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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씨 Writer C Sep 10. 2022

28살 청년이 공사현장에서 배운 인생의 법칙 10가지

2. 태도는 거의 모든 것이다(2)

 나는 개인적으로 현장에서 3가지 타입의 반장님들을 만나봤다. '노가다꾼', '반장님', 그리고 '기술자'. 먼저, '반장님'은 나머지 두 타입의 중간에 위치하는 분들이다. 이 분들은 말씀드리는 사항들을 최대한 이행해주시려고 노력한다. 다만, 품질보다는 시공의 편의성을 추구하시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감리의 입장에서는 속칭 '밀당'을 잘해야 하는 분들이다. 다음으로, '기술자'는 말 그대로 기술자다. 당연히 모든 반장님들이 나보다 해박한 지식을 겸비하셨지만, 이분들의 지식은 멋모르는 내가 들어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며 시공의 품질 또한 정말 엄청난 분들이다. 마지막으로, '노가다꾼'은 내가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노가다꾼'으로 여기시는 분들이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노가다'라는 안 좋은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분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보여주는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태도'다.


 '데나오시', '야리끼리', '헤베', '루베', '갑빠', '아시바'. 아직 공사현장에는 굉장히 많은 일본어의 잔재가 남아있다. 우리말로 고쳐서 사용하면 다시 되물어보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그 뿌리가 깊다. '노가다' 또한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이라는데, 우리말로 하면 '막일'이다. 그러니까 사전적으로는 공사장에서 이것저것 막일을 하는 사람들이 노가다꾼인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진정한 의미의 '노가다꾼'은 본인의 일을 스스로 낮추는 사람이다.


 내가 다른 시공사의 현장에 감리로 파견되었을 때의 일이다. 작지 않은 부지의 조경을 리모델링하는 공사였다. 리모델링은 새로 공사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공사다. 공사하면서 기존의 것들을 파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대부분의 경우 이미 이용 중인 공간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안전관리도 훨씬 민감하다. 또한, 설계에 누락된 부분들을 공사 단계에서 추가로 진행하게 되어 돈 문제로 애매해지는 경우도 많다. 큰 건이라면 설계변경을 통해 반영하지만, 작은 건들은 '서비스'가 되는 경우가 많고, 시공사의 실수를 이 서비스와 속칭 '퉁치는' 경우도 많다. 이번 현장도 도면에는 없는 '서비스'와 '퉁치기'가 많은 복잡한 경우였고, 이곳에서 나는 기억에 길이 남을 '노가다꾼'을 만났다.

  

"아 XX, 노가다한테 참 크-은 걸 바란다"

 그는 시공사의 직영 반장이었다. 시공사에 속해 있는 작업자라는 뜻으로, 이분이 실질적 작업의 리더가 되어 인력사무소에서 온 분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했다. 공사 기간은 부족한데 손발을 맞추는 작업자들은 조경 공사 경험이 적은 인력사무소분들이니 작업이 어려웠던 것은 맞다. 발주처와 시공사 사이에 이미 '서비스'와 '퉁치기'가 오고 가며 진즉에 관계가 불편해진 것도 맞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상황들이 작업자의 태도가 되어서 결과로 나오는 것은 안 되는 일이다. 특히, 도면에 분명히 명시된 사항을 본인의 입맛대로 바꾸어버리는 것은 더더욱 묵인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시 현장에는 기존의 철재 트렌치 뚜껑을 석재 트렌치 뚜껑으로 교체하는 공정이 있었는데, 트렌치가 곡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석재 뚜껑을 재단하여 맞춰 넣어야 했다. 직사각형의 뚜껑이 V자를 그리며 벌어지기 때문에, 도면에는 양쪽의 뚜껑을 각각 사선으로 재단하여 맞추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한쪽에서만 사선으로 재단하면 양쪽에서 반반씩 재단할 때보다 각이 커지기 때문에 그 모양이 보기 매우 우스워지기 때문이다. 즉, 도면은 모양을 위해 칼질을 두 번 하라고 지시했고, 작업자는 효율이든 편의든 한 번만 칼질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직영 반장님'은 손수 한쪽씩만 칼질을 하셨고, 나는 당연히 시공사 측 책임자께 재시공을 요청드렸다. 문제의 현장에서 시공사 측 책임자의 이야기를 듣던 그분은 들고 있던 석재 뚜껑을 바닥에 던지면서 한 마디 내뱉고는 사라지셨다.


"아 XX, 노가다한테 참 크-은 걸 바란다"


 그때 나는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분은 인력사무소에서 파견 나온 분도 아니시고, 조경 시공사에 소속된 직영 반장님이다. 그것도 그 큰 부지의 공사를 총괄했던 리더급 반장님. 애초에 스스로를 노가다꾼으로 격하시키는 반장님을 그때 처음 뵌 것도 충격이지만, 정말 죄송하게도, 이 공사가 왜 이렇게까지 어렵게 진행되어 왔는지 순간 이해가 되었다. 그분은 스스로를 '기술자'가 아니라 그냥 '막일'하는 사람으로 봤던 것이다. 그렇기에, 포장 공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하부 기초도 제대로 치지 않아 문제가 되었고, 그렇기에, 대부분의 작업들이 허술했던 것이다. 기술을 가지고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일당을 받고 그날 하루를 몸으로 때우고 계셨던 것이다. 불현듯 작업 지시마다 못마땅해하시던 그분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떤 상황이 짜증의 원인이 됐든 원래 성향이 그러시든, 그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일을 대하는 태도가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조경을 전공하고 업으로 삼던 사람으로서, 이 분야를 바라보는 그분의 그런 태도에 나조차도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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