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냥잡담 May 22. 2024

미생물 전쟁

- 폐렴구균과 면역세포 -

미생물 전쟁     -폐렴구균과 면역세포 -


미생물 전쟁은 단순하다. 전투하는 방법은 물질반응이 전부다.

다세포생물은 세포 집단의 전쟁이지만 단세포생물은 단백질 단위의 전쟁이다. 미생물 각개전투는 분자 단위에서도 일어난다. 인간의 전쟁처럼 미생물 전투에서도 전략과 전술이 있다. 폐렴구균과 면역세포와의 전쟁에서 그 수법이 어떤 것인지 발견할 수 있다.     

폐렴구균은 공기 중에 흔하기 때문에 숨 쉴 때마다 한두 마리쯤은 섭취하게 된다. 감염된 환자 근처에서는 다량으로 흡입될 수 있다. 이것이 소화기관으로 가면 훌륭한 단백질원이 되겠지만, 문제는 호흡기로 갔을 때다. 폐렴 대부분이 이 때문에 생긴다.     


폐렴구균이 호흡기를 통해 폐 속 꽈리에 들어오면 면역세포들과 대치하게 된다.

균을 처리하기 위해 면역세포들이 대거 출동한다. 대식세포, T세포, B세포, 항체… 암세포를 전문으로 하는 NKT세포까지 왔다. 면역세포 중에 단연 대식세포가 눈에 띈다. 덩치도 크지만 촉수를 길게 뻗어 균을 잡아먹는다. 이름 그대로 균을 대식하는 먹방 세포다.

NKT세포는 대식세포와 다른 방법으로 균을 잡는다. 균에 구멍을 뚫어 화학성분을 집어넣는다. 집어넣은 화학성분에 의해 균이 괴멸된다.

항체는 일종의 화살이다. 균이 침입하면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침입한 균에 특화된 화살이 즉각 만들어진다.     

폐 꽈리 속에서 폐렴구균과 면역세포, 양 진영이 전투를 위해 대치하고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먼저 항체가 혈관에서 수증기처럼 뿜어져 나와 적진을 향해 날아간다. 이어서 양측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다.

대식세포는 아메바처럼 기어 다니며 폐렴구균을 사냥한다. 입은 입대로 균을 삼키면서 동시에 촉수를 뻗어 서너 마리의 균을 잡아 움켜쥔다. NKT세포는 균에 구멍을 뚫기 위해 드릴 작업 한다. 구멍에 약품을 넣어서 폭파시키려는 것이다.

T세포도 병력을 출동시키고 지휘하느라 정신이 없다. B세포는 항체를 적진을 향해 날려 보낸다. 항체는 격전지 위를 날아다니며 소나기처럼 떨어져 균 몸뚱이에 꽂힌다. 항체에서 독소가 뿜어져 나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죽어 나가는 폐렴구균이 한 마리도 없다. 대식세포는 균을 계속 삼키지만 소화가 안 돼 도로 내뱉고 있다.

NKT세포는 드릴 작업을 하지만 구멍이 뚫리지 않아 균 속에 약품을 넣을 수가 없다. 항체 공격을 받으면 독소에 반응하여 균이 녹아야 하는데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균은 오히려 면역세포의 공격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일일까? 

    

폐렴구균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다른 미생물처럼 위장하거나 속이는 기술은 없지만, 균의 껍질이 아주 두껍다. 껍질 때문에 균은 장갑차 안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NKT세포 드릴에 구멍이 나지 않을 정도로 두껍다.

대식세포에게 이것이 소화될 리가 없다. 삼키자마자 소화불량이다. 항체 공격이 먹히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장갑차 밖에서 화살을 쏘아봤자 그 안에 있는 균에게 아무 효과도 내지 못한다.

면역세포는 공격을 계속하지만 성과가 별로 없다. 사령관격인 T세포는 골머리를 앓는다. 성과 없는 전투를 계속하기에는 병력 낭비가 많다. 그렇다고 병원균을 그대로 놔둘 수도 없다. 고민 끝에 일단 공격을 중지하고 면역세포들을 잠시 철수시키기로 결정한다.     


신체 밖에서 치료약물이라도 들어오면 모르겠지만 뇌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보다도 전투상황을 뇌는 전혀 알지 못한다. 신경세포로부터 받은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균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경세포도 확실한 신호가 없어 정보전달을 못하고 있다.

T세포는 전체 면역세포에게 대기명령을 하달한다. 그리고 균을 어떻게 처치하면 좋을지 전략을 구상한다.     


폐렴구균과 면역세포 양 진영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꽈리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폐렴구균은 상황변화를 감지하고 주변을 살핀다. 집단 중에서 몇 마리가 기어 나와 주변을 정찰한다. 혹시 면역세포가 매복해 있는 것이 아닌지...

면역세포들이 보이지 않자 그때서야 균들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균들은 맛있는 폐 세포를 먹기 위해 이동한다. 제각기 식성에 맞는 먹이를 찾아 뿔뿔이 헤어진다.

그러나 이동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균들도 있다. 머물러 있는 균들은 세포분열시기에 있었다. 세포분열 중에는 이동이 불가능하다. 껍질이 두꺼워서 세포분열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세포분열이 되면 껍질이 갈라질 뿐만 아니라 두께도 얇아진다. 분열되고 나서도 껍질이 성숙되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 면역세포들이 다시 나타났다. 면역세포는 이것을 노린 것이다.

대식세포가 활동을 재개했다. 세포분열로 갓 태어난 것들이라 균들은 삼키자마자 슬슬 녹는다.

NKT세포도 작업에 착수한다. 껍질이 갈라져 있어 구멍을 뚫을 것도 없는 게 태반이다. 그래도 꼼꼼히 구멍을 파고 그 속에 약품을 집어넣는다.

다른 곳으로 이동한 균들은 항체가 추적한다. 항체는 GPS를 통해 균의 위치를 면역세포에게 전한다.

한참 폐 세포를 파먹고 있는 균들도 세포분열시기를 맞는다. 그 타이밍에 맞춰 면역세포들이 나타난다.

처리가 바쁠 정도로 균의 사체는 곳곳에 쌓인다. 폐렴구균은 증식도 하기 전에 전멸되었다.               

                                                                                                

                                                                                                           - 전자책 "진담과 농담" -







작가의 이전글 전자책 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