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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덕 Aug 20. 2022

여름이 저무는 하늘에는

유독 사랑하여 아끼는 시간이 있다.

마냥 사랑하여 마냥 아끼던 것들이 무르익다 문득 떨구어지는 여름에는, 구름이 많다.


구름이 지나는 하늘에는 전선이 많다.

 

여름밤 비는 내리고 유독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들릴 즈음 문득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비가 이렇게 많이 오면 저 많은 전선이 위험할지도 모르겠다고. 지직 소리를 내던 가로등이, 유독 혼자만 색이 다르던 어느 골목의 불빛이, 다가가자 별안간 밝게 켜지던 어떤 조명이. 또 오롯이 시간을 멈추던 어떤 놀이터에 앉아 바라보던 빛들도 꺼져버릴지도 모르겠다고, 망가질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생각에 문득 들곤 하다가 아닐 거라며 지우곤 했다.


유독 사랑하여 아끼는 시간이 있다. 그런 계절도 있고. 바빠도 즐거이 받아들일 수 있고, 힘들어도 그런 줄 모를 때가 있다. 모든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끼기 위해서는 알아야 하고, 알아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따라가고 마는 것이다. 그저 사랑하고 마는 것이다. 마냥 사랑스러워하곤 하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소중해지는. 그런 순간들이 나의 일상에 스치다 스미기도 하고, 끝내 옅어지기도 한다.


나는 하늘을 스치는 전선들도, 그 전선들이 가져올 불빛들도, 거기에 담길 기억들과 기억 속에 담길 내 노력들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사랑해서 두려워하다가도, 두렵기에 사랑하고 만다. 혹여 사랑이 상처가 되고 걱정이 되어도 기어이 그를 끌어안고 기꺼이 슬퍼해야지. 비록 하늘이 선사한 날들이 뜨겁고 잔인하게 습해도, 그럼 된 거 아닐까.


이제 달이 잘 안 보인다. 어딘가에는 분명 떠있긴 할 텐데. 아마 당분간 나에게는 보이지 않을 듯하다. 어디에 있는지 언제 떠있는지 굳이 찾지 않을 예정이니.


그래도 언젠가는 궁금해질 수도 있겠지. 그럴 때 떠올리고는 소리를 질러버리든 크게 웃어버리든 내 마음대로 해야지. 어둠을 동경하기보다는 밝은 시간을 당분간은 살아가려 한다. 모든 순간의 색을 덧칠해 검정으로 품어두기 위한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순간의 빛을 오롯이 품어 밝게 빛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길. 그런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내가 마냥 아끼어 사랑하는 한여름의 바람들에 나를 맡겨보아야지. 애틋하다 못해 애잔한 그 순간들을 오롯이 즐길 내가 될 수 있기를 내일 찾아올 구름들에다 빌어야지. 머무르기보다 흘러가버리는 구름은 그러한 생각과 염원을 싣고 어디론가 가주겠지. 그 어딘가에 닿은 염원이 행복이 되어준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다. 그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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