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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일린 Apr 19. 2024

임원에서 자영업으로 - “오션즈8”으로 팀을 모으다

원격 재택근무, 이를 통해 경단녀들이 다시 뭉친 이야기

이전 회사를 그만두면서 하나 결심한게 있다.

회사에 내 라이프스타일을 끼워맞추지 말고,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먼저 정한 후 이에 맞는 일을 찾자.

많은 대기업 및 중견 기업에서 생존하는 방식인 저녁 음주와 골프를 안하면서도 생존할 수 있는 일터여야 한다.

타고난 체력이 아니다보니 아침잠도 필요하고, 밥먹고 2~30분 꼬박꼬박 걸어주어야 한다.

제주에 있는 아이를 보기 위해 격주 한번씩은 제주로 가서 주말을 보내야 하고, 하루일찍 혹은 늦게 귀경하는 것도 가능해야 한다.

내 중요한 인생 목표인 “20개 도시 한달살기”를 위해 여름에 한달 정도는 시간을 뺄 수 있어야 한다.


음.. 이러고 나니, 제도권의 회사는 갈 데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ㅠ

물론 아이 학비를 벌어야 하는 생활인이다 보니, 나중에 요건 정의를 다시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올해는, 이 라이프스타일에 맞추어 일을 해보기로 결심해본다.

그래서 자그만 내 회사인 ‘엔다이브’를 통해, 작은 자문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한번 새로운 모델을 테스트해보고 있다.


엔다이브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수행된다.

충분히 사안을 분석하고 변화 방향성을 도출하여 실행에 옮겨볼 수 있는 프로젝트 기간 확보.

프로젝트는 기본 재택으로 진행하며, 1주 1회 고객사 사이트에서 내외부 미팅을 진행.

당연히 줌/구글밋 미팅은 수시로 진행되나, 참여하는 팀원들의 생활 패턴을 고려해서 요일/시간 정함.

그 대신, 전체적인 fee는 합리적 수준으로 가져감.

(다행히도 이런 철학에 동의해 주시는, 나와 20여년간 알고지낸 동료들이, 프로젝트를 주셔서, 한번 해보고 있다.)


프로젝트 팀원은, 느슨한 네트워크 상에서 서로의 사정과 특기가 맞는 사안에 대해 계약 베이스로 함께 한다.

이른바 “오션즈 8” 스태핑 모델이랄까..

신사업 타당성 프로젝트를 할 때는 대기업 신사업 담당 임원을 하다 건강 이슈로 퇴직한 내 후배가 함께 했고,

마케팅 프로젝트를 할 때는 고3 뒷바라지 하며 개인 화장품 브랜드를 운영하는 후배가 함께 했다.

고객 서베이 설계할 때는 글로벌 조사 업체 임원으로 계시다가 지금 초등아이들 키우는 후배의 친구가 조인하셨고.

이 프로젝트가 발굴한 ‘신예 스타’는, 아이 키우느라 10년 경력 단절된 후, 이번 계기로 복귀한 내 베인 시절 후배이다.

10년간 회사를 다닌 적이 없어 다 까먹었다고 걱정했는데, 몇주 되니까 분석이나 발표나 아주 날아다닌다.

남녀를 가리진 않지만, ‘재택+플렉시블 워크’를 지향하다 보니, 여러 이유로 경력단절이 된 여성분들이 함께 하게 된다.


자칭 ‘오션즈8’ 모델 돌리면서 몇 가지 느낀점.

작금의 협업툴이 정말 일취월장했고, 충분히 100% 재택으로 많은 업무 가능하다.

다만, 팀 사이즈가 작고, 목표/마일스톤/산출물이 명확해야 한다. 재택이 효과적이려면 리더가 부지런해야 한다.

재택 모드가 활성화되면 잠자고 있는 수많은 경력단절여성(남성)들을 다시 깨울 수 있다. (그들은 여전히 유능하다!)

생각보다 정말 많은 프리랜서들이 있고, 이제 AI 기반 툴까지 발전되면서 “1인 창업자”의 전성시대가 올 것 같다. 컨설팅이든, 광고든, 사업이든

기획력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스킬을 갖춘 “PM"이, 광대한 프리랜서와 기술을 바다를 헤엄치면서, 어떻게 조합하고 활용하냐에 따라,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 그러기 위해서 (특히 전직 고위 임원분들은) 이른바 ‘가오’에 대한 미련만 버리면 된다. 내 방 내 비서 회의실에 쫙 둘러앉은 내 스탭들.. 이런거 미련 버리고,

백팩 메고 혼자 바닥도 좀 긁어보고, 십쭈구리하게 (사투리 미안합니다) 카페에서 충전콘센트 찾아가며 몇시간 버텨보기도 하고 해야 한다.


여튼, 이 덕분에,

오늘 오전은 패스트파이브 회의실에서,

오후는 여의도공원 벤치에서,

저녁은 집앞 스터디카페에서,

랩탑을 켜놓고 일하며 놀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퇴직임원 #경력단절 #재택근무 #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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