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eamHunter Nov 01. 2024

날 사랑한 간호생

내가 사랑한 가수

베란다에 찾아온 것이 기특해 빵을 몇 번 주었더니 아침마다 찾아와서 밥 내어 놓으라고 하는 뻔뻔한 녀석들


없는 돈에 시작한 유학 생활이니 하루하루가 불안했습니다. 학생 비자라는 것이 은행 잔고를 고려해서 등록금 납부한 날짜까지만 발급해 주는 식이라서 내일이라도 이민성에서 나가라면 찍소리 못하고 떠날 신세이니까요. 이렇듯 아름다운 시드니 풍경이란 저에겐 차창에 비치는 그림입니다.


제대하고 시드니에서 유학을 한다니 친구들은 아름다운 곳에서 사시사철 겨울이 없는 일상이라 부러워했지만 난생처음 알바에 자취생활에 영어로 공부까지 하려니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렇게 지지리 궁상으로 바쁘게 살면서도 20대 청춘이라 외로움은 가득했던 기억입니다.  


피가 고픈 흡혈귀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사슴이나 다른 동물 피를 빨면서 지낸다지만 끝내 인간 피를 그리워합니다. 참을 뿐입니다. 대학 졸업하고 영주권 받으면 실컷 연애할 수 있다고 주변 선배들이나 지인들이 위로를 해주지만 그런 거짓말로 내 성욕을 달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도 단 몇 개월이 아니고 5년이 넘는 시간을 그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멜번, 2015


살인을 하고 싶지 않은 흡혈귀처럼 다른 방식으로 성욕을 참아 봅니다. 인내심이 깊어서 참는 것이 아니고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서입니다. 이상하게 성욕은 그렇게 누를수록 대신 누군가를 흠모하는 마음으로 발전해 가더군요. 종교인들도 신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서 성욕을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알바하던 빵가게 맞은편에서 중국계 호주인 수진이를 보게 됩니다. 제대하고 바로 호주에 와보니 세상엔 아름다운 여인이 많더군요. 그중에서도 수진이는 단연 으뜸이라, 볼 때마다 이렇게 예쁠 수가 있나 싶고 수진이 마음을 사겠다는 욕망은 감히 품지도 못하니 그저 스치는 바람에 지켜만 보아도 행복했습니다. 단순 외모만 출중한 것이 아니고 명문 UTS 공대에서 법을 전공했으니 공부도 저보다 잘했습니다.


인격신을 믿지는 않지만 절박하다 보니 바라옵기를 어차피 수진이랑은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맘을 터고 사랑하기는 글렀기에 차선책으로 신이 평소에 즐기시는 주사위 게임 형식을 제안 합니다. 나는 인생을 다 걸고 그쪽은 손해볼 것이 전혀 없는 딜을요.


당신은 답이 명확한 수학보다는 결괏값이 애매한 확률을 좋아하시니 그 방식을 따르지요. 룰은 이렇습니다. 매 1초마다 지구상에 사는 이중 한 명을 나에겐 랜덤으로, 당신에겐 장난으로 내 눈 앞에 현신하게 하소서. 그럼 몇 억 명을 지나다 보면 나는 수진이 보겠지요. 몇 명이나 지나면 수진이가 나오려나요?



내가 아는 당신 성격상 자기에게 영광 돌리는 일이 아닌 이따위 개인 정욕을 다루는 문제에서는 늘 첫 1번으로 그런 행운을 주지는 않을 테고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수 있게 60억 번에 배치하지도 않을 테니 (당시 인구 60억) 대략 1억 명 즈음해서 수진이라는 패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그렇게만 되어도 나는 1억 초 후에 수진이를 숨지 않고 온전히 1초를 볼 수가 있습니다. 시간으로 계산하면 27,778으로 쉬지 않고 1초마다 버튼을 누르길 3년 2개월을 한다면 1초 수진이를 봅니다.


1초는 너무 짧습니다. 1초만 더 보고 싶습니다. 그럼 위 계산은 따블이 됩니다. 6년 5개월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면 2초를 봅니다. 내가 언제 1억 명에 맞춰서 수진이를 준다고 했느냐 이놈아! 하시며 3억 명을 줄 앞으로 보내버리면? 아니 10억 명이라면? 그렇담 65년을 기다려야 2초를 볼 수 있습니다. 행여 50억 명 뒤로 빼버리면 나는 신에게 받은 수명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기다리는 것에만 사용해도 볼 수 없습니다. 너무 잔인합니다. 이것이 인격신이랑 내기를 하면 얻게 되는, 그가 사랑하시는 확률 게임입니다.


기왕 줄 것도 절대 그냥 주는 법이 없으시지요. 나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합니다.


수진이는 옆에 Follow us라는 여자 옷가게에서 일을 했는데 어느 요일에 나오는지 알 수 없어 알바하러 가는 날이면 기차 안에서 오늘은 수진이가 오시는 날인가 아닌가 러시안룰렛을 돌리는 노름꾼처럼 간절하게 바랄 뿐이었습니다. 기도를 빼먹은 날도 깜짝 선물같이 등장하는 날이 있는 것으로 보아 수진이가 오는 날은 옷가게 사장 지미가 필요에 따라 발생한 것이지 누가 준 선물은 아니더군요.


목요일 쇼핑 데이에는 수진이가 주로 출몰하기에 목요일은 학교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저녁에 알바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가끔 수진이가 여직원들 대표로 우리 가게에 와서 빵이랑 커피 주문을 하기도 했는데 그 짧은 시간이 저에게는 꿈같이 아름다운 시절로, 느리게 가기를 한 번만 더 와주기를 바랐던 찰나였습니다.


수진이 영어식 표기인 Sussan만 길에서 보아도 찡하던 시절..


공부는 힘들었지만 한국에서 억지로 했던 것이랑 다르게 진심으로 매달리니 조금씩 진도가 나갔습니다. 우선 가장 쉬운 과목을 통달해 보고 그곳에서 얻은 기본 방식을 어려운 과목에도 적용하면서 요령을 찾아가고 가끔 교수나 선배에게 한 두 번 조언을 받으면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그렇다고 드라마에 나오는 식으로 호주 학생을 모두 제치고 우등생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학기가 시작하면 첫날부터 마지막 시험이 끝나는 날까지 스케줄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들어오고, 매일 내가 정한 그 범위를 통달하니, 나는 매일 성취했고 매일 작은 시험에서 합격하는 느낌으로 살았습니다. 호주 유학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든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에 매달리는 시간 외에는 머릿속에 수진이 생각뿐이었습니다.



나이가 많기에 요즘 mz들 심경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연애를 포기한다는 것이 어떤 결단일지 그 비참한 심경은 대강 압니다. 하지만 제 경우는 의식으로는 포기한다고 했지만 무의식에서는 항상 진행형이었습니다.  제 의지로 단 한 번도 성욕을 꺾지는 못했으니까요. 마치 머릿속에 연가시가 한 놈 들어있어 날 조종하듯 내 몸은 의지보다는 무의식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만약 mz들이 사실로 연애를 포기했다면 큰일입니다. 프로이트 선생님이 성욕을 강조한 이유는 성욕은 징그럽게 크기도 하거니와 다른 욕구들이랑은 다르게 우리를 사회에서 낙오하게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자칫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어 심하게는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나를 해치는 그 특별한 기질 때문입니다.


오징어 게임, 2020, 황동혁

식욕이나 수면욕 인정받고 싶은 욕구 따위는 내 몸을 잘 다듬고 보신하려는 목적으로 모이지만 성욕은 주로 날 파멸시키는 방향으로 이끌고 갑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욕구가 힘을 모아 내 몸을 지키려는 방향으로 기를 쓰고 줄을 당겨도 성욕이라는 주자 한 명을 어쩌지 못해 모두 끌려가 경기는 끝이 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제 경험상 그랬고 지금까지 모든 문학, 시, 대중가요는 그런 어리석음이랑 나약함을 한탄한 기록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습니다. 우리 mz들은 의식으로 그들 무의식 안에 있는 성욕까지 태워버린 것입니다. 지금까지 정신분석 이론이 그들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20대에 성욕을 포기한다는 것은 저로서는 도무지 상상을 하기 힘든 결정입니다. 우리 mz들 삶에 불화가 어찌 이리도 큰가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원인을 간단하게 규명하지는 못합니다. 신문에서 보기로 이것은 앞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기에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단 하루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내 20대라지만 이렇게 글로 그 시간을 복기한다는 것 자체가 그래도 이제는 추억으로 아름답게 그려보려는 시도입니다. 그때는 호주에서 대학 졸업하면 영주권 받고 이곳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았고 호주는 그 약속을 지켜주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고국은 그런 약속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인가요? 고국에 살지 않아서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희망은 착각이며 환상이 만들어주는 선물입니다. 이런 것들은 사회나 부모 같은 외부 세력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누가 줄수도 뺏을 수도 없는 것일 텐데요. 작가님들도 20대를 경험하셨지만 누가 막는다고 연애 세포가 죽고 누가 후후 분다고 불씨가 살던가요? n포세대라는 말은 어쩌면 어른들이 지어낸 환상 아닐까 싶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지금 mz들은 환상을 만들지도 꿈을 꾸지도 무의식에 욕망도 없다는 말로 저는 들리니까요. 이 논의는 그만하겠습니다.




돈이 없다 보니 늘 싼 자취방을 구하려 다녔습니다. 저뿐 아니라 대부분 친구들이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포기하지 못하는 조건은 우선 학교에서 가까워야 하고 독방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두 가지가 사실 킬러라 이것이 충족되면 방값이 싸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알게 된 케빈 선배를 통해서 학교 근처 싼 독방을 소개받습니다. 정말로 그런 방이 있느냐고 재차 물을 정도로 놀라운 조건이었습니다. 선배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좋을 수도 있다'라고 하는데 뭔 소린가 했습니다.


왕조현 누나 50세 모습이라는데..

제니

자취방을 놓은 이혼녀로 서른 초반인데 네 살짜리 아들 폴이랑 둘이 살았습니다. 선배도 마침 중국인 가정에서 자취를 했는데 그 집이랑 인연이 있는 여자라고 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케빈 선배 집에 갔는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저를 좋게 보시고 제니를 연결해 준 것입니다. 한국 학생들은 깨끗하고 말썽도 부리지 않아서 자취생으로 나름 인기가 좋았던 것도 한몫했고요. (실제 이름은 쥴리인데 제니로 바꿔서 진행하겠습니다).


케빈 선배가 이사도 도와주었기에 형이랑 둘이서 열심히 제 짐을 나르는 와중에 역시 돕겠다면 아들 폴이랑 날 반기를 제니를 처음 마주합니다. 굳이 나와서 작은 짐 따위를 옮겨주는 제니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올라가는 입꼬리에 승천하는 광대를 어쩌지 못하면서 긴 머리를 자꾸 넘기는 자태가 슬슬 불안한 기운을 저에게 주었는데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계속 무시하며 고맙다고 안 그래도 된다고 했지만 연신 내 손에서 짐을 빼앗아 자기 집을 신나게 옮기는 제니 모습에 불길함이 커져갔습니다.


첫날은 그렇게 짐 옮기고 선배에게 고맙다고 파라마타 큰길 한식당에서 저녁 사드리고 집에 돌아와 짐 정리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제 짐 중에는 간단한 역기랑 운동 기구가 몇 개 있는데 빠듯한 유학생이라 따로 체육관에 등록하지 못하니 이렇게 아쉬운 대로 방 안에서 운동을 했기 때문인데 이것이 누군가에겐 보는 것으로도 기쁨이요 점수를 딸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꾸준히 나를 기특하게 보던 제니는 뭐가 그렇게 제 방에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학교 갔다 와서 조용히 책이라도 좀 보려고 하면 똑 똑 문을 두드립니다. 처음에는 자기도 회계학을 직업학교에서 배우는 중이라며 너는 대학생이니 나보다 잘 알겠다고 웃으며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아직 1학년이라서 어차피 별로 아는 게 없다고 극구 사양을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그리고 막상 가지고 온 문제는 회계도 아니고 그냥 산수 쪼가리입니다. 자기 말로는 중국에서 대학원도 나왔고 공부를 엄청 잘했으며 그 덕에 담당 교수였던 전 남편이랑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자랑을 하던데 앞 뒤가 전혀 맞지 않는 행동입니다.


집주인이니 어쩔 수가 없어서 한 두 번은 대변차변을 맞춰 주었는데 점점 요구 사항이 심해집니다. 어차피 먹는 것 한 번에 같이 먹자고 해서 그러자고 폴이랑 셋이 저녁 먹는 날도 많았는데 혼자 먹을 때보다 어인 일인지 더 기분이 언짢고 불편했습니다. 저녁 먹는 동안 나는 중국 승무원 출신이고 미모랑 총기를 겸비한 여자라며 자랑이 심했는데 수진이를 생각하면 정말 비교하기도 민망했습니다.




제니 때문에 집에서 공부하기 힘들어지자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더하고 옵니다. 학교 수업 마치지고 도서관 닫을 때까지 버티다 가는 상황이니 다른 학생들하고도 오며 가며 보는 경우가 많아졌고요. 그 시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학교 도서관은 너무 쾌적하게 잘 되어 있어서 나중에는 제니가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편했습니다.


이 당시 작은 기쁨이라면 방 안에서 혼자 역기 드는 것이랑 자전거로 등하굣길에 듣는 음악이었습니다. 주로 유재하나 박학기 같은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런 부류 노래는 사랑하면서 생긴 아픔이나 절절함이 내용인데 짝사랑만 해온 관계로 그런 감정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니 노래 선율이 주는 차분한 우울함 말고는 작가가 전달하려는 절절함을 문자 수준에서만 이해한다는 비참함입니다.


그렇게 주 7일을 도서관 여는 시간부터 닫을 때까지 도서관 서기는 퇴근하고 바뀔지언정 나는 도서관을 지켰습니다. 같이 공부하던 중국 친구들도 너 참 지독하다고 칭찬식으로 말을 건넸는데 뿌듯했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도서관 입구에 있는 큰 테이블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앉아 있는 것이 보입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분이랑 앳된 친구로 누나는 유학생이고 어린 친구는 이민자입니다.


지나가는 생면부지인 저를 보자 손을 붙들고 누나는 하소연을 합니다. 한국 분이시죠? 혹시 간호 공부하세요? 저 이번에 들어온 1학년 첫 학기인데 어려워 죽겠어요. 살려 주세요 ㅠㅠ 하면서 엉엉 우시는데 죄송하지만 저는 회계학과라 어찌 도와드릴 여건이 못됩니다. 대신 호주 대학에서 공부하는 일반 구조를 설명해 주고 교수가 원하는 바를 강의 계획서에서 파악하는 방법 정도를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는 누이를 한 참을 달래주고 하소연을 들어주자 곁에 있던 작은 친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영어가 편한 친구이니 아무래도 우리보다 공부가 수월하여 누나처럼 절박한 상황은 아니었고 둘은 친해 보여서 그날 이후 우리 셋은 도서관에서 보면 인사하고 웃고 지내게 됩니다. 미래에서 온 소식통에 따르면 누나도 유학 생활 잘 마치고 지금은 호주 간호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말괄량이 삐삐

그날 이후 간호대학 그 꼬맹이는 제가 공부하는 책상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자주 나타납니다. 오빠 무슨 시험 있어? 지난 시험 잘 봤어? 밥은 먹었어? 오존층이 얇은 호주에서 태어나 얼굴에 주근깨가 말괄양이 삐삐처럼 돗은 녀석인데 얘도 지 공부는 안 하고 뭐가 그리도 나한테 호기심이 많습니다.


이상하게 여자들은 우리가 대면 대면하게 마주하고 귀찮아하면 죽어라고 다가오고 내가 다가가면 싫증을 내십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이때는 그러했으니 삐삐도 제니도 이상하게 똥줄이 더욱 타들어가는 악순환이 저에게 반복됩니다.


"경영 회계 시험이야. 도시락 먹었어. 넌 어디서 공부하냐?"


어쩔 수 없어 답을 하면 하나도 웃긴 것이 없는데 빵 터져서 좋다고 웃으며 가난한 유학생 오빠 행색이 늘 궁금하다는 말투입니다. 나중에는 할 이야기가 없으니까 자기는 어린 남동생이 있는데 너무 귀엽다고 하다가 우리 엄마 정말 미인이셔~ 별라 별 쓸데없는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아, 그러시구나.. 미인이시구나..


나중에 누이를 통해서 들었나, 삐삐 어머니는 어려서 돌아가셨고 지금은 새엄마인데 다행히 사이도 좋고 새로 태어난 남동생도 잘 챙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 언젠가는 진짜로 엄마랑 동생을 데리고 도서관에 왔습니다.


"엄마, 이 오빠가 내가 말한 공부 열심히 하는 오빠야^^"

"안녕하세요? 삐삐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에.. 에.. 안녕하세요.."


인사 말고는 뭐라고 딱히 드릴 말씀이 없어서 엉거주춤하다가 분위가 영 이상한 것을 아신 어머님은 남동생이랑 도서관 구경 하신다고 갔고 삐삐는 '어때 우리 엄마 진짜 미인이지?' 하는데 우리 엄마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고 확 배틀을 할까 하다가 '마, 댔다. 그래 니가 이겼다'하고 말았습니다.




삐삐 이야기를 하면서 제니를 잊어 보려 했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해결하고 가야 합니다. 집에 오면 또 날 웃는 얼굴로 기다리는 여자가 있지만 막상 당하는 20대 청년은 생지옥입니다.


마음속에는 수진이 집에는 제니 학교에는 삐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대사가 맞는 게 없습니다. 인생이 심하게 꼬여갑니다. 그러다 제니는 큰 맘을 먹습니다.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될 맘을 먹은 것이지요.


연예의 기술, 한수아


유독 불안하게 샤워 소리가 크게 들리던 저녁, 폴은 자는지 재웠는지 안방이 조용합니다. 슬픈 예감은 늘 맞는 다더니 등에서 식은땀이 나도록 불안한 기운이 방으로 엄습합니다. 그리고 똑 똑! 제니입니다. 그냥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잔다고 할 수도 없고 미칠 지경인데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방문이 열립니다. 아무리 집주인이라지만 자취하는 총각 방문을 이렇게 맘대로 여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총각이 스스로 위로라도 하고 있으면 어쩌려고 이 사람이 어쩌자고 이러는지... 참 내...


진심 짜증 나는 얼굴로 "What!" 하려 고개를 돌리는데 이건 또 뭐야! 하얀 란제리에 하의 실종으로 돼도 안는 회계학 책을 들고 서있습니다. 또 물어볼 것이 생겼다는데 작가님들이 보시기에도 이게 과연 공부를 배울 사람 자세입니까? 이런 태도로 무슨 공부를 하겠다는 건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누르며 오늘은 뭐가 문제냐고 물었습니다.


자신도 이건 창피한지 얼른 내 책상 옆으로 와서 무릎 쏴 자세를 취하더니 내 눈을 보지도 못하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이 문제는 이렇고 저 문제는 저렇고 혼자 재잘재잘 떠드는데 책상에 앉은자리에서 내려다보니 긴 머리에서는 여자 샴푸 냄새가 진동을 하며 올라오고 거의 다 벗다 시피한 하체가 그대로 보였습니다. 순간 고민 많이 했습니다.


내 왼 손이 슬며시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지금껏 살면서 만져본 적 없는 여자 어깨를 향해 내려갑니다. 여기서 내가 이 어깨를 잡으면 이 여자는 곧장 내게 미끈한 혀를 넣으면서 알몸으로 변신할 것입니다. 그럼 나라는 실재는 폴에게 '친구'에서 '아빠'로 기표가 미끄러져 갈 것입니다. 지금 자고 있더라도 바로 옆 침대에서 격렬하게 우리가 엉겨 붙어서 서로 체액을 나누며 교성을 쏟다 보면 깨어나 이 장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호주는 방문에 잠그는 기능도 없기에 백퍼입니다. 그러자 폴이 나에게 '爸爸빠빠'하며 달려오는 환상이 눈에 보이고 내 손은 다시 하늘로 올라가 뒤를 돌아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옵니다.


20대였던 나에게 폴 아버지가 되라는 농담이라도 무리였습니다. 나중에 이 일로 불같이 화를 내며 케빈 선배에게 따지자 '너는 일부러 그러는 거냐? 아니면 지금 뭐 자랑하는 거냐? 이상한 새끼네..' 하면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놓아서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형도 영주권 받고 코리아 타운 어디서 전화기 대리점 한다는 소식이 끝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자 이 순간이 위험했습니다. 그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습니다.


"Get Out!!!! "


강하게 말하며 화를 내자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는지 허겁지겁 아랫도리를 여미며 후다닥 제니는 방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씩씩거리며 20분 정도 분을 삭이고는 제니가 있는 안방 문을 두들겼습니다. 방 안에서 나오기 싫다는 제니여서, 폴도 있는데 더 이상 궁지로 몰고 싶지 않아, 그날은 그렇게 지났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폴이 없는 시간에 제니 방을 다시 두들겼습니다. 어제보다는 서로가 좀 침착해졌으나 나는 단호하게 다시는 상호 준비된 시간에 허락 없이 내 방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조건이랑 어제 행동이 부적절했다는 것을 사죄한다는 내용에 서명하라고 종이를 들이밀었지만 끝내 서약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싸움이 커지면 당장 길거리에 나 앉아야 하는 것은 제니가 아니라 저이기에 그 이상은 강하게 밀어붙일 수도 없고 애하나 데리고 혼자 사는 여자가 측은한 마음도 들어서 이 정도면 제니도 앗 뜨거라 싶을 테니 마무리하고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만약 제니가 생각을 바뀌어서 내게 강제 추행을 당했다고 떠들기 시작하면 이건 누가 봐도 제니가 유리한 게임이었습니다. 우선 증인이 없고 그나마 있는 폴도 나보다는 제니 말을 들을 테니 사태가 어떻게 바뀔지 몰랐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도 이제는 제니를 달래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갈 시간을 벌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제니는 그런 쪽으로 상황을 몰지 않았고 나도 상냥하게 대하면서 화해하는 분위기로 전환이 되어 그냥 대충 여기서 살까 하는 맘도 들었습니다. 이런 조건에 이런 가격인 방을 찾는다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며칠이 지났나 학교 수업이 열한 시에 있어 늦잠을 잤습니다. 제니는 폴이랑 나갔는지 집에는 아무도 없는데 초인종이 울립니다. 자다 깬 모습으로 눈 비비며 나가 문을 열어보니 잘생긴 키 큰 중국 신사가 한 명 문 밖에서 몹시 놀란 모습으로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Hi, my name is Mark. Jenny's ex-husband."

안녕하시오. 나는 마크라고 제니 전 남편이오.


지금 제니가 없다고 얼떨결에 답변하니 그럼 다음에 다시 오겠다며 도망치듯 갔습니다. 무슨 급한 일인지 연락도 하지 않고 이렇게 오다니 이상했지만 순간 저 아저씨 눈에는 어떤 얼빠진 한국 유학생 놈이 제니 남친이되어, 밤새 젊은 팔루스를 제니 가랑이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며, 살아있는 딜도 역할을 했을 거라 오해할 것이 뻔했습니다.그렇게 문을 닫고 바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곳을 나가야 한다.빨리 다른 방을 찾아야 한다.


그때 나에게 수진이라는 환상이 없었다면 나는 제니에게 중국식 섹스를 배웠을 지도 모릅니다. 20대에 섹스를 마구 하지 못해 조루에 걸렸다고 스스로 생각하니 어쩌면 그 기회를 날려 버린 것이죠. 그렇다고 그때 제니랑 치료에 전념했다면 지금은 다른 후회를 하고 있으려나요? 깊이 생각하지 맙시다. 케빈 선배 말처럼 그냥 공짜 섹스나 즐기다 어인 일로 싸우거나 더 좋은 기회가 되면 그때 그 집을 나왔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았다 하더라도 뭐가 나쁜가요? 이 글을 읽는 모든 20대들에게도 나는 못했으니 너희도 하지 말고 30을 맞이하라고 훈장질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 각자 삶이 있는 것이죠.




11월 1일입니다. 가수 유재하가 사망한 날이라고 하네요. 유재하가 유명했지만 당대에 제가 그 노래를 즐기기에는 살짝 시대차가 있어서 유학을 온 2000년 초반 유학생 시절에 그 노래를 진지하게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유재하 노래에는 나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는 기표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 보면 기표에 들어있는 기의는 사회 약속을 통해 억지로 넣은 것이지만 그 안에는 자연스레 녹아있는 추억이란 것도 분명 있습니다. 유재하 선생 노래를 하루 종일 흥얼거리다 이렇게 <날 사랑한 시리즈>로 마무리합니다. 유재하 2집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1집에서 다 하지 못한 그 젊은 천재 두 번째 노래를 상상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듯 정말로 우리에게 혼魂이 있어 다음 세상에 그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유 선생은 그곳에서 그토록 만들고 싶어 했던 유재하 2집을 완성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이 상상만으로도 비루했던 내 오늘 하루가 행복해집니다. 그렇다면, 정말 그런 모든 일들이 있다면 생을 다한다는 것은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닌 너무도 낭만 넘치는 일이 되겠습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시드니에서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 사랑하기 때문에, 1987,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는 유재하 첫 번째 음반이자 유작이다. 1987년 서울음반에서 발매했고, '음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심의에서 반려 되었으며, 평론으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다. 클래식 음악에서 쓰는 화성학에다 갖가지 악기들 음색을 터득한 유재하는 기존 가요랑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노래를 만들었기에 관계자들조차도 '노래가 이상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작곡한 노래들은 본인 실제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기에 더욱 애절하고 우리 대중음악 처음으로 작곡, 작사, 편곡을 혼자 완전히 일궈낸 기념비같은 성과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2위(182점, 41명 추천)로 선정되었다 (1위는 들국화).


유재하 아버지 유일청은 아들이 남긴 1집 앨범 수익금과 사재를 출연하여 유재하 장학 재단을 설립하고 1989년 유재하같은 싱어송라이터를 발굴하기 위해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조규찬, 방시혁, 루시드폴, 유희열, 정지찬, 김연우, 스윗소로우 등이 수상자로 유명하며 영향을 받은 가수나 작곡가로는 조용필, 이문세, 김종진, 김현식, 한영애, 김형석, 신승훈, 윤종신, 김동률, 에픽하이, 타블로 등 그 영향을 받지 않은 이를 찾는 것이 빠르다.



유재하가 요절하여 한국 발라드 음악은 100년 퇴보했다.
- 김동률



https://youtu.be/1uG5u_YKvhE?si=mlIMqvVUgy7V6e7Y


추신:

이것으로 언젠가 쓴다 쓴다하던 유재하를 위한 추모글을 제 방식으로 써보았습니다. 만약 <날 사랑한> 시리즈 나머지를 모아서 두 번째 <사랑이라는 착각>을 출간하게 된다면 이 글을 마지막으로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부제로 썼던 "내가 사랑한 가수"를 제목으로하고 "날 사랑한 간호생"을 부제로 하겠습니다. 이만.

작가의 이전글 부모가 물려주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