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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형 Aug 22. 2023

02_아빠는 가서 계속 일만 할 거잖아!

같이 게임도 하고 놀이도 하자!


“혹시 아빠와 단둘이 가는 캠핑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은 아빠가 텐트 등을 세팅하고 철수하는 데 소요되는 짧지 않은 시간을 엄마 없이 혼자서 기다려 줄 수 있겠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아빠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아들은 “아빠는 가서 계속 일만 할 거잖아!”라며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캠핑장 도착 후 타프와 텐트를 설치하고 테이블과 체어, 잠자리까지, 모든 정리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시원한 음료 한 잔을 마시기까지는 서둘러도 한 시간을 훌쩍 넘긴다. 세팅을 하면 저녁을 준비해야 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뒷정리를 해야 한다. 계속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아빠가 자신과 함께 놀지 못할 거란 걱정이 들 법도 했다.


“그럼, 아빠가 텐트 설치 시간을 30분 이내로 줄여볼게. 우리 같이 텐트도 치고 정리도 하고, 다 함께 해보자. 정리 후에는 같이 게임도 하고 놀이도 하고! 어때?”


“30분 이내?”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들에게 “30분이란 한 시간의 절반인데, 그러니까 네가 영어학원 수업을 듣는 정도의 시간이야.”라고 설명하니 그제야 ‘좋아! 둘이 가보자!’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과 단둘이 함께하는 첫 캠핑. 그렇게 5월 5일 어린이날의 계획이 생겼다. 


이제 어디로 갈지 고민을 시작했다. 새로운 곳으로의 모험과 도전도 나쁘지 않지만, 우선 아들이 익숙한 캠핑장이 좋을 것 같았다. 함께 다녔던 곳은 대부분 시설과 환경이 빼어난 중에서도 소위 ‘관리가 잘되는’ 캠핑장, 즉 ‘밤 10시 이후부터 아침 8시 이전까지의 취침’을 보장해 주는 매너 타임이 잘 지켜지는 캠핑장이었다. 하지만 그런 인기 캠핑장들이 어린이날 대목에 비어있을 리가 없었다. 떠오르는 곳의 사이트는 역시나 모두 마감이었다. 혹시나 자리가 없어 못 가는 건 아닐까. 국립공원 야영장으로 눈을 돌렸다. 


자연을 만끽하기에 최고의 환경이라고 생각하는 덕유산 국립공원의 ‘덕유대 야영장’. 덕유산 향적봉의 북동쪽에 위치한 월하탄계곡을 마주하고 있는 덕유대 야영장은 1 영지부터 7 영지까지, 총 500여 개에 달하는 사이트를 보유한, 국립공원 야영장 중 최대규모다. 그럼에도 예약일이면 희망자가 몰려 추첨을 통해서야 겨우 사이트를 배정받을 수 있는 곳이다. 큰 기대 없이 국립공원 예약시스템에 들어가 보았는데 예약 가능한 사이트를 발견했다. 비어 있던 사이트는 2 영지 55번. 붙어있는 이웃이 없는 독립된 위치에, 개수대와 화장실이 멀지 않고 또 주차장에서도 스무 걸음 남짓한 거리였다. 5월 5일 어린이날의 55번 사이트라니! 이건 운명이야! 고민 없이 바로 예약을 했다.




아들이 손꼽아 기다렸던 화창한 5월의 어린이날, 우린 싱그러운 숲 내음을 맡으며 덕유대에 도착했다. 비록 목표했던 30분을 달성할 순 없었지만, 한 시간이 채 되기 전에 아들과 텐트 앞에 마주 앉아 시원한 음료 한 잔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적절한 역할 분담 덕에 아들도 무언가 자신의 몫을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여느 오토캠핑장과는 달리 진짜배기 자연에 둘러싸인 덕유대의 환경은 내가 오롯이 아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돌멩이 진지 구축, 나뭇가지 칼싸움, 곤충 집짓기, 등등, 먹고 마시고 잠자는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은 나무, 돌, 흙 등의 자연물 놀이에 매진했다. 서로의 호칭은 ‘장군’이었다.

“이보게 꼬마 장군, 여기 성벽을 쌓으려면 조금 더 크고 튼튼한 돌이 필요하겠어!”

“알았어! 내가 큰 돌을 찾아올게! 아빠 장군은 잘 지키고 있어!”

진지구축을 마친 뒤에는 돌연 내란이 일어났다. 기다란 나무를 움켜쥔 아들은 눈을 부릅뜨고 이렇게 말했다. 

“덤벼라, 아빠장군!” 

그렇게 어제의 동료는 오늘의 적군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친구가 되었다. 


이튿날 느긋하게 아침을 먹은 우리는,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 없다며 부지런히 정리를 마치고 덕유산으로 향했다. 아들과 함께 곤도라를 타고 오르는 해발 1,614m의 기쁨을 누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덕유산리조트에 도착해 곤도라 티켓을 구매하고 탑승했다. 개표구 직원이 아들을 보자 어린이날을 축하한다며 힘내서 아빠와 꼭 정상에 다녀오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캠핑장에서 깎아온 한 조각 사과를 우물거리며 곤도라를 타고 오르기를 15분, 승강장에 발 디디니 사뭇 다른 공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도착지인 설천봉은 이미 해발 1,520m다. 이곳부터 덕유산 향적봉까지는 왕복 2km가 채 되지 않는다. 아들의 한 손은 등산스틱을, 다른 한 손은 난간과 아빠의 손을 번갈아 잡으며 한 계단 한 계단 딛고 오르기 시작했다. 30분쯤 걸었을까? 모자가 벗겨질 듯 불어대는 바람과 함께 향적봉 이정표가 시야에 들어왔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오늘을 추억할 인증 사진을 남기고, 한 모금 물로 목을 축였다. 둘 만의 여정, 성공이다! 




모처럼의 긴 여행을 보낸 후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운 다섯 살은 어제오늘의 덕유대를 추억하듯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내 귓전에 나지막이 이렇게 속삭였다. 


 “다음 주에도 아빠랑 둘이 캠핑 또 가면 좋겠다!” 


어린이날의 덕유대 야영장 2영지 55번 사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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