느껴졌습니다.
마드리드 산 이시드로의 날은 스페인 대표 축제로 꼽히는 세마나 산타, 라 토마티나, 카니발 등에 비하면 작은 규모로 소박하게 열리는 행사입니다. 하지만 마드리드 주민의 따스한 정과 지역에 대한 애정, 그리고 공동체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도시의 얼’이나 마찬가지죠.
소박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주민 중심이기에 더욱 빛나는 산 이시드로 축제. 여러분도 스페인을 여행하며 우연히 작디작은 지역 행사를 맞닥뜨리게 되면, 이날을 지역민들과 함께 기념하며 마음속에 이 도시만의 온기를 담아 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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