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이 주는 행복
2번째 전원주택. 2번째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작심하고 많은 짐들을 버렸다. 나름 많이 버리고 비웠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불필요한 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혹시 아파트에 살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짐이 많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마당에서 필요한 도구들과, 정원을 가꿀 때 필요한 연장들, 그리고 여기저기 집을 보수하거나 수리하는데 필요하는 공구들은 자주 쓰진 않지만 필요한 물건들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렇게나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니, 한쪽켠에 수북이 쌓여있는 연장과 공구들을 보면 숨 막히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예전에는 200평 부지의 집에 살다가 지금은 520평 땅을 사서 이사 왔다. 집의 면적도 2배 이상 넓어졌지만 내가 원했던 여백의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나는 수시로 남편을 설득했다.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기에 앞서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는 가족의 동의이다. 나 하나만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에 가족과의 합의가 굉장히 중요하다. 남자들은 특히 공구나 연장을 수집하고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그런 공구들을 진열장에 진열해 놓으면 마치 전리품을 바라보듯 무언가 뿌듯함이 느껴지는 것일까? 아무튼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남편을 설득했고, 지금 당장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자주 쓰는 물건이 아니라면 과감히 비워보자 조심스레 말했는데, 그동안은 영 먹히지 않던 나의 이야기를 이번에는 남편이 순순히 받아들여 주었다. 남편도 뭔가 비움의 필요성을 느낀 듯했다. 특히나 덩치가 너무 컸던 잔디 깎는 기계는 남편이 애착하던 공구 중 하나였는데, 당근에 사진을 찍어 올리니 하루 만에 임자나 나타났다. 혹여나 남편이 아쉬워하거나 허전해할까 봐 남편의 눈치를 살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남편의 표정은 후련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래, 비우고 나면 더 큰 여백의 선물이 찾아온다. 남편도 나와 동시에 그 여백의 미학을 느끼고 있음이 반가웠다.
남편도 나의 말에 이젠 깊이 동의하는 듯했다. 잔디 깎는 기계를 성공적으로 팔고나더니, 이제는 목공예 취미반 다닐 때 샀던 여러 가지 연장과 공구들을 사진 찍어 당근에 신나게 올린다. 한때 목공예 배우기에 열정이 불타올라 먼 곳까지 운전하고 가서 배웠던 남편, 지금은 취미와 관심사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뀌어서 목공을 전혀 하지 않기에, 과감히 정리하는 듯했다. 커다란 공구 상자가 우리 집 창고를 꽤 많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자리가 비워질 것을 상상하니 가려웠던 곳을 누군가가 시원하게 긁어주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내가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배우자에게 강요할 수도 없는 부분이고, 나와 뜻이 같이 하자고 함부로 종용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다 각자 취미와 라이프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부부라 할지라도 서로 충분한 의견조율은 꼭 필요하다.
예전엔 맥시멀리즘으로 살았었다. 특히나 옷 욕심이 무척이나 많아서 틈만 나면 옷 쇼핑을 했었고, 옷장 안에 옷이 이미 가득한데도 습관처럼 옷쇼핑을 꾸준히 했었다. 하지만 "이사"라는 인생의 큰 계기는 나 자신을 여실히 돌아보게 해 준다. 옷장 안에 가득가득했던 옷들은 대부분 1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 하고, 몇 년 동안 아예 손이 안 가서 안 입는 옷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습관처럼 계속 옷을 사고 있는 나 자신이 어느 날 한심하게 느껴지는 때가 왔다. 이사하면서 안 입는 옷들은 과감히 싹 다 비우거나, 친구를 주거나, 의류수거함으로 보냈다. 그렇게 버리는 비우는 과정 속에서도 그 옷이 아깝다거나 아쉬운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옷이 정말 필요해서 산 것이 아니라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그냥 소비를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런 소비를 하지 않는다. 옷장을 한 번 크게 비우고 나서는 내가 편하게 자주 입는 옷 몇 벌 정도만 돌려가면서 입는다. 이렇게 살아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고, 오히려 "오늘은 뭐 입지?"라는 고민을 안 해도 되어서 삶이 훨씬 단순하고 담백해진다. 그리고 생각보다 남들은 내가 무슨 옷을 입는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백이 주는 행복은 생각보다 크다. 물건들이 집 안 곳곳에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으면 내 머릿속도 어지럽고, 마음속도 어지러워진다. 물건들이 안 보이는 곳에 잘 정리되어 있고, 외부로 노출되어 있지 않으면 청소하고 정리 정돈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내 순간의 삶에 훨씬 더 고요하게 잘 집중할 수 있다. 하지만 미니멀라이프에도 약간의 부작용은 있다. 우리 집에 가끔 방문하게 되는 손님들은 우리 집이 마치 모델하우스 같다고, 우리가 방문한다고 일부러 물건들을 싹 다 치운 거냐? 고 질문한다. 집에 물건들이 노출되어 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지는가 보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 일일이 반응하거나 대응할 필요는 없다. 내 집은 내가 살기 편하면 되는 것이고, 내 취향대로 만들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남들의 말을 너무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다.
삶이 담백해지고, 물건들도 부터 받는 공간의 스트레스가 없어지면 마음의 분리수거가 좀 더 쉬워진다. 우리는 삶에서 물건만 비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비워야 할 때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집 안의 살림살이가 늘어나듯 우리 마음의 감정들도 버리지 못하고 움켜쥐고 힘들게 살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그 무게와 부피가 커지다 보면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물건처럼 내 정신과 마음을 짓누르게 된다.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동시에 마음도 정리가 어느 정도 된다. 참 신기하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에게 더 의미 있는 소중한 감정에 더 잘 집중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감정들을 버릴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떠나보낼 것은 과감히 떠나보내자. 그래야 내 현재를 더 잘 살 수 있다.
유용하진 않지만 소중한 것들
"미니멀리즘"
집 안에 불필요한 물건을 비워내듯
마음도 불필요한 감정을 비워내야 한다.
여백의 공간이 주는 행복은 생각보다 크다.
우리 마음에도 여백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금 나의 현재에 더 잘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