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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씨 Writer C Sep 10. 2022

28살 청년이 공사현장에서 배운 인생의 법칙 10가지

0. 들어가며: 빛나지 않지만 단단하게

 타자를 치는 시커먼 손, 창 밖으로 들려오는 비바람 소리. 우연히 브런치를 알게 된 후, 몇 달째 기회만 엿보다가 드디어 글을 쓴다. 나는 현재 서울의 한 공원 부지 내에 정원을 조성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제껏 공사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미루어오다가 오늘은 비가 와 공사를 쉬는 바람에 가벼운 엉덩이를 억지로 붙이고 앉았다.


 나는 대학에서 '조경'을 공부한 후, 3년간 조경설계 및 시공 회사에서 일했다. 워낙 열정적으로 일했던 탓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 분야를 좋아서 선택한 줄 알지만, '조경'은 내가 원해서 선택한 진로는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점수에 맞춰서 대학을 진학했고, 4년간 배운 것이 있기에 실무를 경험해보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렇게 다닌 회사는 설계와 시공을 겸하는 회사였기에, 나는 때로는 사무실에서 때로는 현장을 누비며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현장에 나갈 때면 다양한 직급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는 일꾼으로 마음 편히 속칭 '노가다'를 하기도 하고, 언제는 현장관리자로서 작업자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시공 품질을 높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공사장에서 내 나이는 매우 어린 편이었기에, 대표님을 대리하여 현장을 본다는 것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현장의 속도는 사무실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당장 눈앞에서 삼촌뻘, 아버지뻘 담당자들과 나누는 얘기가 곧바로 적용되어 시공되어버린다. 물릴 수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말 한마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작업자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문서에는 내 이름과 서명이 들어갔다.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가끔은 현장의 책임자가 나라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할 때가 있었다. 게다가 공사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노가다'를 떠올리듯, 현장은 좀처럼 낭만이라고는 찾기 힘든 곳이다. 화장실조차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을 때도 많다. 발주처에게, 협력업체 담당자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아침 첫차는 괜찮지만 퇴근길에 땀과 먼지가 범벅이 된 채로 만원 지하철을 타는 것은 정말 고역이다. 더울 때는 가장 더운 곳에서 추울 때는 가장 추운 곳에서 일하는 게 현장이다. 하지만, 지난 3년을 돌이켜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경험들도 사무실이 아니라 현장이다.


 지금은 잘 다니던 회사를 돌연 퇴사해 쉬고 있다. 나름 모범생이라고 자부하며 흐르는 대로 살아왔다. 문뜩,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살다가는 이대로만 살 것 같았다. 누군가는 MZ세대의 끈기 없는 패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찌 됐든 나는 스스로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고, 그 일환으로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공유하려 한다. 비록 매번 현장에 파견된 것도 아니고 매번 힘든 일꾼으로 파견된 것도 아니지만, 애증의 현장에서 땀으로 배운 인생의 법칙을 나만의 시각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올해 28살의 어린 나이로 거창하게 '인생의 법칙'을 논하는 것이 조금 주저스럽다. 그럼에도 땀 흘려 배운 것들이기에, 내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는다.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치는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수많은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비록 어릴 때 꿈꾸던 멋진 옷을 입고 멋진 사옥으로 출근하는 빛나는 사회생활은 아니었지만, 치열한 공사현장에서 나만의 것들을 배웠다. 이것들은 내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나침반 역할을 할 것이다. 이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화려하게 빛나진 않을지라도, 당당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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