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는 낙법이 반이라던데, 인생도 그런가
지난번에는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까지만 상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썼다.
얼마 전 읽었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에 나온 두 인물이 이 주제에서 너무 대조적이라, 이번에는 그 이야기의 번외를 써본다.
존 스튜어트 밀과 알프레드 마셜.
밀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그 공리주의를 다듬은 사람이고, 마셜은 경제 교과서에 나오는 '수요-공급 곡선'을 체계화한 사람이다. 19세기를 대표하는 경제 사상가인 두 사람은 뛰어난 여성 지식인을 배우자로 두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밀에게는 해리엇 테일러가, 마셜에게는 메리 페일리가 있었다.
19세기에 남성으로 태어난 밀과 마셜이 당시 여성의 삶을 깊이 경험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상상해 본 적조차 없는, 입어보지 않은 옷이었겠지.
흥미롭게도 이 두 사람은 배우자를 만난 뒤 정반대 방향으로 변했다.
밀은 해리엇을 만나고 열렸다.
해리엇은 밀을 만나기 전부터 독립적인 사상가였다. 밀이 "여성도 남성과 같은 이성적 존재이므로 같은 권리를 줘야 한다"라고 주장할 때, 해리엇은 한 발 더 나갔다. 밀은 혼자서는 절대 보지 못했을 것들을 해리엇과 교류하며 보게 됐다. 명저 <자유론>을 해리엇과 함께 구상했고, "우리 둘의 공동 작품"이라고 헌정했다. 당시 영국법에서는 결혼하면 아내의 재산이 자동으로 남편에게 귀속됐는데, 밀은 해리엇과 결혼하면서 이 권리를 공식으로 포기하는 문서까지 썼다.
그런데 마셜은 정반대였다.
처음에는 오히려 열려 있었다. 메리 페일리는 마셜이 시험관으로 있던 케임브리지 시험에서 우등 성적을 받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위를 받지 못했다. 마셜은 그런 메리에게 강의를 권유했다. 결혼 서약에서 아내의 "복종" 문구를 뺐고, 함께 책까지 썼다. 그런데 단독 저작으로 경제학의 1인자가 된 뒤, 공저를 폐기했다. 나중에는 여성 학위 수여를 반대하는 캠페인까지 주도했다. 자신의 부인인 메리가 바로 그 차별의 당사자였는데.
더 앞선 시대를 살았던 밀은 변화했는데, 마셜은 오히려 변화하지 않은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공저를 폐기할 이유까진 없지 않나? 찾아봐도 딱히 마셜의 행동이 왜 변화했는지 구체적으로 서술된 기록은 없었다. 내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그전까지 인생의 궤적에 자신이 부서져본 적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그들의 변화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성공이 끊기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면, 자신을 의심할 이유도 없으니까.
밀은 정신적으로 한번 무너진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 아래 자라다가 스무 살 무렵 자기 안에 감정이 말라버렸다는 걸 깨닫고 몇 달간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 반대로 마셜은 한 번도 부서진 적이 없다. 케임브리지 수학 시험 2등, 펠로우, 교수, 그리고 경제학의 1인자.
틀려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기 세계가 맞다는 확신이 계속 강화된다. 그러면 다른 세계를 상상할 이유가 사라진다.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 같다.
낯선 곳에서 헤매고, 모르는 걸 시도하다 보면 종종 틀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내 그게 별일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세계가 넓어진다. 말하자면 안전하게 낙법을 배우는 셈이다. 진짜 중요한 순간에 내가 모르는 세계가 눈앞에 왔을 때, 겁먹지 않고 손을 뻗을 수 있는 힘. 미리 깨져본 사람에게만 남는 힘이다.
그래서 나도, 미리미리 낙법부터 좀 더 배워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