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상황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

by 최환규

퇴직자의 어려움을 처음들은 친구들은 진심으로 위로하고 응원했다. 하지만 퇴직자로부터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나 메시지는 늘 똑같은 병원 소식과 건강 악화 그리고 병원비에 대한 한탄이었다. 친구들은 “빨리 회복해라”라는 말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꼈고, 전화를 받을 때마다 덩달아 기분까지 가라앉는 것을 경험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친구들은 퇴직자로부터 연락이 올 때마다 회피하기 시작했다. 문자 메시지에는 단답형으로만 답했고, 만나자는 연락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하는 횟수가 늘어갔다. 퇴직자는 자신이 친구들로부터 외면당한다고 느끼며 친구들에게 섭섭함을 느끼지만, 친구들의 처지에서는 자신의 심리적 안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병은 알려야 낫는다’라는 속담은 문제를 인지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주변에 알려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라는 지혜를 담고 있다. 이 속담은 명확한 원인과 치료법이 있는 육체적 질병이나 주변의 도움으로 해결 가능한 명확한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효한 진리이다. 의사에게 병을 알려야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주변 사람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면 실질적인 지원을 받아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속담은 퇴직자가 겪는 장기간 입원이나 돈에 쪼들리거나 혹은 이혼과 같은 복합적이고 만성적인 어려움에 그대로 적용할 때 역효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퇴직자는 잃어버린 사회적 지위, 경제적 불안정 그리고 무엇보다 자아 상실감과 사회적 고립감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외부에 알림으로써 위로, 공감, 인정 때로는 실질적인 도움을 갈망한다. 직장에서 ‘나는 괜찮다’라는 갑옷을 입고 살아왔기에 퇴직 후에는 비로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인간적인 유대를 갈구한다. 하지만 퇴직자의 간절함은 주변 사람들의 공감 능력 한계, 심리적 부담감 그리고 자기 보호 본능과 부딪히면서 ‘외면이라는 벽’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공감 피로와 심리적 부담


인간관계는 주고받음의 미묘한 균형으로 이루어진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부정적인 상황과 감정만을 쏟아내는 것은 듣는 이에게 상당한 피로감을 안겨준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공감 능력은 무한한 것이 아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처음에는 진심으로 퇴직자의 상황을 걱정하고 위로하지만, 오랫동안 부정적인 소식을 반복적으로 듣는다면, 특히 그 소식이 암, 이혼이나 가난처럼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지인들 역시 감정적으로 소진되기 시작한다. 퇴직자로 인한 지인들의 지속적인 감정 노동은 지인들에게도 상당한 피로감을 유발하며, 이러한 공감 피로는 결국 지지했던 관계에서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

많은 지인은 퇴직자의 심각한 재정 문제나 장기적인 입원 문제에 대해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외에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은 지인들에게도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지인들은 무력감을 느끼는 기간이 오래되면 더 이상 퇴직자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연락을 피하게 된다. ‘나는 도와줄 방법이 없는데 계속 힘든 얘기만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부담감이 쌓이기 때문이다.

자기 보호 심리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정신 건강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다. 상대와의 관계에서 균형이 깨지면 자기 보호 심리가 발동하게 된다.


사람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의 전염을 피하려는 본능이 있다. 계속해서 퇴직자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지인은 자신의 기분과 에너지까지 부정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퇴직자와의 만남이나 대화를 꺼린다. ‘만나고 나면 내가 너무 지쳐’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레 만남을 줄이거나 연락을 끊게 되는 것이다.


우정이나 지인 관계는 주로 서로의 관심, 즐거움, 정보 공유를 바탕으로 한다. 만약 한쪽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고통만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관계의 균형이 깨진다. 친구라면 친구는 자신이 간병인이나 심리 상담사 혹은 정신적 쓰레기통의 역할을 하는 듯한 생각이 들면서 부담감을 느낀다. 이와 같은 변화를 원치 않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인 이미지 각인과 자존감 하락

반복적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널리 알리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퇴직자 본인의 자존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변 사람들은 처음에는 동정심을 느끼지만, 해결 기미 없이 계속 어려움을 토로하는 모습에서 ‘늘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 ‘스스로 일어설 의지가 없는 사람’, 심지어 ‘피해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 부정적인 인식은 과거의 유능한 전문가 이미지 대신 불행한 피해자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자신의 어려움을 끊임없이 말하는 퇴직자는 스스로를 피해자 혹은 불행한 사람이라는 틀 안에 가두게 된다. 이런 선택은 부정 편향을 강화하여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만들고, 문제 해결을 위한 주체적인 노력을 방해하면서 자존감을 더욱 떨어뜨리고 무기력감을 심화시킨다.


실질적인 도움 능력 부족과 기대의 좌절

불특정 다수의 지인은 퇴직자의 심각한 재정적 문제나 장기적인 입원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물리적, 재정적 한계가 명확하다. 주변에 널리 알리면 누군가는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는 대개 실망감으로 이어진다. 지인 대부분은 “힘내라", “걱정 마라"와 같은 말이나 작은 격려 외에는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퇴직자는 원하는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인지하지 못하면 자신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서 더욱더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진정한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다음의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널리 알리기보다는 절친한 친구처럼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소수의 깊은 사람에게만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정서적 지지를 구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이들은 퇴직자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한계 내에서라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상호 관계의 기반이 쉽게 흔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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