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말하셨지, 니가 직접 해봐라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까지만 상상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무리 괴상한 외계인을 그려보려 해도, 끝내 인간을 닮은 무언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1979)에서 외계 생물의 울음소리는 돼지 비명과 코끼리 소리를 합성해 만들었다고 한다. 아마 감독도 자기가 아는 범위 안에서 가장 낯선 소리를 조합하고자 했을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한 번도 내 삶과 교집합이 없었던 고객의 문제를 풀어야 할 때가 있다.
같은 현생 인류(?)라는 점에서 에일리언의 목소리를 상상하는 것보다야 쉬운 일이겠지만, 전혀 모르는 페르소나를 이해하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니. 헛다리를 짚을까 이만저만 불안한 게 아니다.
처음엔 내 안에서 가장 비슷한 경험을 끄집어낸다. 경쟁사나 레퍼런스를 보며 몰입해 본다. 고작 이 정도로는 영 부족하다. 유저 행동 데이터든 외부 데이터든, 긁어모을 수 있는 건 다 긁어모아서 들여다본다.
여전히 선명하지 않다.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을 때, 그다음으로 좋은 건 직접 고객 인터뷰를 하거나 현장에 가서 쉐도잉을 하는 것이다. 가장 무난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건, 내가 그 페르소나가 될 기회를 얻는 것이다. 내가 그 고객이 되는 순간, 문제풀이의 속도와 정확도는 배로 빨라지니까.
작년쯤이었나. 대충 두루뭉술하게는 알겠는데, 이대로 프로젝트를 굴리면 산으로 갈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 적이 있다. 눈물을 머금고 용돈에서 비상금을 뚝 떼어, 프로젝트와 관련된 걸 내돈내산으로 직접 해봤다. 돈 나가는 순간에는 눈물이 좀 났지만. 아이고, 직접 해봐야 결국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
당연히 살면서 모든 경험을 다 해볼 순 없는 노릇이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키즈 모델의 마음을 알기 어려울 것이고, 지금처럼 장롱면허인 채로는 매주 교외로 나가는 캠핑족들의 열정에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해결해 가는 내 나름의 방법이라면, 어떤 문제를 풀든 기초가 되는 주춧돌은 다행히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메시지는 단순하게. 기능은 누구나 바로 쓸 수 있도록 무조건 쉽게." 같은 원칙들 말이다. 이걸 단단히 세워둬야 그 위에 뭘 올리든 무너지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기초 체력 같달까.
그리고 평소에 직간접 경험을 착실히 쌓아두는 것. 나는 루틴을 너무 사랑하는 루틴 인간이지만, 다행히 호기심은 많은 편이라 새로운 게 궁금할 땐 귀찮아도 직진한다. 새로운 가게를 가본다든가, 친구가 뭘 한다고 하면 따라서 해본다든가, 낯선 모임에도 나가본다든가.
억지로 할 필요는 없지만, 기회가 생겼을 때 착실히 적립해 두면 언젠가 쓰이는 날이 오더라. 꼭 일이 아니더라도, 삶이 풍성해진다. 모르는 사람의 문제를 푸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런데 가끔, 쌓아둔 경험 중 하나가 불쑥 손을 들 때가 있다. 그 순간이 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