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침저녁밥 짓는 일상으로
아들이 무슨 말을 해도 예쁘고 애틋한 건 집으로 돌아온 그날 딱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피부도 좋아지고 턱선도 날렵해진 아들을 향해 간지러운 말투와 눈에서 하트를 뿜어대며 휴게소에서 산 따끈한 호두과자 껍데기를 까주니, 아작아작 잘 먹으며 그동안 지낸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아이는 생각보다 단체 생활이 체질에 맞는 듯 집에 있을 때 보다 더 건강해 보였다. 이런 아들을 보며 내심 내년에 재수를 하게 되면 아예 기숙학원에 넣어버려야겠다 생각했는데, 엄마의 의중을 단번에 파악한 아이는 거기서 재수생들을 보니, 재수는 사람이 할 짓이 못 되는 것 같다며 오히려 재수 자체를 안 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그럼 군대라도 보내버려야 하나...)
처음에는 하루 세끼를 꼬박 먹다가 나중에는 아침은 거르고 잠을 더 자긴 했지만 밥을 잘 먹었다고 했다. 라면이나 햄버거 같은 밀가루 인스턴트를 안 먹어서 그런지 여드름도 많이 들어가서 피부가 좋아졌고, 규칙적인 수면과 함께 휴식 시간에 철봉도 하고 달리기나 탁구, 배드민턴 같은 것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더니 정말 팔뚝에 처음 보는 알통이 생겨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남편도 막 제대했을 때 인생에서 가장 날렵한 몸이긴 했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그날 바로 친구들을 만나야 하고 그동안 못 잤던 잠을 자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누가 보면 입시가 끝난 줄 알겠을 정도로, 자기는 쉬어야 한다며 먹고 자고 쉬겠단다. 어쨌거나 집에 돌아왔으니 밥을 해 먹여야 했다. 3주를 편하게 살았는데, 이제 다시 아침 등교할 때 샌드위치 싸주고 저녁 늦게 오면 고기 구워 밥 주는 일상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일요일 점심부터 장어를 굽고 저녁에는 육회를 해주고 다음 날까지 차돌박이에 등심까지 연이어 소고기를 구워댔다. 심지어는 메밀국수를 먹을 때도 스테이크를 구울 정도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질린 동생은 자기는 과일과 요구르트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그 좋아하던 고기에 손도 대지 않았다.
아이가 몸이 허약해진 것도 아니고 단지 다른 고3들처럼 방학에 공부를 한 것뿐인데, 뭘 이렇게까지 먹거리 가지고 난리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입시에 관해서는 몰라도 너무 모르는(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지만) 엄마는 밥이나 제대로 챙겨주마 약속하기도 했고, 챙겨 주면 워낙 잘 먹기도 해서 자꾸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 어쩌겠나.
생각해 보면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끼니 챙기는 거로는 좀 유난하기는 했다.
돌 이전부터 아토피가 있기도 했고, 직장 다니며 유축해서 돌까지 모유수유로만 키우고 이후 이유식도 다 직접 해 먹였다. 그때에는 힘든 것보다 그런 나에게 자부심을 느끼고 뿌듯해했지만, 지금 내 딸이 그렇게 살겠다고 하면 뜯어말리고 싶다. 분유보다는 모유 수유가 편하고 경제적이기까지 하니 젖 양만 충분하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다만, 이유식은 그냥 배달시켜 먹여도 된다.
그런다고 애 안 달라진다.
암튼 집에 돌아온 지 일주일 동안 부지런히 해 먹였다.
물론 가끔은 라면도 끓여 먹고 낮 시간의 대부분은 친구들과 외식을 하지만, 늦은 밤 집에 오면 항상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아침에 등교할 때는 간단한 샌드위치를 들고 나선다.
물론 엄마밥이 너무 맛있어서는 아닐 텐데 꼭 밤늦게 집에 와서 저녁을 먹는다. 11시에 밥을 먹으면 소화가 될까 싶어, 일찍 일찍 시간 맞춰 사 먹거나 동생 먹는 시간에 맞춰 집에 와서 먹고 다시 나가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늘 집에서 먹는다. 그러고 또 아침 일찍 일어나 샌드위치를 싸야 하니, 아이가 고3이냐 내가 고3이냐, 늙은 에미는 이러다 목요일쯤 되면 헤롱헤롱 체력이 남아나질 않는다.
아이에게 애틋한 마음을 되살려보고자 부재중에 썼던 편지들에 실었던 내 마음은 아이가 집에 돌아와 얼굴을 마주하며 다 휘발되었나 보다.
아들에게 쓰는 편지를 매거진으로 만들 땐 편지를 다 쓰고 아들이 돌아올 즈음엔 착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리라 다짐했지만, 영 글렀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두 가지 일을 하고 아이들 챙기고 살림도 살아야 하는 이런 일상은 사십 대 후반의 나이에는 사실 좀 힘들고 매우 귀찮다. 어느 날은 첫째의 교육에 너무 무심했던 날들을 반성하고, 또 어느 날은 둘째의 공부를 챙기며 둘째만큼은 제대로 공부시켜 보리라 다짐을 하고, 그러다 주말이 되면 살림의 여왕이 되겠다며 괜스레 이런저런 집안 일로 몸을 혹사시키기 일쑤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며 우울했다가 난 반드시 성공할 거라며 기대에 부풀었다가 그야말로 오락가락하는 일상.
내가 좀 더 젋었다면,
큰 애가 고3이 아닐 때 사업을 준비했다면,
돈이 좀 많아서 당차게 퇴사하고 사업을 준비했다면,
그러니까.... 내가 좀 덜 바빴다면, 지금보다 좀 더 나았을까? 아이에게 좀 더 다정했을까?
모르겠다.
뭐 인생이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내 성격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뭐 어쩔 텐가.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다.
아들에게 쓰는 편지의 마지막은
결국 쓰기 전과 다를 바 없더라는
그렇고 그런 슬픈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