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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여사 Jul 11. 2023

게으른 살림의 여왕

내 맘대로 미니멀 살림

이사를 한 이후로 점점 더 부지런해졌다. 

처음에는 예쁘게 꾸미고 싶어서 이것저것 사나르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좁은 집에 필요 없는 물건은 과감히 없애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집은 좁은데 물건을 사서 예쁘게 채우는 것보다 필요 없는 물건은 없애고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공간을 쓰는 것이 더 깔끔하고 보기 좋은 것이다. 미니멀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나의 필요에 의해서 시작한 사부작사부작이랄까.


옷방 정리부터 시작했다. 

방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공간에 시스템헹거와 벽 부착용 고리를 몇 개 설치해 둔 공간.

그 안에 남편과 나의 사계절 옷이 있다. 우리 둘 다 옷이 적은 편이지만, 계절이 바뀌며 정리를 몇 번 해보면 한 번도 입지 않고 그대로 걸려있는 옷들이 있다. 우선 그 옷들부터 빼서 봉투에 넣고, 남은 공간에 여유 있게 두꺼운 옷과 계절 지난 옷들을 걸고, 평소 잘 쓰지 않는 커다란 수건으로 어깨를 덮었다. 굳이 옷 커버를 사지 않아도 어깨 부분에 먼지가 앉는 걸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입지 않는 오래전 옷들과 체형이 바뀌어(살이 쪄서) 못 입는 옷들도 언젠가는 입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버리고 과감히 빼서 봉투에 담았다. 침대 옆에 속옷과 잠옷을 넣어두는 서랍도 뒤집어서 오래돼서 집안에서만 입을 수밖에 없는 옷들 중에서도 몇 개를 더 빼었다. 

더운 날 에어컨도 없이 방 안에서 동동거리며 움직였더니 몸에서 쉰내가 날 지경이지만, 정리를 마치고 보니 서랍장과 옷방 옷걸이에 여유 공간이 생긴다. 따로 담아둔 옷들은 남편이 회사 근처에서 폐품 모으시는 할머니에게 전해드리기로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일요일.

세탁실 겸 보일러실 겸 다용도실을 정리를 시작했다. 

부엌에 딸린 문을 열면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고, 그 옆에 있는 보일러실 사이에 세탁 바구니가 있다. 그리고 그 앞에 6단 선반을 넣어 평소 잘 쓰지 않는 이런저런 물건과 양파, 감자 등 실온 보관 채소와 온갖 세제가 있고 보일러실문과 선반 사이에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이 있다. 그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겠다고 나름 머리를 짜낸 집념의 결과물이자 극강의 효율적인 공간 배치였다. 

그러나, 6단 선반 중 실제로 쓰는 건 세제와 채소를 올려둔 2단 정도였고, 나머지는 갈데없이 쌓아둔 보자기, 빈 페트병, 버리기 아까워 가지고만 있는 코팅 벗겨진 프라이팬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재활용 쓰레기는 거의 생길 때마다 바로 버리기 때문에 집안에 그렇게 큰 분리수거통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세탁기 윗부분과 옆부분 공간이 너무 아까웠는데, 이게 웬걸 SNS 살림 인플루언서에게서 꿀팁을 얻었다. 

바로 압축봉으로 만든 선반.

미리 사이즈를 재서 구입해 둔 압축봉과 남편을 시켜 마련해 둔 나무로 뚝딱뚝딱 선반을 만들어 물건을 챙겨 넣었다. 

오 마이갓! 선반 밑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마치 원래 선반이 부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탁기 윗공간에는 기다린 압축봉 세 개를 끼우고 나무선반(원목이라 너무 무거움)을 얹은 다음 보냉백과 김장철에만 필요한 커다란 스텐김치통을 올리고, 세탁기와 보일러실 사이 공간에는 제일 짧은 압축봉을 끼우고 세탁세제와 과탄산 등 자주 쓰는 세제들을 올려두었다. 


이렇게만 해도 물건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기존에 쓰던 선반에 물건을 반이상 옮기고 나니 나머지는 버리거나 다시 자리를 잡았다. 우선 6단 선반을 분리해 3단으로 만들고 그 위 공간에는 조그만 접이식 건조대를 부착해서 젖은 수건을 널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쓰레기통도 1칸을 분리해 높이를 낮추고 세탁물바구니와 위치를 옮겨주고, 마지막으로 바닥에 맨발로 다닐 있도록 집에 남겨두었던 바닥용 원목을 깔아주었다.

비포&애프터가 참으로 다른데 사진을 올릴 수 없어 안타깝다. 

남편도 만족스러운지 몇 번이나 문을 열고 들여다보고 갈 정도로 깔끔해졌다. 

이젠 이곳을 세탁실이라 불러도 될 것 같다. 




나의 다음 타깃은 창고? 이자 팬트리? 같은 곳이다. 

집 거실에 예쁜 문과 손잡이로 그 정체를 숨기고 있는 그곳의 문을 열면 양옆과 정면에 설치된 철제 선반에는 식재료부터 캠핑용 짐까지 온갖 물건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남편이 제대할 때 받은 가짜 총과 칼이 들어 있는 액자도 있다. 

그러나, 이번주에 할 생각은 없다.  

난 아주 소극적인 미니멀리스트이자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친환경 살림을 지향하기 때문에 2주 연속 일을 했으면 이번주는 쉬어야 한다. 다만, 정리할 것들을 미리 생각해 두고 그전에 버릴 것과 옮겨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필요한 것들을 리스트업 하고 있다. 


살림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길고 긴 마라톤이다. 무리해서 해치우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일상에서 조금씩 해야 한다. 

고로 난 이번주는 쉴 거다. 

핑계 한번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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