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부장은 퇴직 후 여유가 많아지자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아들에게 쏟았다. 직장 상사의 시각으로 아들을 대했다. 아들이 출근할 때는 “옷차림이 그게 뭐냐?”, “이렇게 꾸물거리다 오늘도 지각하는 거
아니냐?”와 같은 잔소리를 했다. 아들은 아빠의 잔소리에 질리면서 대화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밥 먹었냐?”라고 물으면 아들은 “예!”라고 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들의 휴대전화는 늘 아버지의 부재중 통화로 가득했다. 아들이 결혼하지 않자 주변의 결혼 사례들을 밤낮으로 이야기하며 끊임없이 결혼을 압박했다. 아들의 취미나 친구 관계까지 간섭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아들은 아빠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아빠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차 숨이 막혔다. 결국, 아들은 퇴근 후 일부러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도서관에 틀어박혀 집에 오는 시간을 늦추었고, 주말에는 부모로부터 가능한 먼 곳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헌신하며 ‘경제적 가장’ 혹은 ‘자녀 교육의 지휘자’로서 바쁜 삶을 살아왔다. 부모는 자녀의 성장을 지켜보고 뒷바라지하며 숱한 노력과 희생을 감내해 왔다. ‘내 자녀만은 성공하길…’, ‘내 자녀만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과 같은 간절한 마음은 부모의 존재 이유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퇴직’이라는 삶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후 예상치 못한 격랑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 ‘이제 할 일도 없고 시간이 많아졌으니 못다 한 사랑과 관심으로 자녀를 더 돌봐야지!’ 하는 선한 의도가 아이러니하게도 자녀 관계를 망가뜨리는 ‘독’이 되기도 한다. 그 독의 이름은 바로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참견’이다. 부모의 참견은 때로 자녀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상처를 줘 서로를 ‘아픈 관계’로 만드는 치명적인 칼날이 되기도 한다.
수십 년간 문제 해결과 성과 달성에 특화된 ‘업무 지능’을 연마해 온 직장인이었던 부모는 일상생활이나 관계에서도 이 방식을 적용하려 든다. 부모는 자녀의 상황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하고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부모 생각에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는 것이다. 자녀가 실제로 원하는 것은 ‘공감과 지지’ 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녀의 바람을 모르거나 비효율적인 감정 소모로 치부하며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고 한다. 부모와 자녀의 인식 차이가 부모와 자녀 사이에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들게 된다. 부모의 일방적인 참견이 계속될수록 마음의 골은 깊어지면서 관계의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퇴직 후 사회적 고립이나 외톨이가 될 위험에 처한 부모는 외로움을 해소하고 유대감을 얻는 방법으로 자녀에게 매달리기도 한다. 자녀와의 관계를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참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부모의 과도한 참견은 자녀에게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심리적 영향을 미치며 관계를 병들게 한다. 첫째, 독립성과 자율성을 침해한다. 자녀는 이미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는 성인이다. 자녀는 부모의 끝없는 조언과 지시를 자신의 자율성과 독립적인 삶의 방식을 존중하지 않고, 여전히 ‘미성숙한 존재’로 취급한다고 받아들인다. 자녀는 부모의 부정적인 태도에 대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갈 능력을 부정당했다고 생각하면서 부모에게 깊은 불만과 반감을 품게 된다.
둘째, 자존감 저하와 자신감 상실로 이어진다. 자녀는 부모의 참견을 ‘너는 부족하다’, ‘너는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라는 메시지로 인식하게 되고, 이런 부정적인 피드백은 자녀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부모의 과도한 염려는 오히려 자녀 자신의 판단에 대한 불신을 키우면서 어떤 결정도 혼자서 내리지 못하는 불안한 성인으로 만들 수 있다.
셋째, 관계 회피와 소통 단절을 일으킨다. 자녀는 부모와의 대화가 늘 ‘잔소리 듣는 시간’이 되면 대화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이런 시간이 오래되면 부모가 아무리 선한 의도로 말을 걸어도 자녀는 ‘또 시작되네’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부모와의 대화 단절은 부모와는 정서적 단절로 이어지면서 관계도 단절된다. 이렇게 되면 집은 더 이상 편안한 안식처가 아닌 긴장과 부담이 가득한 공간이 된다.
넷째, 부모의 불안감 때문이다. 자녀는 부모의 끊임없는 참견 속에서 부모 자신의 불안감과 기대를 고스란히 느낀다. 이렇게 되면 자녀는 자신의 꿈이나 행복보다는 부모를 만족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되면서 자녀의 삶도 망가지게 된다.
부모는 왜 자녀의 삶에 과도하게 참견하고 싶어 할까? 부모의 잔소리는 잔소리 그 자체가 아니라 퇴직 후 ‘부모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심리적 요인’들이 ‘참견이라는 행동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직장에 다닐 때는 업무에 집중하느라 자녀의 삶에 깊이 관여할 물리적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다. 하지만 퇴직 후 마땅한 배출구를 찾지 못하던 넘쳐나는 시간과 에너지를 자녀에게 관심을 가장해 쏟게 된다. ‘이제야 내 아이를 돌볼 수 있어’라는 퇴직자의 착각 자체가 참견으로 이어지기 쉽다.
많은 사람이 자녀를 자신의 역할과 목표의 대체재로 여긴다. 직장에서의 중요한 역할과 목표를 상실한 퇴직자는 갑작스러운 공허함과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이럴 때 가장 익숙하고 가까운 존재인 자녀의 삶을 자신의 새로운 프로젝트나 인생의 목표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마치 직장 상사처럼 부하인 자녀의 삶을 관리하고 통제함으로써 여전히 유능하고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욕구가 발동하는 것이다.
또한, 퇴직 후 자신의 경제적 불안감, 건강 문제 혹은 지나온 삶에 대한 후회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을 자녀에게 투사하기도 한다. ‘내 자녀만은 나처럼 되지 않아야 한다’, ‘내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만의 기준과 경험으로 자녀의 삶을 재단하고 조종하려 한다. 이것은 부모의 불안감이 자녀의 삶을 침범하는 안타까운 방식이다.
자녀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에게 자녀는 여전히 보호하고 이끌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부모의 강한 책임감은 자녀의 의사와 무관하게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한 믿음으로 인해 ‘내가 너보다 경험이 더 많으니 너는 내 말을 따라야 한다’라는 식의 권위적 태도를 유지한다. 이런 태도는 자녀와의 거리만 멀게 만들 뿐 부모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