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병 끝에 효자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오랜 기간 병을 앓거나 돌봄이 계속되면 처음에는 정성스럽게 보살피던 자녀나 주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을 끊고 보살피는 노력을 포기하는 상황을 뜻한다. 돌봄이 필요한 나이 든 부모를 보살피기는커녕 오히려 그 곁을 떠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계속되는 돌봄으로 인한 소진 때문이다. 부모를 오랜 시간 돌보는 자녀들은 ‘소진’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자녀들은 초기에는 돌봄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열정과 사랑으로 부모를 돌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육체적·정신적 피로와 부담이 누적되면서 에너지가 고갈된다. 이로 인해 돌봄에 대한 피로감과 부모 돌봄에 대한 회피 경향이 강해지면서 돌봄 초기와 같은 정도의 관심과 열정을 쏟지 않게 되는 것이다.
둘째, 희생의 당연시와 상호성 부족 때문이다. 자녀가 부모를 돌보는 일은 ‘희생’으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자녀의 희생이 당연시되면서 정당한 인정이나 보상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자녀들도 경제적·시간적 어려움과 자기 일을 하거나 가정을 돌봐야 하는 등 여러 역할을 감당해야 하므로 부모 돌봄에 대한 부담감이 커진다. 돌봄의 상호성이 사라질수록 자녀는 점차 감정적으로 부모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 질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면서 ‘효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셋째, 정체성 혼란과 심리적 부담 때문이다. 효자의 역할에는 단순한 물리적 돌봄만이 아니라 정서적, 사회적 역할도 포함된다. 그러나 퇴직 후 노년의 부모는 ‘약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되면서 자녀 역시 과도한 책임감과 심리적 부담을 느끼게 된다. 자녀를 돌보는 ‘강자인 부모’에서 돌봄을 받아야 하는 ‘약자인 부모’로 정체성이 변하는 과정에서의 혼란은 가족 간에 갈등과 소통 부재를 만들면서 가족 사이에 관계의 거리감과 소원함을 불러올 수 있다.
넷째, 외부 환경 요인과 사회적 변화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가족 구성원의 변화, 핵가족화, 사회적 네트워크 감소 등으로 인해 노인의 돌봄과 지원 체계가 약화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 부담이나 사회적 지원의 부재도 자녀가 지속적인 돌봄을 포기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이러한 환경적 제약은 자녀가 부모 돌봄을 포기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다섯째, 심리적 방어기제와 거리 두기 때문이다. 자녀는 때로 부모 돌봄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부모와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이것은 ‘보기 싫은 현실을 외면하는 일종의 자기 보호’로 장기적으로는 가족 간 애정 표현과 소통의 부재를 초래해 돌봄 역할의 감소로 나타날 수 있다.
퇴직 후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특히 건강이 나빠지거나 생활이 불편해지면서 배우자나 자녀와의 관계에서 소외감과 고립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것은 ‘긴 병 끝에 효자 없다’라는 속담이 상징하는 것처럼 초기에는 진심 어린 보살핌과 관심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줄어드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경험하는 노년층이 하는 공통적인 말이나 행동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잦은 불평과 투정이다. 자신을 성심성의껏 돌봐주지 않는다는 서운함과 외로움이 축적되면서 자주 불평하거나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한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아”라거나 “너희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아”라는 표현을 반복하면서 자녀들을 압박한다. 둘째, 과거 자랑과 같은 얘기의 반복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과거의 업적이나 자랑거리를 빈번히 이야기하면서 주변 사람의 관심을 끌려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자기 과시를 위한 과거의 추억을 반복하는 행동은 오히려 자녀 세대 혹은 주변 사람에게 부담이나 지루함으로 작용하면서 스스로를 더욱더 깊은 외로움의 늪으로 빠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무기력과 의욕 저하이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단절감을 느끼면 삶의 의욕을 잃거나, 일상적인 활동조차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가족에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비치게 되면서 가족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 심리적 거리를 두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넷째, 잔소리와 지나친 간섭이다. 부모는 자신이 돌봄의 중심에 있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에 자녀나 배우자의 행동에 대해 잦은 잔소리나 간섭을 해 가족의 긴장을 유발하기도 한다. 부모의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이 반복되면 자녀는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면서 부모는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노년층의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은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첫째, 심리적 부담과 갈등이 깊어질 수 있다. 자녀들은 부모의 과도한 불만과 불안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며 심리적 부담을 느끼게 된다. 배우자와 자녀들은 효도와 돌봄의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면서 지쳐가면서 소통 단절이 일어날 수 있다. 둘째, 관계가 나빠지면서 마음의 거리가 멀어진다. 나이 든 부모의 잦은 불평과 잔소리, 무기력한 상태는 가족 내 긴장과 불편함을 낳아 관계의 질을 떨어뜨린다. 본인을 제외한 가족 모두의 마음에도 무거운 짐이 쌓이고 지치게 되면서 당사자에 관한 관심과 돌봄을 회피하게 된다. 셋째, 소진과 무력감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돌봄의 부담을 느끼는 자녀와 배우자는 자신도 모르게 감정적 소진 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가족 전체의 심리적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와 함께 소중한 가족 관계가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로 나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긴 병 끝에 효자 없다’라는 속담은 오랜 시간 이어지는 돌봄 속에서 발생하는 가족 내 심리적 소진과 거리감 그리고 효도의 현저한 감소 현상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퇴직 후 자녀들에게 따돌림과 소외감을 경험하는 부모의 말과 행동은 외로움과 불안의 신호로 가족 모두의 심리적 부담과 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건강한 가족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상호 존중과 소통, 적절한 거리 두기, 심리적 지원 확대 등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을 통해 가족 모두가 평화롭고 충만한 노년과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