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eamHunter Aug 11. 2023

책 시집보내기

오늘과 내일

2007년 경입니다. 그 당시 호주동아에 실리는 “오늘과 내일”이라는 사설을 좋아했습니다. 동아일보 편집 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쓰는 사설란인데 그중에서도 “오명철” 편집 부국장이 쓰는 글은 일부러 찾아가며 읽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달필이시고 이름 그대로 명철한 논리와 지혜가 번뜩이는 글들을 쓰십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돌아가면서 쓴 칼럼인지라 매주 볼 수는 없고 차례가 와야 본다는 것인데, 정확히 언제 국장님 차례일지 몰랐다가 문득 본 사설에서 부장님 글이 떠있으면 느꼈던 반가움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다 2007년 5월 3일에 “책과의 이별”이라는 글이 올랐는데 너무도 좋았고 감명을 깊이 받아 부장님께 팬레터를 보냈습니다. 그리곤 국장님께 직접 답변도 주셔서 너무 감사했고요.


그때 국장님 글이랑 나눈 편지를 여기에 올립니다.



오명철

책과의 이별

(출처: https://www.donga.com/news/amp/all/20070503/8437517/9)


장서라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한때  5,000여 권의 책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을 다 읽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야말로 대단한 장서가였던 고교 시절 국어선생님의  영향으로 10대 중반부터 한 권 두 권 모으기 시작한 책이 대학시절 2,000여 권에 이르더니, 신문사에 들어와 문화부 기자로  일하면서 5,000여 권으로 늘어난 것이다. 


젊은 시절 재산목록 1호 

젊어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틈날 때마다 헌책방에 들러 책을 구입했다. 


교통비마저 털어 넣어 ‘희귀본’을 구입했을 때는 먼 길을 걸어오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어쩌다 저자 친필 서명본을 손에 넣게 됐을 때는 마치 저자를 직접 대한 듯 기뻤다. 가난했지만 벽돌에 널빤지를 얹거나 조립식 철제 서가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부자라고 생각했다. 


수시로 이사를 다니면서도 어떻게든 책만은 챙겼다.  나로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목록 1호였다. 사회과학도였지만 세상을 바꾸는 책보다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책을 많이 읽었다. 명절이면 한복으로 갈아입고 시조집을 낭랑하게 읽어 내리는 호사를 부리기도 했다. 


훗날 내 집을 갖게 되면 제대로 된 서재를 꾸려 안락의자에 앉아 책을 읽겠다는 소망도 품고 있었다. 


언론인이 된 후에는 저자나 출판사가 보내 준 책들이 주종이 됐다. 아무래도 내 돈으로 직접 책을 사는 것보다는 애정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력이 담긴 책은 저자의 노고를 생각해 서문이라도 읽었다. 저자가 친필 사인을 적어 보내 준 책은 더욱 소중하게 대했다. 


내가 기사로 쓴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설 때는 뿌듯한 마음이 들곤 했다. 어쩌다 서가에서 고교나 대학시절 읽은 책을 뒤적이면서 밑줄이 그어진 대목을 읽을 때에는 ‘지금 읽어도 잘 모르겠는데 이 어려운 대목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하며 스스로 대견해하곤 했다. 감수성은 때로 지성을 능가하는 것 같다. 


40대에  내 집을 마련하긴 했지만 서재를 꾸미진 못했다. 안방과 베란다에 분산해 책을 나눠 놓으니 책에 대한 애정도 반으로 나뉘는  듯했다. 특히 베란다에 처박힌 헌책들은 잊힌 여인처럼 내 손길에서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직업적 특성이라고는 하지만 책보다는  신문과 TV 뉴스를 보는 시간이 훨씬 더 늘어났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넓은 집으로 옮겨가 양지바른 쪽에 서재를 만들어 놓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독서로 여생을 보내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50대에 뜻하지 않게 이사를 하면서 이 꿈마저 포기해야 했다. 집을 넓혀서 이사를 갈 형편이 못되다 보니 이삿짐에서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인생에 두세 번 읽는 책이 몇 권이나 되느냐. 공연히 집착하지 말고  놓아버리라”는 선배의 말씀도 가슴에 와닿았다. 


‘나눔’이 책에 대한 진정한 예의 

고민 끝에 전공 관련 도서를 비롯해 절반을 모교 출신학과에 보냈다.  “언론인이 되기로 마음먹은 한 젊은이가 30년가량 읽고 간직해 온 책이니 후배들에게 언론에 대한 영감이라도 심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당부와 함께. 책을 모교에 보내면서 오랜 연인과 헤어지듯 말로 다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최근 몇 년 사이 관심을 갖고 모은 수백 권은 평소 잘 아는 선배가 경영하는 출판사로 보냈다. 선배는 수시로 와서 둘러보고, 필요할 때는 언제든 가져가도 좋다고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보낸 책들은 시집간 딸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아직 집과 사무실에  1000여 권의 책이 있다. 주로 내 인생과 글쓰기에 영향을 주신 분들의 저서와 친필 사인이 담긴 책들이다. 이 책들과는 정말  헤어지고 싶지 않다. 요즘은 책을 서가에 두기보다는 그 책을 나보다 더 필요로 하는 ‘임자’ 들을 찾아주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그것이 책에 대한 진정한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오명철 편집국 부국장




"호주에서 온 편지"


오명철 부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호주에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 (이때는 나도 청년이었음).

혼자 유학을 와서 공부하고 정착한 유학생 출신 이민자라 이곳 호주에는 부모도 없고 친구도 별로 없이 사는데요, 늘 고국이 그립고 고국에 있을 때는 몰랐던 작은 것들 까지도 다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외국 생활이라 그런가 가족과 함께 있는 아이들도, 언젠가 보았던 이민자 가정 조그만 어린아이들의 눈에서도,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드리워 졌있던 기억이 납니다.


고국에서는 부장님 글을 못 보았는데요. 이곳에서 호주동아를 통해 몇 번 보았고 이제는 열열한 팬이 되어서 꼭 오려놓고, 또 지난 글들은 이렇게 동아 사이트를 방문해서 읽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저와 함께 있는 아우가 언젠가는 무척이나 제 속을 썩여서 형 노릇하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었나? 

그럼 가장이 되는 것은 얼마나 큰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본 것이  “꽃 동네” 이야기입니다.


그 글을 통해, 겨우 아우 하나로 이렇게 실망하고 좌절하는가, 오히려 제 자신이 부끄러웠고 세상이 이렇게 크고 주님의 사랑이 이렇게 깊구나 하는 것도 새삼 느꼈습니다.(이 당시는 저도 기독교인이라..-_-;)


그러니 비록 뵈온 적도 없고 너무 멀리 떨어져서 같은 땅에 살지도 못하지만,  글로서 제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니, 부장님은 제겐 선생님같이 느껴집니다. 지난주에 본 “책과의 이별” 정말 재미있고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마지막에 책들을 떠나보내는 심정이 꼭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마음 같다고 하셨는데 저는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이 어떤 것이구나 막연히 느낄 수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이 너무 좋아 계속 읽다가 불연 느낀 것인데요. 글은 따뜻하고 포근한데 제목은 좀 딱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사랑했던 책이랑 헤어지기.” 아니면


“책 시집보내기”


이런 제목이 더 푸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생님 글 너무 사랑하고요, 늘 반짝이고 투명한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선생님 항상 건강하십시오.


바쁘신 시간에 수 없이 많이 쏟아질 독자들 편지까지, 보잘것없는 이런 작은 편지 하나까지 신경 써서 읽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만 총총.


호주 시드니에서..




답장 : 호주에서 온 편지.

2007년 5월 08일 화요일, 오후 13시 55분 36초 +0900


먼 곳에서 보내주신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제 글을 오래 읽어주셨다니 더욱 고맙고요.

신문 한 구석에서 약간의 감동과 위안을 주고 싶어 쓴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책 시집보내기' 같은 제목은 참 감각적인 제목이네요. 그런 제목을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직 호주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오래전 가셔서 회계사로 활동하신다니 저간의 고생과 노고가 능히 짐작이 됩니다. 


아무쪼록 더욱 번창하시고,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명철 올림




16년 전 일이니 부장님은 이미 정년을 하셨을 것이고 답장을 받고 기뻐하던 청년은 그때 부장님 나이가 되었네요. 16년 후에 누군가 나랑 이야기 나눈 것을 이렇게 기억해 줄 수 있을까 생각도 해보고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다시 16년 전 청년으로 돌아가는 벅찬 기쁨이 서려있는 글이 하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모두들 사랑하며 이만 총총

2023년 시드니 겨울

이전 05화 영화 속 성경 이야기 - 죗값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