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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씨 Writer C Sep 10. 2022

28살 청년이 공사현장에서 배운 인생의 법칙 10가지

1. 인생의 기초를 잘 쌓는 법: 책임지기

모든 일은 기초를 잘 쌓아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볼 법한 말이다. 기초, 토대를 잘 쌓아야 그 뒤가 무탈하다는 말. 건축공사와 마찬가지로 조경공사에서 기초란, 시설물이 침하하지 않도록 밑을 받쳐주는 구조물을 말한다. 독립 기초, 줄기초 등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어느 정도 큰 사이즈의 시설물을 설치할 때는 아예 거푸집으로 틀을 잡고 몰탈이나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만들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기성품 기초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초의 품질은 온전히 작업자의 몫이다. 그리고 가끔 이 기초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경우, 후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때가 있다.


 현재 나는 3년을 다닌 조경회사에서는 퇴사했지만, 좋은 기회로 공모전에 당선되어 서울시 소재의 공원에 정원을 조성하고 있다. 이 정원은 대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곡선형 벤치가 특징인데. 이 벤치의 하부 기초로 인해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보통 모든 공사에서 곡선의 형태는 직선의 형태보다 훨씬 까다롭고 비싸다. 이는 곡선이 직선보다 버려지는 재료도 많아 단가가 비쌀뿐더러, 실제 현장에서 계획된 곡선을 구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조성하는 정원은 작가정원으로서 '작품'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호기롭게 거대한 곡선형 벤치를 도전한 터였다. 벤치가 곡선이라는 것은 그 하부의 기초도 곡선으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평평하지 않은 땅 위에 벤치가 앉을 수 있게끔 정확한 위치와 크기로 기초가 놓여야 한다. 이때, 기본적으로 기초 윗면의 수평이 어느 정도 맞아야 한다. 현장에서는 도면대로 수치가 딱딱 맞아떨어지기 굉장히 힘들지만, 오차 범위 내에서 맞아야 다음 작업이 훨씬 수월하다. 내 경우에는 여기에 더해, 각각 다른 곡률을 가진 벤치들을 고려하여 각각 다른 곡률의 기초를 놓아야 했다. 결론적으로 노력은 했지만 결국 두 가지 모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벤치 아래 놓일 기초, 거푸집을 활용하여 만들어졌다





 내가 만드는 벤치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다.  콘크리트로 만든다는 것은, 기초 위에 벤치 모양의 거푸집을 대고 콘크리트를 부어서 벤치를 만든다는 것이다. 콘크리트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거푸집이다. 거푸집은 너무나 정직해서 거푸집에서 문제가 있다면, 결과물에 필연적으로 똑같이 문제가 생긴다. 첫 번째 문제는 벤치의 거푸집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현장에서 정확한 곡률의 거푸집을 짠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벤치의 거푸집은 미리 공장에서 제작되어 왔다. 문제는 미리 만들어놓은 기초 위에 거푸집을 올렸는데, 바닥면의 수평이 상당히 맞지 않았다. 5개의 기초 중 하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4개가 모두 맞지 않았다. 심한 것은 거의 7cm까지 높이 차이가 났다. 아무리 오차가 숙명인 현장이라지만 7cm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차이다. 바닥이 맞지 않으면 당연히 위에 앉을 벤치의 형태도 무너지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초가 많이 낮은 곳에 추가로 자재를 받치면서 거푸집 수평을 맞추었다. 이른바 현장에서 발휘하는 임기응변이다. 다만, 일일이 높이를 확인해야 했기에 하루면 끝났어야 할 작업이 다음날까지 늘어졌고, 다음날 오전 일찍부터 타설했어야 할 콘크리트는 오후로 밀렸다. 콘크리트는 타설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한 번 치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출 수 없기 때문에 보통 점심시간을 피해서 공사한다. 시공일이었던 금요일은 콘크리트 수요가 많기 때문에, 한 번 순서가 밀리면 레미콘을 다시 잡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남는 순서는 점심시간밖에 없었고, 우리는 밥도 못 먹으면서 레미콘 차가 출발해주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현장에서 점심시간은 꼭 지켜야 하는 성역이다. 대한민국은 '밥은 먹었어?'라는 질문으로 상대의 안부를 묻는 나라다. 아무리 문제가 발생해도 '밥은 먹고 합시다'라는 말로 모든 게 해결되는 곳이 바로 현장이다. 9월의 땡볕 아래 몸을 쓰는 반장님들은 오죽했겠는가. 반장님들도 서로 밥을 먹네마네 옥신각신하셨다. 결국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하고 죄송스러운 일이다.

 두 번째 문제는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 나타났다. 5개의 벤치가 모두 다른 곡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맞추어서 기초를 치는 게 중요했다. 직선은 조금 삐뚤어져도 반대쪽에서 차이가 크지 않지만, 곡선은 각이나 곡률이 조금만 달라져도 반대쪽에서는 굉장히 크게 차이가 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구석이라 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기초와 벤치의 거푸집이 서로 틀어져서 맞지 않는 구간이 있었다. 구석이라 미처 확인을 못했던 부분인데, 이것 때문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다 거푸집이 터져버리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문제는 항상 내가 소홀히 한 바로 그 부분에서 터진다.  타설된 콘크리트는 둘러싸고 있는 거푸집을 밀어내면서 압력을 주게 된다. 따라서, 정확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거푸집이 터지지 않게 하는 것이 기술이다. 이번에는 바닥에 못을 박아 거푸집을 고정했는데, 각도가 틀어지면서 하부에 기초가 없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허공에 못질된 부분은 콘크리트가 밀어내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안 그래도 거푸집 수평을 맞추느라 시간이 지체됐는데, 거푸집이 터져버리는 바람에 시간이 더욱 지체되었다. 이럴 때는 허허 웃으면서 한 번 쉬어가는 게 좋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명언을 잘 새겨야 한다. 반장님들께 시원한 음료를 사드리면서, '터지는 거보니까 제가 대상 받으려나 봐요' 하고 웃고 말았다. 작품의 주인인 나보다도 이 더운 날 복구 작업을 직접 진행해야 할 반장님들 멘탈이 중요하다. 작업의 품질은 내 기분이 아니라 반장님의 기분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잘 대응하여 공사는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다. 현장에서는 늘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그 또한 해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초반의 실수를 후속 공정에서 만회하려면 훨씬 더 고생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린 거푸집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나는 그 이유가 뒷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초를 만든 팀과 그 위에 거푸집을 짜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팀은 다른 팀이다. 이럴 경우, 앞의 팀에서 '조그만 문제는 뒤에서 다 해결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가지기 쉽다. 실제로 공사현장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모두가 모든 문제를 마무리 단계에서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은, 마무리를 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여기 마감되지 않은 것은 조경할 때 수목으로 가리면 돼', '뒤에 팀이 전문가니까 어떻게든 하겠지. 이 정도면 충분해.' 달콤한 변명들이다.  '되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만으로는 되는 것은 없다. 어느 단계에서든 누군가 고생을 해서 정확하게 한 번은 맞추어야 결과물이 나온다. 하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폭은 좁아지고 해결 방법은 더욱 복잡해진다. 따라서, 어떤 일이든 초반에 작업을 잘해놓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초반 작업이 좋으면 그 뒤로 모든 일이 훨씬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다. 물론, 내 경우처럼 뒤에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결과물의 품질이 비교적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굉장히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기초를 잘못 놓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다름 아닌 나였다. 나는 현장관리자로서 책임자로서 모든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 기초를 좀 더 세심하게 다시 봤었다면'이라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히 나는 기초를 체크했었다. 다만, 시공방식부터가 정확할 수 없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문제를 인지했을 때는 이미 수정이 거의 불가능했을 뿐이다. 즉, 처음부터 좋지 않은 선택을 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초반에 반장님들께 정확한 방식으로 다시 요청드렸다면 당연히 수정해주셨을 터였다. 하지만, 그 시기를 놓쳤기에 미래의 나에게, 다음에 들어올 팀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선택들이 나비효과처럼 문제를 불러왔다.


 바둑을 둘 때 초반에 잘 깔아 둔 포석이 후반에 상대를 옴짝달싹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한 수가 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좋지 못한 수를 뒀을 때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계속해서 시달리게 된다. 내 경험이 말해주듯 일을 할 때는 초반에 좋은 수를 두는 것, 기반을 잘 다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인생에서 기초를 잘 쌓는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인생은 단기적인 프로젝트와 달리 하루하루의 집합체로 굉장히 장기적이기 때문에, 신생아 때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 신생아 때 올바른 뒤집기 한 번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나는 인생에서 좋은 기초를 쌓는다는 것은 매일매일 최선을 다한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이 남은 날 중에 가장 빠르고 젊은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을 내리고, 오늘의 선택은 내일의 밑거름이 된다. 즉, 오늘 나의 선택과 행동이 근 미래의 기초가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잘못된 선택을 내렸다면, 인지한 즉시 최선을 다해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뒤로 갈수록 문제 해결의 폭은 좁아지고 방법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라며 행동하는 것을 주저한다. 다른 이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부끄러워서든, 스스로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부끄러워서든 다양한 변명을 하며 시간을 끈다. 잘못을 발견했을 때의 불편한 마음이 조금만 버티면 흐려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불편했던 마음에 평화를 얻으며 문제 해결의 적기를 스스로 놓아버리곤 한다. 인생은 때때로 '수레바퀴'에 비유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멈출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의 수레바퀴에서 스스로를 돌보며 계속 나아가야 한다. '괜찮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마음을 매 순간 경계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즉, 지금 내가 맞닥뜨린 인생의 책임을 전가하지 않아야 한다. 남에게,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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