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기업 레이오프를 통해 나의 꿈은 이루어진다(?)
평소와 별로 다를 것 없이 수요일이 시작 됐다.
분주하게 딸들을 준비시켜서 어린이집에 보낸 후, 커피 한 잔 내리면서 생각했다.
'아, 정말 일 하기 싫은 하루다.'
사실 한 달 전에 잠시 다른 팀으로 파견을 오게 되었는데, 이 팀은 매니저, 개발자, 기획자 세 영역에서 소통이 하나도 되지 않는 팀이었다. 매 분기마다 제품이 지연되는 것은 말할 것도 아니었고, 1년 동안 기획자를 네 번이나 갈아치울 만큼 소문이 자자했다.
사람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오랫동안 했던 탓에, 디렉터도 나를 보낼 때 내심 미안하다는 식의 표현을 하면서 보냈는데, 막상 팀에 들어가니 업무 분배에 대한 계획도 없었고, 일을 좀 나눠달라 하면 다들 밥그릇 빼앗는다는 듯이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나는 상황을 핑계삼을 계획이 없었다.
12년 넘는 직장생활 속에서 이런 상황들이 생소한 것도 아니고,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이면 어느 정도의 인정 또한 따라온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 달 넘게 매일 이런 상황을 마주하다 보니 그냥 아침부터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 정말 일하기 싫은 하루다.'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분위기도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회사 분위기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세 번의 레이오프를 지나고 나니 같이 일하면서 즐거웠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없어졌고, 그냥 일이나 하자 이런 분위기가 된 지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어쨌든 11시가 되어 매니저와 면담을 하러 카메라를 켜고 미팅룸에 들어갔는데, 웬일인지 디렉터랑 같이 있었다.
농담스럽게 "미팅 제목은 1:1이라고 쓰여있는데 왜 2:1 이야 오늘은?"이라고 너스레를 쳤는데,
둘 다 썩 반응이 좋지 않았다.
"이번에 회사에서 레이오프를 한번 더 하게 되었어. 이번에는 미안하지만 너도 포함되어 있어."
"아, 그 말로만 듣던 게 이렇게 되는 거였구나" 하면서 그냥 씩 웃어줬다.
솔직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터라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냥 잘 웃으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디렉터와 매니저는 연거푸 미안하다 하면서 내가 대상자가 된 이유는 업무 능력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재차 말했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나도 내가 여기서 어떤 기여했는지 잘 아니까. 그동안 같이 일할 수 있어서 고마웠어. 팀원들한테도 그렇게 전해주면 고맙겠어."
지금 모가지가 날아간다 하더라도, 당당하게 나가고 싶었던 걸까.
정말 그 팀에서 일하기 싫었던 나의 하루를 하늘이 알아본 걸까.
나도 그렇게 회사에서 잘렸다.
그리고 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커피도 새로 내려서 여유롭게 마셨고, 저녁에나 읽던 책을 펴 들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동료들에게서 슬슬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This is bullshit"이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오긴 했지만
그냥 내 마음은 평온했다.
"돈 주고 나가 달라는데 뭐."
"괜찮아?"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은 올해 초부터 사업 준비를 해왔고, 이런 날을 대비해서 6개월치 생활비도 현금으로 저축해 놓은 상태다.
틈틈이 밤에 준비했던 사업 아이템들로 고객을 한두 명 정도 모으기 시작하면
연말에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이었다.
억대연봉은 처음 받을 때는 좋았고, 처음 일했던 동료들도 너무 좋았다.
개발자로 많이 성장했기도 했지만
나는 개발자로 평생을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세상에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잘 활용해서
나만의 방법으로 사업을 하려고 한다.
한 달이 조금 넘은 이 시점에
당시의 기억이 무뎌지기 전에 그냥 글로 남겨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